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매거진 농구인생] Inside

지나온 곳도, 앞으로 나아갈 곳도, 스포츠 캐스터 한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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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2. 15:001,613 읽음

- '매거진 농구인생' 1월호 내용입니다 -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농구인생 구독자 여러분. 프리랜서 스포츠 캐스터 한형구입니다.

오늘은 '인터뷰어'가 아닌 '인터뷰이'로 앉아 계세요. 기분이 어떠신가요?(웃음)
누구를 인터뷰하기만 해봤지 이렇게 제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하는 건 처음이에요. 설레면서 긴장도 되고 머리가 하얘지네요.(웃음)

먼저 스포츠 캐스터라는 직업을 언제부터 꿈꾸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조금 특별하게도 7~8살 때부터 스포츠 캐스터를 꿈꿨어요. 아버지께서 프로야구 해설을 하셨었는데, 잠실 야구장에 가면 항상 옆자리에 앉아계시는 스포츠 캐스터분들을 칭찬하고 인정하시더라고요. 어린 마음에 '나도 저 자리에 앉으면 아버지한테 인정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스포츠 캐스터를 꿈꿨던 것 같아요.

그럼 어렸을 때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반장, 학생회장도 하고 수업 시간에도 반에 한 명씩 있는 말 많은 학생이었죠.(웃음) 그리고 운동하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친구들이 게임을 할 때 저는 공 하나만 가지고 놀았거든요. 눈 오면 눈 치우고 농구하고, 비 오면 수건으로 코트를 닦은 다음에 농구를 했어요. 농구 하다가 손가락만 여섯 번이 부러졌었는데, 교통카드를 잘라서 부목을 대고 농구 할 만큼 농구에 미쳐있던 학생이었죠.

아버님께서 야구선수 생활을 하셨고 운동을 좋아하는 활발한 학생이었으면 운동선수의 길을 걸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사실 엘리트 야구선수 생활을 3개월 정도 했었어요. 야구를 하기 위해서 전학까지 갔었는데 엘리트의 세계는 냉혹하더라고요.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하고 3개월 만에 그만뒀는데 옆에서 친구들이 하는 농구가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는 거예요.(웃음)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농구에 빠지게 됐죠. 

혹시 농구 실력을 여쭤봐도 될까요?(웃음)
여기서 보여드릴 수는 없는데, 대학교 시절에는 농구대잔치 2부리그에서 나름 공격도 하고 슛도 던지는 선수였습니다.(웃음) 중, 고등학교 때는 시대회 우승, 도대표 정도까지 했었고 군대에 있을 때는 현재 3X3 선수로 활동하는 유경식 선수와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전국대회 우승도 해봤어요. 

그럼 'AAB' 리그에 중계가 아닌 선수로 참여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출연하는 순간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웃음) 지금은 실력도 많이 떨어졌고, 사실 팀원들에게 살짝 얹혀가는 스타일이라 중계를 더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대학 졸업 이후에 오랜 시간 장교로 복무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캐스터를 꿈꾼 사람으로서는 조금 의외의 선택 같아요.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세 분이 모두 장교 출신이세요. 아버지는 상무에서 전역하셨는데, 일반 병사의 입장에서 장교로 복무하는 게 훨씬 더 좋아 보이셨던 거죠.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장교로 보내겠다는 신념이 있으셨고 저와 형은 별 생각 없이 어렸을 때부터 약속을 한 상황이었어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장교로 6년 4개월이라는 시간을 복무하게 됐습니다.

장교로 복무하더라도 더 짧은 기간 동안 복무할 수 있지 않나요?
2년 4개월만 다녀올 수도 있었는데, 복무기간이 길어지면 4년 장학금을 현금으로 주는 제도가 있었어요.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등록금에 대한 부담도 덜고 30살에 캐스터의 길을 시작하더라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6년 4개월을 복무하기로 했죠.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관련이 있는 정훈장교로 복무를 했었고요.

사실 6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정말 긴 시간이잖아요.
말이 6년 4개월이지 일반 병사 복무기간의 3배가 넘는 시간이잖아요. 장교로서 해야 할 일도 적지 않았고, 2년 4개월이 지나고 동기들이 전역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전역하고 취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제가 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계속 찾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농구였어요. 처음 근무했던 곳이 원주였는데 동호회 농구가 정말 잘 되어있거든요. 그곳에서 이현승 선수를 처음 만나 농구를 같이 하기도 했었고, 퇴근하면 무조건 농구 하러 가서 스트레스 풀면서 버텼죠.(웃음)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만 말씀해주세요.
일반 병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학생이나 민간 기업들에게도 군악대, 연예병사 등을 활용해서 위문 공연을 해요. 그때 제가 진행을 맡으면서 소개했던 사람이 슈퍼주니어의 려욱, 은혁 같은 사람들이었어요. 저보다 4~5살 많은 형들인데 데리고 다니면서 "오늘은 특별히 사진까지 찍어드릴게요. 이리로 오세요." 하고.(웃음) 일반 방송이었다면 정말 최고의 MC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정말 특별한 추억이죠.

