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낳은 부모 고소했다"…분노에 치민 12살의 절규[이현정의 현실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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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26. 오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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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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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제가 부모를 고소했어요. 절 태어나게 했거든요."

레바논의 한 법정에서 12살 소년 ‘자인’이 덤덤하지만 당당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자인의 부모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봅니다.

자인은 자식보단 노예 같은 존재입니다. 집주인의 가게에선 허드렛일을 하고 집에선 어린 동생들을 돌봅니다. 엄마는 자인의 뒤통수를 때리며 "꺼져 이자식아"를 반복하고, 아빠는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합니다. 자인에게 딸린 동생만 여러 명. 자인에게 삶은 그저 고될 뿐입니다.

자인은 여동생 사하르가 월경을 시작하자 혈이 묻은 속옷을 빨아주고선 동생에게 신신당부합니다. 절대 누구에게도 월경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집주인 아들에게 팔리듯 시집갈 게 뻔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월경이 결국 들통난 사하르는 집주인 아들에게 강제로 보내집니다. 얼마 뒤 여동생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분노에 치민 자인은 집주인 아들을 칼로 찌릅니다. 그리고선 재판에 넘겨지죠.

이 이야기는 2018년에 제작된 레바논·프랑스·미국 합작 영화 '가버나움'입니다. 영화는 어린 소년이 경제 능력이 없는 부모의 방임과 학대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가버나움'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비롯해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을 비롯한 출연진이 실제 난민이거나 불법 체류자여서 더욱 화제가 됐죠.

주인공 자인은 유령 아이입니다. 출생 신고도 되지 않은 미등록 아이인거죠. 12살의 나이 역시 추정되는 나이일 뿐입니다.

죽어서야 존재를 알리는 유령 아이들


영화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내에도 유령 아동들이 적지 않습니다. 유령 아동들은 죽어서야 자신의 존재를 세상을 알립니다. 최근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과 화성 '영아 유기' 사건도 그랬습니다. 정부 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동안 출생신고 되지 않은 영아는 2200명이 넘습니다.

영아를 살해한 부모들은 “나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거나 “아내가 낙태한 줄 알았다”며 뻔뻔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영화 속 자인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인생에 굴복하라는 태도만 가르칩니다.

"우린 그냥 벌레야. 기생충이라고. 서류 없는 삶을 인정하든지, 아님 창문으로 뛰어내리든지 둘 중 하나야!"

그러면서 외부에선 억울함을 호소하죠.

"저도 이렇게 나서 자랐을 뿐이에요. 저도 부모 잘 만났으면 이렇게 안 살았어요. 가정을 꾸린 게 후회스럽습니다. 제 인생을 망쳤거든요."

어쩌면 그도 학대와 방임의 피해자일지도 모릅니다. 빈곤의 대물림과 교육의 부재가 당연시 여겨지는 환경에서 자란 피해자 말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부모로서 저지른 죄가 합리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학대와 방임을 반복하면 말이죠.

자인의 어머니는 소년교도소에 있는 자인을 방문해 새로운 소식을 전합니다.

"신은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돌려주신단다. 엄마 아기 가졌어. 네게 동생이 생길거야. 딸이면 좋겠어. 사하르라고 짓게."

이에 자인은 이렇게 답합니다.

"엄마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다신 여기 오지 마세요. 엄마는 감정이 없나 봐요."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는 지긋지긋해요."


사람들은 자녀를 흔히 ‘사랑의 결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엔 사랑의 결실 보다는 욕정의 결과물일 때도 있겠죠. 그러나 적어도 자녀를 세상 밖에 나오게 했다면 자녀는 ‘결과’이기 전에 ‘책임의 소재’가 됩니다.

부모란 무엇일까요? 아이를 낳으면 누구나 부모가 되는 걸까요? 부모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답이 명백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현실에선 정작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이러한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사이 죄 없는 유령 아이들만 늘고 있습니다.

자인의 마지막 대사는 방임과 학대를 반복하는 부모들, 그리고 이를 용인하는 사회를 꼬집습니다.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는 지긋지긋해요..(중략)..지옥 같은 삶이에요. 통닭처럼 불 속에서 구워지고 있어요. 인생이 거지 같아요.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 받고 사랑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바닥에서 짓밟히길 바라죠. 부모가 애를 그만 낳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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