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낮게 달린 과일 이젠 없다” 경제 살 길 구조개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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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06. 오전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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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일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 노동시장 세미나'에서 "우리에게 이미 낮게 매달린 과일은 없으며,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려면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노동 개혁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우리에게 낮게 매달린 과일은 더 이상 없다”고 했다. 손쉽게 경제 성장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는 비유다. 그는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수반되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로 구조적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길은 노동·교육·연금 개혁 등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고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뜻이다.

역대 한은 총재와 달리 이 총재가 직설적 쓴소리를 자주 내놓는 것은 한국 경제가 위기를 탈출할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작년 7월 기업인 대상 강연에선 “10년 넘게 중국 특수(特需)에 취한 바람에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가야 할 시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작년 5월엔 “(구조적 저성장 문제를) 재정·통화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란 말도 했다. 재정 통화 정책이란 정부가 빚을 내 돈을 푸는 방식이다.

벽에 부닥친 경제를 도약시키려면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이 과제를 미루고 또 미뤄왔다. 정부는 땜질식 처방으로 눈앞의 위기만 모면하려 하고 사회 각 분야의 견고한 기득권층은 제 이익을 지키려 못 하는 일이 없는 지경이다. 신산업의 싹부터 잘라버리는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사회적 타협을 주도해 구조 개혁의 물꼬를 터야 할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해 숫자가 많은 이익집단에 영합하기만 한다. 그 결과가 미국·일본보다 낮은 구조적 저성장이다.

인공지능(AI)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과거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남보다 앞서 나가지 못하면 즉시 도태되는 이 혁신의 시대에 한국 경제가 살아남으려면 창의적 인재를 키우고(교육 개혁), 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혁신의 장을 조성하고(노동·규제 개혁),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줘야 한다(연금 개혁).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과 달리 우리는 청년 세대의 역동성이라는 잠재력이 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통해 단군 이래 최고 경쟁력을 가진 우리 청년 세대가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가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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