전역 후에는 바로 스포츠 캐스터 준비를 하신 건가요?
바로 아카데미 학원을 다니면서 기본기를 다졌고, 운이 좋게 3X3 프리미어리그 현장에서 중계할 기회가 주어져서 박재민 형님과 함께 중계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원서를 썼는데 6개월 동안 100번을 넘게 떨어졌죠.

100번을 넘게 떨어지면 '이게 맞는 길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은데.
1년 이내에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모든 걸 그만두고 일반 회사에 가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1년이라는 시간은 저에게 주는 선물이었어요. 긴 시간 동안 갇혀있던 생활을 하다 보니까 1년 정도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무턱대고 집 나와서 월세방에 살면서 학원을 다녔고, 영상 포트폴리오 촬영이 필요하면 메이크업 받고 스튜디오 빌려서 촬영도 했어요. 근데 원서에서 떨어지면 촬영했던 건 그냥 사라지는 거거든요.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모든 게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두 달 전에 찍었던 영상 보면서 피드백하고, 100개 써서 떨어지고 나면 '200개 쓰면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시도를 했죠. 

그런 노력의 과정 끝에 현재는 다양한 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 3대3 농구연맹이 주관하는 3X3 대회 중계 캐스터이자 콘텐츠 진행자이고, 두산 베어스 자체 청백전 중계와 비시즌 활동 소개, 삼성 썬더스와 삼성생명 블루밍스의 구단 콘텐츠 진행,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에서 주관하는 경기 중계, SBS 골프에서 유플러스 골프 어플을 통해 KLPGA도 중계하고 있습니다. 또 가장 애정이 가는 AAB(All About Basketball) 채널에서 픽업 게임도 중계하고 있습니다.(웃음)

정말 다양한 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 스포츠는 종목마다 특성이 달라서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그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해설위원분들은 한 종목의 전문가로서 방송을 하시지만, 스포츠 캐스터는 그 종목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방송의 전문가로 방송을 해야하잖아요. 그런데 결국 그 종목을 이해하지 못하면 방송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고 해설위원분들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농구나 야구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계를 위한 지식과는 차이가 크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종목 중계에 들어갈 때마다 기본적인 용어와 룰부터 시작해서 중계를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가요.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들고 힘이 들었지만 다양한 종목의 중계 경험이 지금 저에게는 큰 무기가 되고 있죠. 

중계 준비과정에서 특별히 신경을 쓰시는 부분이 있나요?
대부분의 캐스터분들이 기록을 준비하실 텐데, 중요한 건 공식기록만 봐야 해요. 프로 농구를 기준으로 보면 KBL에서 제공하는 공식 기록만 확인해야지 다른 곳에서 가공된 기록들을 사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기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그 중계에 대한 신뢰는 바로 사라지는 거잖아요. 또 요즘에는 정보가 정말 많기 때문에 정보를 찾는 과정보다 많은 정보들 속에서 신뢰할 수 있고 올바른 정보를 찾는 작업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 중계할 때는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중계를 하시나요?
저는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40점 차이가 나는 가비지타임이 나왔다고 해서 "40점 차이입니다. 오늘 경기는 끝났습니다. 그냥 편하게 보시죠."라고 하면 정말 0점짜리 캐스터잖아요. 40점 차이가 나더라도 "이번 시즌 신인으로 뽑힌 차민석 선수가 투입될까요?", "오늘 프로무대 첫 득점을 올릴 수 있을까요?" 아니면 기록을 찾아보면서 "정규리그 500경기 출전을 달성한 정영삼 선수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스토리텔링을 하는 거죠. 시청자분들이 경기 외적으로도 저희와 함께 방송을 끝까지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관련 자료도 많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준비해둔 모든 자료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잖아요.
실제로 현장에서 준비한 자료의 10%만 사용해도 많이 쓴 거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 그렇다고 준비를 덜 할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100% 다 준비를 해서 가야 제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웃음) 또 자료를 가지고 들어가서 해설위원분들과 공유를 하면서 중계를 할 수도 있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되기 때문에 중계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여러 종목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종목은 아무래도 농구겠죠?(웃음)
제가 이 자리에서 인터뷰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농구를 중계할 때 가장 편하고 설레요. 일할 때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들잖아요. 더군다나 요즘 KUSF 중계를 할 때나 3X3, AAB 리그에서 모두 조현일 해설위원과 함께 중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또 어떻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있어요. 아이가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 느낌의 설렘이 드는 건 농구뿐인 것 같아요.

