무너졌던 여성서사를 다시 쌓다
2020년 2월 7일에서 3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진행중인 뮤지컬 <마리 퀴리>에 대하여.
writer 김일송
마리 퀴리. 라듐을 발견하여 방사성 연구를 발전시킨 선구자이자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03년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그리고 8년 후 다른 업적으로 또 한 번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 마리는 또한 1906년 여성 최초로 소르본대학 정교수로 부임했으며, 사후에는 여성 최초로 팡테옹에 묻히게 되었다. 남성 중심 세계의 유리천장을 깬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 마리 퀴리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에 손색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녀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폴란드 이민자였다. 이러한 출신 배경으로 나중에 외국인 혐오로 이어졌다. 두 번째 노벨상 수상 당시에는 추문으로 인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황색언론은 그가 전남편 피에르와의 사별 후 만난 동료 과학자와 염문을 보도하면서, 마리를 프랑스 여인의 가정을 파괴한 파렴치한 가정파괴범으로 묘사했다. 우파언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리가 출산율 감소를 통해 프랑스의 국방력을 약화하려는 매국노로 묘사했다. 이처럼 마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환경은 그의 드라마를 한층 더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온갖 장애와 차별을 극복하고 과학적 성과를 거둔, 아니 전 인류적 업적을 이룬 마리의 성공담은 흥미로운 드라마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뮤지컬 <마리 퀴리>가 선택한 길은 앞서 서술했던 사건들과 무관하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뮤지컬은 마리의 빛나는 성취와 함께 거기에 드리워진 그늘에 주목한다. 마치 그가 발견했던 라듐이 암을 치료하는 동시에 암을 유발하듯, 뮤지컬은 그의 생을 동시에 조명한다. 이를 위해 뮤지컬은 마리의 삶에 라듐걸스를 병치한다. 라듐걸스는 라듐으로 인해 피폭당한 미국 시계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칭하는 용어로, 이들이 알려진 것은 1927년 법적 소송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천세은 작가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미국의 시계공장을 프랑스로 가져와 언다크사로 묘사한다. 그리고 직공 중 한 사람을 마리의 동향 출신의 안나로 설정하고, 라듐의 발견 이후 라듐의 위험성을 인지하게 된 이후의 삶을 조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대목에서 뮤지컬 <마리 퀴리>는 성공한 여성의 성공담을 그린 여성 서사에서 과학 기술과 관련된 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보편적 생명윤리의 작품으로 도약한다.
여기에서 초연과 이번 공연은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초연에서 마리는 시계공장 공장장 루벤과, 남편 피에르와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작가의 변에 따르면 초연의 마리는 대립을 통해 신념을 증명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루벤이 이익 추구에만 집착하는 악인으로 평면화되었다. 더 중요한 인물은 피에르다. 윤리적으로 먼저 각성하는 인물도 피에르였으며, 삶으로 죽음으로 실천해내는 인물도 피에르였다. 마리는 피에르의 뒤를 쫓아가는 형국으로 그려졌다. 초연의 제목은 차리리 ‘피에르 퀴리’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혹은 ‘안나’. 초연에서나 재연에서나 변함없이 매력적인 인물은 시계공장 직공 안나다.
그러나 이번 재연의 주인공은 분명히 마리 퀴리다. 마리를 돋보이려 피에르를 끌어내리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불편하고 불필요한 대결 구도를 없애 마리와 피에르를 동반자적 관계로 설정한다. 또한 매력 없던 악인이었던 루벤은 입체화되었다. 재연의 루벤은 이익에만 눈먼 인물이 아니라 희생을 치르더라도 의학의 발전을 끌어가려는 신념을 가진 인물로 변화되었다. 나아가 마리는 대립이 아닌 연대를 통해 성장한다. 이렇게 모든 인물이 대등한 관계에서 경쟁하면서, 이번 재연은 초연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마리 퀴리>는 초연에서 무너졌던 여성서사를 다시 쌓아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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