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칼각집회'와 민주노총 '불법시위' [기자수첩-산업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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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9.06. 오후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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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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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 문구, 원색적 구호 없이 질서정연…모범적 집회 문화 보여줘
시위 효과 극대화 위해 불법행위로 논란 키우는 노동계에 '큰 가르침'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0902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공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는 많은 교사들이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서울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매주 토요일 열리는 교사들의 집회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집회를 통해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물론이거니와 ‘집회 방식의 비범함’도 전 국민의 관심을 모은다.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이른바 ‘칼각집회’로 대표되는 황당할 정도의 질서정연함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이들의 집회 장면을 보면 마치 자를 대고 줄을 그어놓은 것 같이 오와 열이 정확하게 맞춰져 있다.

대열 중간 중간에는 집회 참가자들의 이동을 배려한 통로도 마련되고, 얼마 안 되는 그늘 밑자리는 아이를 동반한 참가자나 노약자에게 양보된다. 다른 이들은 한여름 땡볕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모자까지 착용한 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바닥에 앉는 고역을 흔쾌히 감수한다.

집회가 끝난 자리는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다. 집회 운영진이 사후 관리를 하기도 하지만 개개인이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는 게 습관화돼있다는 게 집회 참가자의 전언이다.

특정인이나 집단을 비방하는 문구나 원색적인 구호도 찾아볼 수 없다. 인위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의 분노를 끌어올리려는 피끓는 목소리의 선동도 없다. 그저 집시법상 허용치를 한참 하회하는 데시벨의 목소리에 담담하게 자신들의 처지와 주장을 담아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집회 현장의 질서 유지를 위해 투입된 경찰과 충돌을 빚을 일도 없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간 악다구니와 물리적 충돌이 오가는 게 아니라 격려와 위로가 오간다. 경찰은 어느새 집회자들을 ‘포위’하는 게 아니라 ‘호위’하고 있고, ‘경계’의 시선이 아닌 ‘존경’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어떤 주장을 내세우건, 질서를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의 ‘칼각집회’가 비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동안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무질서와 불법행위가 너무도 당연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단체, 그리고 각종 시민단체들의 집회‧시위는 최대한 떠들썩하게 만드는 게 ‘국룰’이다. 집회 장소나 시간, 방식, 설치물 등 모든 측면에서 허용된 선을 넘어서고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을 벌임으로써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야 시위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믿는다.

여의도에서 교사들의 4차 집회가 열리던 지난달 12일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시위를 벌이던 중 세종대왕 동상 위로 올라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관을 폭행한 일이 벌어졌다.

집회의 자유가 억압되던 독재정권 시절, 다소의 탈법이 불가피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지지도 충분했던 때 만들어진 과격한 시위 방식을 민주화 이후에도 버리지 않는 이들이 많다.

더 놀라운 사실은 교사들의 집회가 정기적으로 대규모로 진행됨에도 불구, 이들을 이끄는 주도 세력이나, 뒤에서 정치적 방향성을 유도하는 정치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조직적 인원 동원이나 선동 없이 개개인의 교사가 자발적으로 지하철을 타거나 돈을 모아 버스를 대절해 집회 장소로 이동한다. 그렇게 모인 인원이 지난 2일에는 무려 2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개중에는 보수 성향의 교총이나 진보 성향의 전교조 소속 교사들도 있지만 누구도 집회 현장에서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먼저 세상을 떠난 교사들을 추모하고, 교권 보호 대책을 요구하는 순수한 의도로 한 목소리를 낸다.

‘기-승-전-정권퇴진’으로 연결되는, 정치 집단과 결탁된 노동계와 일부 시민단체의 집회와 달리, 교사들의 집회가 모든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다.

떠들썩하지도 않고, 조직적이지도 않았지만 교사들의 집회는 우리 사회에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일인 지난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집단행동을 저지하겠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던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결국 다음날인 5일 “고인에 대한 순수한 추모의 마음과 교권회복에 대한 대다수 선생님의 마음을 잘 알게 됐다”면서 해당일에 연가·병가를 낸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이 부총리는 또, 공교육 정상화와 교권 회복을 위해 ‘모두의 학교’ 운동을 시작하고, 교원들과 매주 만나 소통하겠다는 등 교사들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 정부보다도 ‘불법 시위’에 강경하게 대응하던 현 정부를 무릎 꿇린 것은 결국 ‘합법적이고 질서정연한 집회’였던 셈이다.

어쩌면 교사들이 보여준 ‘모범적 집회문화’의 배경 중 하나는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아이들의 시선일 수 있다. 옆자리 동료가 모욕을 당하고 옆 학교 동료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들인들 분노할 줄 모르고 절박하지 않아서 이성을 지켰겠는가.

절박함 속에 모인 집회 현장에서마저 “우리가 무질서한 모습을 보이고 탈법을 저지른다면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라는 사명감으로 명예를 지킨 교사들의 행동이, 학교를 떠난 지 오래지만 아직 배울 게 많은 어른들에게도 올바른 가르침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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