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꺾인 것 맞나요?” 의·식·주 가격은 기록적 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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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12.06. 오전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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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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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씀씀이 줄였는데 지출은 되레 늘어났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공기업 직원 박모(45·서울 마포구)씨 가족의 지난달 가계부는 30만원 넘는 적자가 났다. 식료품비와 외식비 등 먹거리 지출이 1년 전 137만원에서 지난달 161만원으로 20만원 넘게 늘어나 “시장 가기 겁난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비(전기료, 가스 요금 포함)와 주택담보대출 이자 등 주거 관련 지출은 같은 기간 170만원에서 242만원으로 70만원 이상 늘어났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의류·신발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5.5% 올랐다. 상승 폭은 2012년 6월(5.6%) 이후 10년 5개월 만에 가장 컸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의류 매장./뉴시스

늘어난 두 자녀의 학원비(100만원→150만원)와 신용카드 할부로 낸 재산세 등까지 통장에서 빠져나가자 돈이 모자라 마이너스통장 대출이 쌓였다고 했다. 박씨는 “작년 이맘때만 해도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 월급까지 합쳐 매달 80만~90만원씩 돈이 남아 저축을 하거나 대출금을 미리 갚았는데, 올여름부터 적자 살림”이라며 “외식이나 배달을 줄였는데도 외식비 지출은 오히려 늘었다”고 했다.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로 외환 위기 이후 최고치였던 7월(6.3%)에 비해 1.3%포인트 떨어졌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물가가 떨어진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안정되면서 전체 물가 상승률은 낮아졌지만, 옷부터 외식‧가공식품, 주거 관련 비용까지 ‘의식주’ 가격은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류는 11년, 가공식품은 14년, 주거 관련 비용은 26년, 외식비는 31년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옷값 올라 아이들 옷만 겨우 샀다”

지난달 의류‧신발(세탁비 포함) 물가지수는 107.33(2020년을 100으로 본 상대적 지수)으로 1년 전에 비해 5.5% 올랐다. 2012년 6월(5.6%) 이후 10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이다. 11월 기준으로는 2011년(6.3%) 이후 11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옷감 재료인 면 등 원자재 가격이 올랐고, 주요 생산지인 중국의 인건비, 가공비가 크게 올라 의류 회사들이 최근 가격을 크게 올렸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겨울철 수요가 많은 장갑은 18.7% 올랐고, 실내화(14.1%)와 청바지(11.1%) 등도 10% 넘게 올랐다. 박씨는 “옷값이 너무 올라 남편이나 내 옷은 못 사고 애들 옷만 겨우 사주는 형편”이라고 했다.

먹거리도 신선 식품인 농축수산물을 제외하면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농축수산물과 주류 제외 가공식품을 묶은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는 지난달 4.8% 올라, 상승 폭이 10월(7.5%)에 비해 둔화됐다. 하지만 농축수산물을 제외한 나머지 먹거리 물가는 고공 행진 중이다. 식용유(43.3%), 밀가루(36.1%) 등 가공식품은 9.4% 올라 11월 기준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자장면(13.3%), 김밥(12.6%), 라면(12.4%) 등 외식 가격 상승률도 8.6%에 달해 11월 기준 1991년 이후 31년 만의 최대 폭이다.

◇가스비 36.2%↑”보일러 틀기 겁나”

도시가스(36.2%), 전기료(18.6%) 등 에너지 가격이 오르고, 공동주택 관리비도 5% 넘게 오르면서 주거 관련 물가(주택·수도·전기·연료)는 7.3% 올랐다. 1996년 통계청이 주거 관련 물가를 집계한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세와 월세도 1년 새 각각 2.2%, 0.8% 올랐다.

서울 마포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원생 조모(29)씨는 난방비 걱정에 아직 보일러를 틀지 않고 있다. 조씨는 “집 안에서는 보온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채워 안고 잔다”고 했다.

물가 올라 실질 소득 증가율 ‘마이너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가계 살림은 쪼그라들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분기(7~9월) 가계 월평균 소득은 작년 3분기에 비해 3% 올랐지만, 물가 상승분을 고려한 실질 소득은 같은 기간 2.8% 줄었다. 작년 2분기(-3.1%) 이후 5분기 만에 처음으로 실질 소득이 줄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물가 상승률이 소폭 떨어진 것이지 고(高)물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에너지와 원자재에서 출발한 물가 상승세가 경제 전반으로 번지면서 지금은 한번 오르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가공식품, 의류 등 생활필수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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