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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우의 이름을 주목하라, '낫아웃'의 정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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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7. 12:00611 읽음

영화 <낫아웃(2021)> 스틸컷.

고교 야구 유망주인 광호의 성장담을 다룬, 이정곤 감독의 <낫아웃>은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렇게 화려한 이력 속 단연 돋보이는 것은, <낫아웃>의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 정재광. 정재광은 지난 2019년 영화 <버티고>를 통해 유태오와 천우희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스크린에 등장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정재광을 만나기 전에 나는 다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배우들의 인터뷰는 몇 번 해보지 않았는데 실수하면 어떡하지?", 혹은 "배우라서 잰 체하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는 깨져야 제맛이듯이, 정재광은 수줍고 또한 수려한 미소로 웃으면서 등장했다. 낯가림이 심해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는 이야기를 잘 꺼내지 못한다는 그는, 낯가림이 심하다기보다 순수함과 동심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동료 배우와 함께 불현듯 꽃시장에 들러 선인장을 양손에 사들고 한참을 걷기도 하는 예술가였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최근 몰두하고 있는 이야기라며 하나의 주제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양자역학이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최근 <싸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주정태 역할로 대중들에게 인사를 드렸고, 영화로서는 <버티고>, 그리고 <낫아웃>에 출연한 배우 정재광입니다. 안녕하세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낫아웃>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잖아요. 기분이 어때요?

너무 잘 돼서, 너무 좋아요. 너무 행복해요. 행복한데 조금 정신 없는 것도 있어요. 최근 JTBC에서 하는 <알고 있지만>도 촬영 중이라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낫아웃>은 어떤 영화인가요?
영화 <낫아웃(2021)> 스틸컷.

낫아웃은 고교 야구부의 유망주인 광호가 자신의 꿈을 좇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영화예요. 본인은 당연히 프로 야구단 선발이 될 줄 알았는데, 탈락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대학이라도 가려고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야구부의 감독님이 돈을 요구하게 돼요. 그래서 그 돈을 벌기 위하여 불법 휘발유를 제조하여 파는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게 돼요. 울퉁불퉁하게 이야기가 흘러가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낫아웃>에서는 정재광이 그간 대중들에게 보여줬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어요.

한 달 반 동안 야구 학원을 다니면서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네 끼나 먹구요. 탄수화물 위주의 아침을 두 끼 먹고, 근력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훈련을 받고, 그렇게 주말이 오면 수염 왁싱이라든가 태닝을 했어요. 그리고 야구 선수처럼 보이기 위해 일 주일에 한 번씩 삭발도 했죠. 원래 저는 야구의 룰조차 몰랐어요. 야구에 대해 관심도 없고, 심지어는 재미있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죠. 그런데 야구 훈련을 받다 보니 재미를 붙이게 된 거예요. 타자 연습을 하는데, 처음에는 20km의 속력으로 날아오는 공이 되게 무섭더라구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160km 정도를 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모습을 보고 야구부 동호회에서 저를 스카웃 하겠다고 연락이 오기까지 했어요(웃음). 

야구에 소질이 있으셨군요. <낫아웃> 촬영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영화에서 광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수제비 가게에서, 광호랑 치닫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스태프 서너 분이 울었어요. 자신이 입시할 때 생각이 난다고...

저도 그 장면에서 울었어요.

어땠어요? 공감이 가요? 

네. 공감이 갔어요. 그리고 특히 대사 중에 "나 야구 못하는 거 아니었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인정 욕구가 되게 심한 사람인데, 광호의 노력과 실력을 무시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보니까 몰입이 되면서 엄청 슬프더라구요.

아, 진짜요? 사실 광호가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여지가 많잖아요. 어쨌든 간에 불법적인 일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친구의 돈을 가지고 감독에게 주기까지 하는 행동들이 호감으로 보이기엔 힘들 것 같아서 많은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걱정 그대로 비호감으로 보는 분들도 있고, '나 같다'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저 또한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죠. 인정 받고 싶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고, 그런데 주위에서는 다 안 된다고 하고. 

눈물 한 번 쏟고 시작할까요?

하하. 보이는 인터뷰 아닌가요? 그럼 잘 할 텐데. 

성장 드라마의 구조가 있다 보니, 공감의 지점이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가 어리다 보니까 지켜주고, 이해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영화였어요. 울림이 있었어요.

