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과 유엔사는 안보의 두 축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선제공격에 자극받은 북한의 도발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서 70년 전 워싱턴 선언과 함께 유엔군사령부(UNC)의 존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마침 정부는 우리 안보에서 유엔사의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 정전협정 70주년을 계기로 17개 유엔사 회원국 장관급 대표단 등 300여명이 참석하는 '한·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를 다음 달 14일 서울에서 개최한다.
-유엔의 날(10월 24일)을 앞두고 유엔사의 의미가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6·25전쟁 3년간 미군을 비롯한 우방국 젊은이 194만여 명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해 전사자 4만 669명 등 14만 89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는 유엔군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돌이켜 보면 73년 전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풍전등화 위기에 처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엔과 유엔사가 만든 기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평화를 유지하려고 ‘집단안보’를 지향했던 유엔이 미국 주도로 한반도 분쟁에 신속히 개입했고, 그 산물로 탄생한 조직이 유엔사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83호(S/1511)에 따라 유엔군이 파병됐고, 제84호(S/1588)에 근거해 1950년 7월 24일 미군 극동군사령부를 모체로 일본 도쿄에서 유엔사가 창설됐다. '다국적군 통합사령부'인 유엔사는 1957년 7월 1일 서울로 옮겨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지켜주고 있다."
"전략적 가치 큰 유용한 안보자산"
-북한은 정전체제를 무시해왔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북한이 자행한 크고 작은 정전협정 위반 건수는 42만여 건이다.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2010년) 등 고강도 도발만 260여 건이다. 북한은 유엔사가 1991년 한국군 장성을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반발해 중립국감독위원회 북·중 측 국가인 체코와 폴란드 대표단을 축출했고, 1994년 12월에는 군사정전위를 철수하고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했다. 이처럼 북한의 중감위 무용론에 이은 군사정전위 무력화, 정전협정 포기 선언(1996년) 등 집요한 방해 공작에도 유엔사는 지난 70년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왔다."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에 유엔사가 주목된다.
"북한이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중장거리 미사일과 군사정찰위성 개발에 집착하는 와중에 북·중·러 군사 밀착으로 안보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런 불안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존재가 굳건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그리고 유엔사다. 특히 유엔사는 전시에 ‘전력 제공자(Force Provider)’로서 긴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든든한 우방이자 전략적 가치가 큰 유용한 안보자산이다.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회원국들에 '한국 작전전구(戰區·KTO)'에서 작전에 필요한 전력·장비·물자를 창출·제공해서 한·미 연합작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송영길 "유엔사는 족보 없다" 폄훼
6·25 전쟁 당시 유엔 결의에 따라 전투 부대를 보내준 나라는 모두 16개국이었다. 에티오피아와 룩셈부르크가 자국 사정으로 탈퇴하고, 대신 의료지원국이었던 덴마크·노르웨이·이탈리아가 유엔사에 가입해 17개국으로 늘었다. 2020년 8월 당시 민주당 소속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유엔사라는 것은 족보가 없다"며 유엔사의 국제법적 지위를 비하했고, 유엔사 강화에 반대해온 문재인 정부 시절 독일의 유엔사 가입이 무산됐다.
윤석열 정부는 6·25전쟁 당시 의료 지원을 해준 독일(서독)의 추가 가입에 적극적이어서 조만간 18개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2011년부터 유엔사 회원국들은 실병력을 보내 연합연습을 해왔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훈련을 대폭 축소했다. 장광현 사무총장은 "한국은 전력 사용국이라 현재 유엔사 회원국(전력 제공자)이 아니다"며 "회원국이 돼야 유엔사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한반도 작전구역과 일본 후방기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사시 유엔사 회원국들은 한국에 파병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서방 국가들이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냈지만,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최근 중·러가 유엔 무대에서 공공연히 북한을 두둔하는 상황 때문에 북한이 기습 도발할 경우 유엔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할 거라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유사시 한·미동맹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고, 유엔사는 전력 제공자로서 제한 없이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엔사는 이미 73년 전 유엔 안보리 결의 83호와 84호를 통해 창설된 조직이어서 한반도 유사시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도 현재의 임무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
유엔사 해체 땐 파병 재결의 어려워
-유엔사가 해체된다면.
"그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유엔사 해체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을 돕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중·러가 거부할 우려가 매우 높아 파병 결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한국 안보에 매우 유용한 역할을 해온 유엔사를 쉽게 해체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엔사를 보험상품에 빗대면 국제사회가 오직 대한민국을 위해 마련한 ‘맞춤형 특별 안전보장보험’ 같다. 북한은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과 연계해 유엔사 해체를 전제조건으로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북한의 유엔사 해체 요구는 평시보다 전시에 유엔사 회원국들의 전력 제공을 의식한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북한과 국내 종북 세력처럼 유엔사를 폄훼하고 해체를 주장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을 붕괴시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이자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북한이 핵 무력을 강화하는 등 대남 적화 야욕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유엔사를 절대로 해체하면 안 된다."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가 중요한데.
"1만km 이상 떨어진 미국 본토보다 1150km 거리인 주일 유엔사 후방기지는 한반도 유사시 신속대응이 용이하다.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에 산재한 주일 미군기지 80여곳 중에 전략적 요충지 7곳을 유엔사 후방기지로 지정해 운용 중이다. 후방기지는 유사시 주일미군과 유엔사 회원국들이 제공하는 전투병력과 장비·물자를 한반도로 전개하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이유만 보더라도 한·일 관계는 개선하는 것이 맞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이들 후방기지도 모두 철수하게 돼 있어 한·미연합작전이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우리가 유엔사를 소중히 여겨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