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이 거덜낸 재정… 尹이 떠안은 3가지 금융정책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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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7. 오전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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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경제 위기 대응 정책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실패는 후임인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 시행에 많은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경남 양산 사저의 문재인 전 대통령 모습. /문 전대통령 페이스북,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고물가·고금리·자금시장 경색 등 경제 위기와 맞서 싸우고 있지만, 전임 문재인 대통령의 실정(失政) 후유증에 발목이 잡힌 모습이다. 경제 위기의 ‘최후 방어선’은 정부의 재정인데, 문 전 대통령의 과다한 재정 지출로 방어선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또 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실패도 윤 대통령의 고물가 대응에 부담을 주고 있다.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의 정책 실패 때문에 떠안게 된 딜레마들은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금융시장 사태에서 잘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체력이 약해진 탓에 윤 대통령이 공격적인 위기 대응책을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① 불안한 최후 방어선

지난 10월에 발생한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는 강원도가 지급 보증한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 2050억원을 모두 갚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정광열 강원도 경제부지사는 “도의 재정에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며 “이 결정은 김진태 강원도지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간에 직접 협의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금융시장이 불안해지자 ‘50조원+α’의 시장 안정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금 마련에는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국책 금융회사들이 참여한다. 외관상 민간 은행이 대거 동원됐지만, 지자체나 국책 금융회사를 통해 재정 자금을 투입하는 전략이 위기 대응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재정을 동원해 경제 위기에 맞서는 대응책은 정부가 최후 방어선에서 배수진을 친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발표가 아무리 거창해도 재정 상태가 나쁠 때에는 실탄을 동원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더 나아가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민간 부문과 지자체의 금융 부실이 정부로 옮겨가면서 재정이 부실 덩어리가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 위기에 적극 대응하려고 하고 있으나 재정 적자와 주택 대출 등 전임 정부가 넘겨 준 과도한 빚 부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5일 수출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윤 대통령./뉴스1

한 재정 전문가는 1997년 외환 위기 직전의 기아차 사태를 예로 들었다. 그는 “부실기업인 기아차를 공기업인 산업은행이 인수하겠다고 발표하자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정부가 부실해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며 한국에서 자금을 빼냈다”고 회상했다. 이어 “재정 상황이 괜찮았던 당시에도 이런 부작용이 생겼는데, 지난 5년간 국가 채무가 급증하고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재정을 유심히 보고 있는 지금, 정부가 민간 부실을 떠안는 조치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각종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을 낭비한 탓에 재임 5년 동안 국가 채무는 2016년 말 626.9조원에서 2021년말 970.7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36,0%에서 46.9%로 급등했다.

② 제 역할 못 하는 국채

지난 11월에 발생한 흥국생명의 외화채권 조기 상환(콜옵션 행사) 사태는 정부의 위기 대응력을 시험한 또다른 사건이다. 흥국생명이 국제금융시장의 관행을 깨고 외화 채권 조기 상환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흥국생명, 동양생명, 우리은행, 신한금융지주 등 한국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외화 채권 가격이 10~30%나 급락했다. 일부 기업들의 외화 채권은 아예 거래가 되지 않았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재무 상태에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매우 높은 한국전력이 채권을 무더기로 발행하면서 다른 기업들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채권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전 나주 본사. /한국전력

기업이 해외에서 외화 채권을 발행하기 어려워지면 발행 금리가 상승하면서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달러 자금난이 생기면 정부나 한전·산업은행 등 공기업이 먼저 나가 해외 채권을 발행했다. 한국 정부가 튼튼한 재정으로 보증하면서 국채나 공기업 채권의 발행 금리를 낮추면, 이 금리를 기준 삼아 한국 금융회사나 기업들도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이 아니다. 한 경제전문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정부와 한전 등 공기업이 채권을 너무 많이 발행해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채권을 시장에서 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최근 회사채 발행이 마비되자 5조원 규모의 시장 안정 기금을 추가로 조성하고 국채와 한전·가스공사 채권 발행 물량을 축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초우량 국채를 신호탄으로 쏘아 한국 경제 전체의 이자 부담을 낮추는 정책은 생각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경제정책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지난 6월 1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확대 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③ 근로자 vs 영끌 세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실패도 윤 대통령의 정책 선택을 제약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주택 공급보다는 투기 억제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추진하면서 결과적으로 주택 가격 급등과 2030 세대의 영끌 투자(영혼까지 담보로 잡히고 대출 받아 집 사기) 붐을 불러왔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가격 지수는 문 전 대통령 취임 초기인 2017년 5월 61.9에서 퇴임한 2022년 5월 100.5 로 62.4%나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2030 세대들은 빚을 잔뜩 내 아파트 매수에 나섰으나 최근 금리 인상과 아파트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바라본 도봉구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하지만 최근 전 세계 물가가 오르면서 경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근로자, 은퇴자, 노년층 같은 고정 수입자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빈부 격차가 심해진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이유이다. 한국 정부도 미국발(發) 금리 인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수입 물가도 상승하기 때문에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금리 상승은 빚내서 집 투자한 영끌 세대가 원리금 상환 압박에 못 견디고 결국 파산하는 사태를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으로는 2030 세대의 표를 잃게 만든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근로자와 영끌 세대의 표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게 됐다. 문 전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실패 후유증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 부문 부채가 빠르게 증가해 가계·기업 자금난 악화”

유창범 KB국민은행 자산운용1본부장 인터뷰

유창범(54) KB국민은행 자산운용1본부장은 현재 한국 금융시장의 최대 이슈인 회사채 시장 경색 현상에 대해 “지난 수년간 공공부문이 빠르게 확대된 반면 구조조정은 다소 미진했던 결과 공기업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채권 수급에 악영향을 준 면이 있다”며 “외환 위기 때보다 빚이 많아 수습되는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외환 위기 발생 2년 전인 1995년부터 27년째 외환·채권 트레이더로 일하고 있는 자금시장 전문가이다.


그는 먼저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거래가 원활하지 않고, 채권의 신용도에 따라 채권 간 가격도 많이 벌어지며, 채권 발행도 쉽지 않던 상황이 아직 정상화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 원인에 대해 “가까이 보면 공기업을 비롯해 신용도가 우량한 기업들이 채권을 많이 발행하는 바람에 그 이하 신용등급을 가진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고, 금리가 오르면서 투자자들의 위험 추구 성향이 낮아진 점도 있다”며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의 명목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속도로 증가한 채권 잔액에 큰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채권 가격은 금리가 하락할 때 반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내년에 물가상승률이 낮아져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채권을 사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권고한다. 지난 9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모니터에 한국 국채수익률이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유 본부장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한국이 갖고 있는 해외 투자 자산의 규모가 매우 크고, 그 해외 자산이 한국으로 다시 환류될 수 있다면 현재 채권시장이 직면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같은 국내 연기금들이나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 비중을 줄이고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유 본부장은 한국의 정부와 민간 부문의 부채가 최근 급격히 늘어나 채권시장의 자금 경색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나아가 “자금 경색 현상이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한계 기업, 즉 시장 경쟁력을 잃어버린 기업의 채권까지 안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현재의 유동성(자금) 위기가 지나가면 그 다음부터는 채권 간에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어서 좋은 기업의 채권은 좋은 가격에 거래되고, 안 좋은 기업의 채권은 안 좋은 가격에 거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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