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소상공인 빗속의 ‘최저임금 절규’ 왜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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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1. 오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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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내년 1만2210원 요구… 올해보다 27%나 올리라는 것
국내 자영업자 657만명 달해… 자신들만 약자라고 착각 말라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최저임금 동결 촉구 결의대회에서 소상공인연합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5년 전 여름에 그랬던 것처럼 이날도 비가 내렸다. 지난달 하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동결 촉구대회’. 소중한 하루 장사를 접고 전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소상공인들에게 비 오는 궂은 날씨는 별 대수가 아니었다. 울분에 찬 그들의 외침은 절규에 가까웠다.

내년 최저임금 협상에서 노동계는 1만2210원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보다 무려 26.9%를 올리라는 것이다. 이 액수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 수치를 접한 순간 소상공인들 가슴엔 피멍이 들었다. “우리 보고 다 죽으란 소리”란 분노가 터져나왔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노동 쪽 사람들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 생각이 없는 것이냐”고 했다.

2018년 8월 말 이런 울부짖음을 처음 들었다. 광화문광장에 모인 소상공인 수만 명은 장대비 속에서도 3시간 넘게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임원 15명은 단체 삭발을 했다. 많은 구호와 외침 중 비수로 찌르듯 마음속을 파고든 건 “우리도 국민이다”란 말이었다. 노동계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정권의 외면 속에서 그들이 느낀 절망과 아픔이 전해져 가슴이 저렸다.

노동계의 터무니없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주장과 이에 분노한 소상공인 시위는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만성적 갈등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다. 소상공인의 삶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재작년 자영업자 평균 소득은 1952만원으로 처음 200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소득 하위 20%인 영세 자영업자 평균 소득은 5년간 55.2% 줄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 노동계는 왜 소상공인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가.

2021년 현재 국내 자영업자는 656만8000여 명에 달한다. 가족이나 친·인척, 친구·지인 중 최소한 한두 명은 자영업자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최저임금 동결 등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계급과 집단으로서의 노동자는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는 경우가 많다.

소상공인을 보는 노동자 계급의 철학적 관점은 그들에게 성서와도 같은 ‘공산당 선언’에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초 발표한 이 문건에서 “중간계급의 하층, 즉 소공업가, 소상인, 상점 주인 및 기타 몰락 상인, 수공업자, 농민 등 이들 모두는… 혁명적이 아니라 보수적이다. 아니 반동적이기까지 하다”라고 했다. 이런 관점은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많이 변했겠지만 언제든 노동자 계급의 이해관계가 소상공인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자 계급은 특히 자신이 세상과 역사의 주인공이며 진보를 이뤄낼 주축 세력이라고 믿는다. 오직 자신들만이 “자본가와 대치하는 모든 계급들 중 참된 혁명적 계급”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시대가 아닌 현대에도 그런 생각을 할까. 문재인 정권 때 조직 규모를 87%나 불린 민주노총은 그들의 ‘선언·강령·규약’ 중 ‘선언’을 이렇게 시작한다. “생산의 주역이며 사회 개혁과 역사 발전의 주체인 우리….” 이런 세계관 속에서는 노동자의 투쟁과 전략은 본질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세 확산과 단결 강화에 맞춰진다. 사회적 약자인 소상공인과의 대립 구도가 만들어져도, 그들의 호소가 커져도 잘 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노동자 계급의 위세는 좌파 포퓰리즘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 그 파괴적 영향력이 극대화된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정부 때 노동자는 세상의 주인이었고, ‘소득 주도 성장’ 같은 엉터리 정책이 경제와 서민의 삶을 망가뜨렸다. 이에 맞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생존 투쟁도 그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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