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직업의 자유 침해 등
계약 곳곳 불공정 소지 많아
공정위 “심사 청구시 적극 검토”
전문가 자문 통해 불공정 차단해야
연예계 등 기존 산업군부터 유튜버, 인터넷 방송 같은 1인 방송 업종에서도 ‘노예계약’ 논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유튜버 등 1인 방송에 대한 산업 규모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많은 1인 방송인이 기획사와 부당한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7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B엔터테인먼트의 전속계약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정·고시하는 ‘대중문화예술인(가수·연기자) 표준전속계약서’와 비교하면 다수의 계약서 조항들이 약관규제법이나 민법 제103조에 반하는 무효인 조항들로 사실상 노비문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따르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계약서에는 갑과 을, 모두에게 권리·의무 조항이 있기 마련인데, B엔터테인먼트 전속계약서는 전반적으로 기획사에게는 권리·의무 조항이 있지만 1인 방송인에게는 의무조항만 있을 뿐 권리조항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계약서의 각 조항을 따져보면, 전면적인 사생활·직업의 자유 침해(제2조 제6,7,8항), 위약금·위약벌 현저히 과다(제3조 제1,2항, 제9조 제2,3,4,5항), 기획사 측에 저작권·상표권 등 영구귀속(제7조), 기획사 측이 정산의무를 해태하는 등 계약을 위반하였을 경우 이를 제재할 수단이 전혀 없다는 점(제2조 제12항, 제4조 제3,4항) 등이 드러났다.
특히 사생활 자유 침해 관련해서는 1인 방송인이 시청자와 카카오톡, SNS 등으로 사적인 대화를 한 경우 기획사의 요청이 있을시 카카오톡, SNS 대화 내용 전부를 제출하고, 삭제된 대화 내용이 존재한다면 이를 복원해 제공해야 할 의무(제2조 제8항)가 눈에 띄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방송 출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나 행동을 일으켰을 때(제9조 제5항)’와 같이 기획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1인 방송인의 활동을 중지시킬 수 있었고, 1인 방송인은 기획사 직원으로부터 부당한 디렉팅 지시, 사적인 연락 등을 포함한 불화를 이유로 계약해지를 주장할 수도 없었다(제8조 제5항).
또한 1인 방송인이 일단 계약서에 서명하면, 기획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도 계약금의 5배에 해당하는 위약금을 지급하도록 정해두었는데 이와 동시에 기획사는 계약 해지에 따른 별도 손해배상을 1인 방송인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제8조 제4항).
이밖에도 분쟁으로 소송행위가 있을 시 기획사 소재지인 부천지원을 제1심 법원으로 정해놓거나(제12조), 1인 방송인이 플랫폼 약관에 벗어나는 행동을 함으로써 방송을 할 수 없게 된 경우, 그것이 고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1인 방송인의 책임으로 간주하고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배상하는(제9조 제4항) 등의 불공정 조항이 발견됐다.
법원 판결에서도 이와 같은 불공정계약에 대한 판단이 녹아 있다. 계약서 제8조 제5항 ‘상대방의 해지권 제한’과 유사한 사례에 대해 대법원은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의 신뢰관계가 깨어졌는데도 전속활동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연예인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직업의 자유 침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민사47부(재판장 이오영 부장판사)는 BJ가 계약 종료 후 타 방송사에서 활동함을 이유로 BJ매니지먼트 측이 위약벌금을 청구한 소송(2021가합501803)에서 “타 방송사에서의 일체의 방송을 금하는 전면적 방송금지 약정을 유효한 것으로 할 경우 어떠한 방송 활동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 및 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 경업금지조항은 약관규제법 제6조 또는 민법 제103조에 반해 효력이 없다”고 지난 6월 9일 판시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지난해 1월 4일 CJ ENM(DIA TV), 샌드박스네트워크, 트레져헌터 등 3개의 1인 방송 지원 사업자의 불공정 약관을 시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자세한 사항은 공정위 홈페이지 보도자료 참고.) 공정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1인 미디어 업계의 약관 조항에 대해 공정위가 어떤 점을 불공정하다고 보는지 시장에 신호를 준 적이 있다”며 “내년 조사계획이 다 수립되지 않았지만, 아직 불공정한 약관을 사용하는 사업자가 많아 신고를 통해 심사 청구가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기획사 측과 전속계약서를 작성할 때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 불공정 계약을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법률사무소 YG 이한결 변호사는 “최근 1인 방송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방송을 희망하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약관을 악용한 불공정계약 피해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엔터 측의 권유에 이끌려 섣불리 계약을 진행하기보다 전문변호사의 조력을 통해 계약 내용의 적정성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매일경제는 6일 B엔터테인먼트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통화연결을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회사측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