저 또한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광호가 안쓰러웠어요. 광호가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광호의 선택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보다는 광호의 마음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나중에는 광호를 안아주고 싶더라구요. 울림이 전달되었다면 광호를 연기했던 저로서는 너무 기쁘네요.

광호를 연기할 때 체격 자체를 부풀렸잖아요. 나이대도 상당히 어리게 등장했구요.

어쩔 수 없이 영화에서 제 실제 나이가 보이더라구요.  잠을 두세 시간 정도밖에 못 자고 촬영을 해서 그랬나, 주름이 막 보이고 쉽지 않았어요(웃음). 살도 많이 쪘죠. 한 26kg정도 찌워서 당시 100kg이 넘었어요.

그러면 이쯤에서 다이어트 비법을 물어봐야겠네요.

다이어트는 오래 걸으면 됩니다. 탄수화물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그러면 자연스럽게 빠질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지금 매봉에 살고 있어서, 양재천에서 경복궁 역까지 왕복으로 걸어요. 이 시간이 저에겐 너무 큰 힐링이에요. 걸으면서 대사도 외우고, 다이어트도 되고, 잡념도 정리되고, 밤에 잠도 잘 오고. 그리고 걷는 행위로 하여금 감각들이 살아나요. 냄새도 그렇구요. 그래서 이런 행위에 중독된 것 같아요. 

양재천에서 경복궁까지라. 상상도 못하겠는 걸요. 마지막으로 <낫아웃>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낫아웃'이라는 용어 자체가 '마지막 기회'를 뜻해요. 그래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분들, 그리고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포기하고 싶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 조금이나마 에너지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야구부 감독님이 광호한테 "너 대학 가고 싶어?"라고 물으니까, 광호가 "네"라고 대답한 뒤 바로 시합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광호가 욕심을 내다가 갑자기 포수가 공을 못 잡아서 2루로 달리게 되는, 즉 마지막 기회예요. 그래서 이 장면이 낫아웃에서 변곡점이에요. 변화하는 장면이라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죠. 그런데 뭐랄까, 야구뿐만 아니라 인생도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도, 일반 직장인 분도 그렇고, 한 번씩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있잖아요. 모든 것을 관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 마지막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좋아요. 지금까지 출연했던 모든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겠지만, 그중 특별히 소개해 주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영화 <버티고(2019)> 포스터.

영화 <버티고>예요. 버티고는 저를 살려준 영화죠. 그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는 배우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제가 선망했던 천우희 배우와 함께 주연으로서 대중 분들께 인사를 드릴 수 있던 작품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천우희 배우의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좌) 정재광, (가운데) 천우희, (우) 유태오 (이미지 출처 : 정재광 인스타그램)

너무나 지적이에요. 지적이고 똑똑하고, 차분해요. 되게 누나 같아요. 배울 점도 너무나 많은데 연기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다음 작품을 어떻게 선택해야 될지에 대해 조언도 많이 해주고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유태오 배우는요?

태오 형 귀여워요. 천진난만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어린아이 같다가도 멋진 어른이자 형 같기도 해요.

<낫아웃> 촬영하면서 생겼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낫아웃>에서 민철 역할로 나오는 친구랑 친해져서, 그 친구를 저희 집에 초대했어요. 그리고 차를 마시고, 다음에 양재천을 걸었어요. 그 다음에 양재 꽃 시장에 가서 선인장을 샀어요. 귀엽고 아기자기한 선인장 두 개를 들고 걸었어요. 죄송합니다. 재미 없죠?

사실 말씀하신 에피소드 너무 좋았어요. 선인장을 한 손에 들고 걸어다닌다는 게. 되게 아름다운 풍경인데요?

하하. 감사해요. 또 뭐 있지. 아, 그거 있어요. 영화에서 제가 머리에 땜빵 자국이 있잖아요. 그게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예요. 그때 제가 감독님께 "이왕 이렇게 된 거, 컨셉으로 가자."고 했어요. 영화가 끝나고나서는 탈모 주사를 맞고, 비싼 돈을 주고 치료를 했는데 다행히도 아주 잘 나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이제 진지한 얘길 꺼내봐야 할 것 같아요. <낫아웃> 이전에 출연했던 영화, <버티고>에 출연하기 전에 배우를 그만둘 위기가 왔다고 들었어요.
정재광이 직접 그린 그림, Untitled, 2018.

