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대기업 수십조 대미투자, 공급과잉 부메랑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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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26. 오후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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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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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과잉→단가하락 악순환…통상 불확실성 겹악재
미중 갈등 이전보다 경영하기 '4배' 힘들어져
소·부·장 정책 디테일 미흡…장비업체 먼저 챙겨야
기업 최고 기술자 천문학적 대우해 '손흥민' 키워야
31년간 반도체 산업에 종사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의 막대한 대미투자에 우려를 나타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들이 수십조원을 미국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런 행동이 정상적이진 않다고 쓴소리를 날린 것이다. 앞다퉈 투자에 나설 경우 공급과잉 부메랑이 올 수 있고, 이는 국내 반도체산업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소재, 부품, 장비 업체 경영에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황 회장은 지난 24일 경기도 용인시 주성 연구개발(R&D) 센터에서 아시아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투자가 늘면 제품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들이 계속 미국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은 시장 논리를 따르지 않는 '끼워 맞추기식 투자'"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투자 행보가 이어지면 과잉공급 현상이 벌어져 반도체 시장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24일 경기 주성엔지니어링 용인R&D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황 회장은 국내 반도체 업계 원로로 꼽힌다.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제조용 원자층증착(ALD) 장비, 화학기상증착(CVD) 장비 등을 납품한다. ALD 장비는 메모리 업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납품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 시가총액은 25일 기준 1조6622억원, 올해 매출은 4320억원(KB증권 추산)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은 업황 뿐 아니라 미·중 갈등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주성엔지니어링의 국내 주거래처가 중국 비즈니스도 진행하는 SK하이닉스라는 점도 있지만 중국 사업 자체가 불확실해지고 있다고 봤다.

황 회장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미국의 대중 제재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부터 중국 견제가 이어지면서 경영 상황이 4배 나빠졌다고 했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 가장 값싸게 원자재를 살 수 있는 나라가 반으로 줄어 '2배' 어려워졌고 중국 등 가장 비싸게 제품을 팔 수 있는 나라가 반으로 줄어 '2배' 힘들어져 총 '4배'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황 회장은 "미국은 대중국 제재에 우방국도 동참하라고 했지만, 중국 사업을 접으라고 하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동참하라는 요구나 사업 접으라는 요청이나 비슷한 메시지고, 중국 사업이 언제 막힐지 몰라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미·중 갈등으로 중국 사업이 언제 막힐지 알 수 없어 미래 계획을 세우기 힘든 게 가장 답답하고 두렵고 힘들다"며 "기업이 명확한 대안을 짤 수 있도록 정부가 시간을 최대한 벌어줬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경기 주성엔지니어링 용인R&D센터.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황 회장은 정부의 경기도 소·부·장 클러스터 조성책에 대해서도 쓴소리했다. 디테일에서 미흡하다고 했다. 소·부·장 업체 중 어느 분야부터 지원할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반도체 관련 산업에서 세계 최고 업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분야를 '장비'로 꼽았다. 소재 기업은 원소재를 확보하기가 어렵고 부품 기업은 글로벌 표준화 변수에 휘둘릴 것으로 봤다.

그는 세계 최고업체를 온리원(Only One)으로 표현했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ASML을 염두에 둔 것이다. '슈퍼 을(乙)'로 불리는 ASML처럼 반도체 산업의 길목을 움켜쥐는 기업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황 회장은 "한국 반도체 업계 소·부·장 국산화율은 20%도 안 된다"며 "정부가 소·부·장 지원 정책을 짤 때 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슈퍼 을' 네덜란드 ASML처럼 '글로벌 온리 원' 장비 업체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신규 인력 육성과 기존 인력 방어 모두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신규 인력 육성 정책을 지나치게 학교에 기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지식인을 키우는 곳이고 기업은 기술자를 키우는 곳인데, 지금 기업에 필요한 것은 기술자들이라고 했다.

황 회장은 "기업이 키운 핵심 인재는 개인·기업·정부가 협의해 만든 '핵심 인재 풀'에 등재하고 우수 인력은 프로야구, 프로축구 선수처럼 천문학적 급여를 주면서 대우해줘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흥민 같은 월드클래스 온리 원 선수를 결코 키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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