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내려도 제품값 안 내린다, 코로나 핑계로 기업들 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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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05. 오후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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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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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업종 코로나 전보다 이익 늘어

코로나 때 “공급망 붕괴로 원자재 값이 급등했다”는 이유를 들어 제품 가격을 크게 올렸던 기업들이 최근 원자재 값 하락세에도 제품 가격을 고수하면서 이익이 급증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원자재 값 급등분을 제품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며 고통 분담하자더니 정작 원자재 가격은 내렸는데도 기업들은 한번 올린 가격을 절대 내리려 하지 않는다”며 “기업들이 소비자 주머니에서 한 푼 두 푼 털어 폭리를 취하고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21일 본지가 기업 평가 업체인 에프앤가이드를 통해 상장사 1879곳의 올 1분기 실적을 코로나 전(2019년 1분기)과 비교한 결과, 62업종 중 40업종에서 영업이익이 늘었다. 영업이익이 2배 이상으로 증가한 업종도 19개에 달했다. 소비자가 쉽게 체감하는 소비재·서비스(B2C) 업종 중에선 7업종(자동차·의류·음료·항공·컴퓨터·레저용품·가정생활용품) 영업이익이 2배 이상 급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코로나 전과 비교해 수요가 급증한 업종은 거의 없는데 이익이 크게 늘었다는 것은 가격 (인상) 효과가 주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인하해 고물가로 고통받은 소비자의 어려움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한국수입협회가 제공하는 국제원자재가격 정보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원자재지수(KOIMA)는 사상 최고를 기록한 1년 전보다 27%가량 하락했다. 농산품 중에는 옥수수·밀·커피가 1년 전보다 20~34% 내렸다. 유가·유연탄·철광석도 15~30%, 섬유 원료인 원면·카프로락탐 역시 20~30% 내렸다.

코로나 이후 제품 가격을 가파르게 올린 기업들의 실적은 고공 행진 중이다. 기아의 소형 SUV 셀토스는 지난해 7월 부분 모델 변경을 하며 최저가가 1년 만에 11%(216만원) 오른 2160만원이 됐다. 현대차 아반떼도 2년 사이 최저가가 390만원 올랐다. 두 회사 차량 가격은 지난 2년 동안 이런 식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현대차·기아는 “편의 사양을 늘려 품질을 높였고, 원자재 값 인상과 반도체 부족 여파를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두 회사를 합친 영업이익률(수익성 지표)은 2019년 3.4%에서 올 1분기 10.5%까지 올랐다. 두 회사는 지난해와 올 1분기 최대 매출·영업이익을 냈다.

/그래픽=박상훈

◇면화·커피 원료 값 내렸는데 옷·음료 값은 안 내려

의류업체 역시 작년 원자재 값이 크게 올랐다며 제품 가격을 잇달아 올렸다. 세계 최대 면화 수출국인 미국의 생산량이 가뭄·홍수로 감소한 데다, 미국이 중국 위구르산 면화 수입을 금지하면서 공급이 크게 줄었다. 작년 초부터 같은 해 5월 중순까지 면화 가격은 70~80% 급등했고, 글로벌 의류업체들은 잇달아 제품 가격을 10% 안팎 올렸다. 작년 5월 파운드당 1.54달러였던 면화 가격은 최근 0.78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런데도 옷·신발 가격 상승은 계속되고 있다.

나이키코리아는 2022년 회계연도에 국내에서 매출 1조6749억원을 올려 단일 패션 브랜드 중 가장 많은 매출을 냈다. 영업이익은 230%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과 직영점을 강화한 덕이 크지만, 제품 가격을 7~10%가량 인상한 효과가 더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 재팬’ 분위기가 약화한 유니클로는 작년 6월과 9월 제품 가격을 10~20% 올렸다. 덕분에 한국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FRL코리아는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1%, 73% 급증했다.

음료업계도 원·부자재비 인상을 이유로 가격을 연간 한두 차례 올렸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해 12월 커피·주스·생수 등 음료 10개 가격을 4% 인상하면서 “당류, 오렌지, 커피 등 원료와 포장재 가격 상승 때문에 부득이하게 값을 올렸다”고 했다. 올 1월에는 펩시콜라(캔 355ml 제품) 11.8%, 레쓰비 마일드(200ml)를 20% 올렸다. 롯데칠성음료 1분기 영업이익은 코로나 전인 2019년 1분기 대비 208% 증가했다. 커피 원료(원두 선물) 가격은 작년 8월 정점에서 이달 사이 가격이 20% 하락했지만, 커피 음료 가격은 오른 채 그대로다.

◇항공·정유도 ‘가격 시차 반영 전략’

항공사와 정유업계는 ‘가격의 시차 반영’ 전략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2019년 100만원대에 구매 가능했던 ‘인천~파리’ 왕복 항공권은 현재 200만~350만원에 팔리고 있다. 2019년 일본·동남아는 1만원대 항공권 등 프로모션도 많았고 20만~30만원대면 구매가 가능했지만, 이젠 가격대가 40만원대를 훌쩍 넘는다. 2019년 인천~런던 왕복 항공권을 95만3100원에 구매했던 이모(34)씨는 “최근 비슷한 시기 가격이 1.5~2배까지 차이가 나 놀랐다”고 했다. 작년 4분기 대한항공 객단가(고객 1인당 매출)는 62만원으로 2019년 4분기보다 50% 증가했다. 대한항공은 올 1분기에 코로나 이전보다 2배인 영업이익 4150억원을 거뒀다. 제주항공 등 주요 LCC(저비용 항공사)도 가격 인상 효과로 올 1분기 최대 실적을 거뒀다.

정유사는 늘 유가 급등 시기엔 제품가를 빠르게, 반대로 유가 하락기엔 천천히 내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유가 폭등 때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국내 정유 4사가 올린 영업이익은 전년의 2배 이상인 12조7752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전쟁 등의 영향으로 두바이유가 배럴당 127.86달러까지 치솟은 덕분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자재 값이 내려가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자 비용·인건비·전기료·위험 대비 등의 이유로 한번 올린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규제 완화를 통해 신규 진입자를 늘려 가격 경쟁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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