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공무원과 정치적 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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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7.14. 오전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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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요즘 정치학 연구자의 마음이 편치 않다. '정치'라는 단어의 내포가 나빠서다. 인간사에서 정치를 빼놓을 수 없음에도 '폴리페서'나 정치인은 잘해야 3류, 정치학자는 2류로 취급한다. 흔히 쓰는 '정치화' '정치공학' 모두 냉소적 표현이다.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하고 평생 바람직한 정치체제를 탐구한 아리스토텔레스나 정치학의 고전인 '군주론'의 저자지만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 짓지 않은 탓에 음모론을 정치학 반열에 올려놓은 마키아벨리도 억울하긴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한 정치학자의 말은 위안이 된다.

정치학자에게 가치중립성만큼이나 논란이 되는 개념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다. 우리 헌법은 공무원의 국민에 대한 봉사와 책임을 요구함과 동시에 그 신분과 정치적 중립을 보장한다. 하지만 제아무리 공무원인들 생존경쟁이 투영된 가치의 배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사회적 엔트로피의 증가에 따라 누구도 부, 정의, 자유, 평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가치를 독점하기 어려운 백가쟁명 시대에는 더 그러하다.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넘어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은 경제와 정치시장의 조력자로 배가 흔들릴 때마다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 공무원이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졌다. 선거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면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공무원은 선출된 권력의 민주적 통제를 받는 것이 당연시된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점점 '보장'이 아닌 '의무'로 읽힌다. 집권세력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직업 공무원은 "감당할 수 있겠나" "너 죽을래" "배째드릴까요"라는 모욕을 수시로 참아야 한다.

탈원전 정책이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등 최근 논란에서도 드러났듯이 공무원의 대응전략은 2가지다. 집권세력의 요구를 잘 수행하는 이는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는 승승장구한다. 그 신분이 헌법으로 보장된다고는 하나 좌천의 두려움만큼이나 승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관료는 드물다. 하지만 생계형 '직업' 공무원은 중립성을 명분으로 복지부동을 택한다. 사명감으로 가득 찬 집권세력에 이는 난적이다. "관료를 장악하지 않으면 결국 관료에게 밀려 아무것도 못한다"는 권력의 조바심에 애먼 공무원이 희생되기도 한다.

정치과잉 시대에 복원력을 상실한 중립성은 내로남불 당파성의 손쉬운 타깃이다. 배가 좌로 기울면 균형을 잡기 위해 우로, 우로 기울면 좌로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공무원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태적이고 기계적인 중립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정치운동'과 '정치관여'를 포괄적으로 금지한 현행 국가공무원법은 특정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와 더불어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표현'도 금지한다. 헌법질서 수호와 유지를 위한 정치적 의사표현까지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소수의견도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중립성 훼손으로 공무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신뢰를 저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합헌이라고 본다.

문제는 정치화가 아닌 사유화다. 공무원은 사유화한 권력이 아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다. 미국의 정치학 대가 애론 윌다브스키는 '스피킹 트루스 투 파워'(Speaking Truth to Power)에서 '절대권력자에게 직언하기', 더 나아가 '주권자인 국민에게 진실을 말해주기'가 공무원의 사명임을 역설한다. 공무원을 '하지 말아야 할 일'에 가두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헌법 수호와 유지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치적 중립의 의미를 확장해야 한다. 쟁의행위나 팬덤정치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장치로서 공무원의 단결할 권리, 단체교섭권, 기타 단체행동을 할 권리는 허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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