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문화재위원회가 충남 아산 현충사에 걸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현행대로 유지하겠다며 밝힌 이유입니다. 지난해 9월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을 내리고 300년 전 숙종이 내린 현판을 걸어달라고 한 이순신 장군의 15대 종부 최순선씨의 요청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이 숙종 현판을 교체해 설치한 것이 아니라 현충사의 성역화 사업 당시 신사당을 건립하면서 새로 만들어 걸었던 것이라 그것 나름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콘크리트 광화문 현판식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등 국내 주요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1968년 열린 광화문 현판식. 콘크리트로 복원된 광화문에 박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콘크리트 광화문은 복원 직후에도 상당한 비판을 받았고, 이내 헐려 사라졌다. |
세상을 떠난지 40년이 되어가지만 우리 사회에 ‘박정희의 그림자’는 여전하고, 현충사에서 보듯 문화재 분야도 예외가 아닙니다. 내·외국인 할 것 없이 문화재 중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들을 맞는 경복궁이 대표적입니다.
1968년 12월 11일 광화문 남쪽 마당. 박 전 대통령은 9개월간의 복원 공사 끝에 열린 광화문 준공식에 참여했습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일제가 조선총독부청사를 짓기 위해 1926년 경복궁 동쪽,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인근으로 옮겼고, 6·25 당시 문루가 파괴되어 석축만 흉하게 남아 있었는데 이때 복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목조건물을 콘크리트로 복원하는 ‘해괴한’ 짓을 벌인 터라 비난이 컸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천년을 지탱할 것”이라며 감격해 했으나 2007년 해체되어 사라졌습니다.
‘콘크리트 광화문’의 흔적이 서울역사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에 남아 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는 전통 건축의 구조를 설명하게 위한 콘크리트 뭉치들이 서 있는데 해체된 콘크리트 광화문의 일부를 가져다 둔 것입니다. 한때 경복궁의 정문으로 당당한 위세를 뽐냈던 건물의 말로가 비참합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수장고에는 박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박정희 현판’의 또 다른 버전인 셈입니다. 지금 광화문의 현판의 두 배에 가까운 약 6m의 크기입니다. 현판 뒷면에 철제 프레임까지 대놓아 무게가 상당하고, 비둘기 분비물들이 수십 가마니나 나올 정도로 많이 나와 떼어낼 때 상당한 애를 먹였던 이 현판은 “자료 수집 보관 차원에서”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어떤 대접을 받을 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유물처럼 관리되고 그렇지는 않다”는 게 박물관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 권력기관의 관계자가 박물관에 전화를 걸어와 “잘 보관하고 있어라”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끔찍히 여겼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제 찾을 지 모르니 미리 단도리를 쳐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1975년 콘크리트로 복원된 영추문은 지금도 경복궁의 서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