특히, 조현일 해설위원과의 호흡은 정말 모든 농구팬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조현일'이라는 이름에 묻어가는 거죠. 그리고 호흡이 잘 맞는 이유는 조현일 해설위원이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배려심이 많아요.(웃음) 그러다 보니까 캐스터가 어떤 말을 해도, 흔히 말하는 죽은 패스를 줘도 슛을 성공시키는 해설자가 조현일 해설위원이거든요. "형구야, 너 마음껏 1대1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안 되면 나 줘." 이런 느낌이에요.(웃음) 그래서 저는 자신감이 더 올라가고 시너지가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현재 프리랜서 캐스터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프리랜서는 장, 단점이 확실할 것 같은데.
제 가치에 따라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제가 잘하면 잘한 대로 하는 만큼 인정받는다는 게 굉장히 좋아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조금만 못하더라도 매일 하던 일이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는 불안정성이 있죠. 그래도 저에게는 정말 오랜 시간을 꿈꿔온 일이었기 때문에 단점을 다 지우고 장점만을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형구 캐스터가 생각하는 스포츠 캐스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고 한 경기 중계를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도 굉장히 길고 힘든 직업이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일단 가장 좋은 환경, 좋은 자리에서 스포츠를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들과 인터뷰도 할 수 있잖아요. 또 예를 들어 제가 2020 3X3 프리미어리그를 모두 중계했다고 하면 그 화면에 나오는 중계 목소리는 영원히 남거든요. 그게 정말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손흥민 선수가 말도 안 되는 골을 넣어서 그 장면을 떠올리면 당시 중계했던 캐스터와 해설자의 목소리도 함께 떠오르잖아요. 그런 게 뜻깊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스포츠 캐스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제가 조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스포츠 캐스터로서 기술적인 부분은 누구나 훈련을 받으면 어느 수준까지 성장하고 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제외하고 항상 꿈을 그리면 좋겠어요. 고등학교 때 '러브스쿨투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항범 대표님과 데프콘 씨가 학교에 온 적이 있어요. 그때 같이 농구를 하면서 저는 캐스터가 꿈이라고, 나중에 캐스터가 되면 꼭 한 번 더 같이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한 기억이 있는데, 지금 실제로 같이 행사도 진행하고 농구도 하거든요. 또 대학교 때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농구대잔치 경기를 하면서 '나중에 여기서 꼭 중계를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 곳에서 3X3 프리미어리그를 중계했어요. 오늘 이 인터뷰도 제가 꿈꿔오던 그림 중에 하나였거든요. 스포츠 캐스터가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마음껏 꿈꾸고 도전하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목표도 궁금해요.
스포츠 캐스터라면 누구나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메가 이벤트  중계를 꿈꾼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 지금 중계하고 있는 다양한 종목 외에도 새로운 종목 중계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또 스포츠 캐스터가 아닌 진행자의 모습으로서도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요. 흔히들 부캐라고 하죠.(웃음) 캐스터와 진행자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의 목표입니다. 

한형구 캐스터의 농구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질문이 상당히 어렵네요.(웃음) 제 농구인생은 '발자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나온 곳을 보면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잖아요. 초등학교 때 근린공원 흙바닥에서 농구를 했었고 중, 고등학교 때는 아파트 농구장에서, 대학교 때는 농구대잔치가 열렸던 체육관에서, 군대에서는 원주 그리고 충주에서, 지금은 농구 중계가 이뤄지는 모든 곳에서 항상 농구와 함께 해왔거든요. 물론 앞으로 내디딜 발자국들이 완벽한 모양으로 찍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농구와 함께할 제 인생이 설레고 기대돼요. 제 농구인생은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농구인생도 많이 응원해주시고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인터뷰 소감이 궁금해요.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정말 '농구인생'에서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연락받았을 때 내가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인지 고민도 했었는데, 어떤 정답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또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왔거든요. 이런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스포츠 현장에서 제 모습과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씀드리면서 앞으로도 농구인생에서 언제든 불러만 주시면 바로 달려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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