버티고에 캐스팅 되기 세 달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사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었어요. 소속사에도 배우를 그만하겠다고 말했어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돈이 안 되다 보니까 '그냥 연기 강사나 할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저의 탈출구는 그림이었어요. 색감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에 위로를 얻었어요. 마음의 안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다 보니까 작품 몇 점이 생기게 되고, 그림 그리는 일을 더욱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그림과 소통하며 살아가던 와중에, 감사하게도 <버티고>의 출연 제의가 와서 출연하게 됐죠. 아, 버티고의 콘티 작가님이 강숙이라고 하는 회화 작가 분이세요. 그래서 작가님과 나중에 콜라보레이션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어떤 작가를 좋아해요?

장 미쉘 바스키아, 에곤 쉴레 좋아했다가 지금은 샤갈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최근에는 콰야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해요.

색채를 자유자재로 묘사하는 분들을 좋아하시네요. 보통 내면에 끓는점이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죠.

콰야 작가님의 그림 같은 경우에는, 정말 소장하고 싶을 정도예요. 

되게 예술적이시네요.

그냥, 그렇지 않나요? 예쁜 거 보면 즐겁지 않아요? 요즘에는 집 꾸미면서 덴마크산 빈티지 가구에 빠졌어요.

예술적인 정재광 배우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전시장 많이 가고, 아트 페어도 가고, 그림도 그리고. 또 제가 좋아하는 편집샵이 있어요. '아이엠샵'이라고 하는 핫한 곳인데, 거기에 요즘 되게 잘 돼서 뿌듯해요. 이번에 더 현대 서울에도 입점했더라구요. 

오늘 입은 옷도 '아이엠샵' 건가요?

이건 ZARA입니다(웃음). 그래서 그냥 편집샵도 가고, 요즘 어떤 디자이너가 있는지, 어떤 게 핫한지 그런 것도 살펴보고요. 그리고 걸어요, 계속, 계속, 걸어요. <낫아웃> 감독님이 저희 집 근처에 살아요. 가끔씩 감독님한테 연락드려요. "뭐하세요?"라고 여쭤보면 "누워있어."라고 하시죠. 그럼 그 때부터 "나오세요." 해서 걸어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생활 속 루틴도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을 많이 마시는 것. 그리고 블루투스를 켜고, 음악을 틀어요. 그 다음에 날씨에 따라 나의 기분을 좋게 해줄 수 있는 옷을 입는 것. 나가서 에어팟 끼고... 

브이로그 찍는 건가요?

하하. 사실 결국엔 건강은 정신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이 행복한 곳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건전한 대답인데요. 불건전한 대답 없나요?

술 엄청 마시고 싶죠. 근데 코로나 때문에 쉽지가 않아서. 

술 좋아하세요?

소주는 싫어해요. 맥주나 와인. 

좋아요. 앞으로의 꿈과 목표가 있다면요?

꼭 재미있어야 되는 건 아니죠? 어차피 전 재미없는 사람이니까요(웃음). 사실, 없어요. 정말 없어요. 제 걸음걸이에 맞춰서, 제 호흡에 맞춰서, 제 그릇에 맞춰서 소화해내고 싶어요. 애써 내가 뭘 한다기보다도 그냥 흐르는 대로, 나대로 해내고 싶어요. 지난 과거를 쭉 돌이켜 보니까, 이루려고 노력했던 것, 욕심냈던 것들이 다 안 됐어요. 오히려 내려놓았을 때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더라구요. 제가 요즘에 많이 걷는다고 했잖아요. 요즘 걸으면서 빠진 하나의 사유가 있어요. 이 지구라는 것, 이 행성에 대한 생각인데요. 이 행성을 우리가 사진으로 보면 되게 신기해하고, 놀라워 하잖아요.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 신비로움이 무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이 세상을 신비롭게 보려고 해요. 마치 머리카락이, 손톱이 계속 자라나는 것처럼, 나무들도 계절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이 모든 것들이 지구의 어떤 법칙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이 자연의 법칙에 잘 수긍하며 살아가면 되는 거고, 그러면 두려움도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에요. 요즘 우주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대답인데요?

휴, 다행이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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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광(JEONG JAEKWANG)
정재광은 2016년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  2021년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배우이다. 드라마 <구해줘>, <사이코지만 괜찮아>, <알고있지만>, 영화 <버티고>, <낫아웃> 등으로 영화업계를 넘어 대중들에게 점차 얼굴을 알리고 있다.

Photo By 유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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