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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 똑같은 바닷물이 아니라고?

2023.03.05. 오전 9:50
by 남성현

드넓은 바다를 채우고 있는 바닷물이 담수와 달리 소금기가 있어 짜다는 것쯤은 해양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짠 정도를 나타내는 염분(염도라고도 부름)이 얼마인지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염분이 어디에서나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며, 바다 이곳저곳에서 그리고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물이 흘러나와 바다를 마주하는 곳이나 빙하가 녹아 담수가 흘러나오는 곳의 염분은 건조한 대기로 바닷물의 증발이 활발한 곳의 염분에 비해 훨씬 낮은 특징을 보인다. 또, 비가 많이 내리면 담수가 늘어나 염분이 갑자기 낮아지기도 한다.

염분만이 아니다. 바닷물의 물리적 특징을 나타내는 중요한 환경변수가 온도, 즉 수온인데, 바닷물 중에는 수온이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있고, 이들이 서로 섞여 중간 수온이 되기도 하며, 같은 위치에서도 시시각각 시간에 따라 수온이 오르내리는 변화를 겪는다. 다시 말해서 다 똑같은 바닷물이 아니라 지구상에는 염분과 수온을 달리하는 여러 다양한 바닷물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수온과 염분으로 그 물리적 특성을 결정하는 바닷물도, 사람처럼 그 태생에서부터 성장 과정을 지나 최종적으로 사멸할 때까지 하나의 일대기를 가지는데, 생성 기원이 구분되며 그 특성이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바닷물 해수 덩어리를 수괴(water mass)라고 부른다. 해양학자들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수괴의 특성과 기원을 조사하며 각각에 고유한 이름을 붙였다. 바닷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 일대기를 알아내려는 방식의 연구는 수온과 염분을 그저 하나의 측정값 수치로 다루는 방식과 크게 다르다. 암석을 소중히 다루는 지질학자들은 ‘돌 보기를 황금같이’ 하며 다양한 암석을 구분하는데, 바다를 알아가는 연구에 정말 진심이라면 바닷물 하나하나에도 소중하게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름 붙인 각각의 수괴는 저마다 고유한 수온과 염분, 즉 물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그 속에 녹아있는 탄소(용존탄소), 산소(용존산소), 영양분(질소, 인 등)과 같은 화학적 특성도 종종 뚜렷하게 구분된다. 물론 서로 다른 여러 수괴가 만나 섞이는 과정에서 물리적, 화학적 특성에 변화를 겪을 수 있고, 강에서 유출되는 담수가 많아지며 염분이 낮아진다거나 태양 복사에너지를 공급받아 가열되며 수온이 높아질 수도 있어서 가끔은 바닷물의 특성만으로 수괴를 엄격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수괴의 생성에서부터 소멸까지의 일대기를 추적하는 과정은 비단 바닷물의 특성 자체뿐만 아니라 어느 바닷물이 어디에서 어디로 흐르며 어떻게 순환하는지도 알 수 있게 해준다.

바다라고 해서 다 똑같은 바닷물 하나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는 점, 다시 말해서 곳곳에서 여러 수괴가 끊임없이 새로 삶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순환하는 곳이란 점은 바다를 탐구하는 관점을 바꿔준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비록 사람 육안으론 구분이 어렵지만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 측정을 통해 기록되는 수온, 염분을 그냥 수치가 아닌, 고유한 바닷물의 특성으로 분석함으로써 수심별로 겹겹이 쌓여 있는 서로 다른 수괴를 잘 ‘목격’할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대서양(Atlantic Ocean)이다.

배를 타고 대서양 한복판의 망망대해에 가서 측정 장비를 깊숙이 내려보면, 해저면 부근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남극저층수(Antarctic Bottom Water, AABW), 그 바로 위에 위치하는 북대서양 심층수(North Atlantic Deep Water, NADW), 그보다도 더 위에 위치하는 남극중층수(Antarctic Intermediate Water, AAIW) 또는 지중해수(지중해 중층수, Mediterranean Intermediate Water, MW or MIW), 그리고 그보다 더 위의 가장 얕은 곳에 있는 대서양 중앙표층수(Central Atlantic Surface Water, CASW)를 확인할 수 있다.

좌: 대서양 내 위치한 그린란드해(Greenland Sea)와 웨델해(Weddell Sea); 별 표시. 우: 대서양 남북 단면의 수괴(water mass) 분포 예. 단면의 왼쪽이 남쪽, 오른쪽이 북쪽에 해당함.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Antarctic Bottom Water: 남극저층수(AABW), North Atlantic Deep Water: 북대서양 심층수(NADW), Antarctic Intermediate Water: 남극중층수(AAIW), Mediterranean (Med.) Intermediate Water 지중해수(MW) 혹은 지중해중층수(MIW), Central Atlantic Surface Water 대서양 중앙표층수(CASW)

이미지 출처:

폴 웹(Paul Webb)의 온라인 해양학 개론(Introduction to Oceanography) 9장, https://rwu.pressbooks.pub/webboceanography/chapter/9-8-thermohaline-circulation/.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4.0 International License

AABW로 명명된 남극저층수라는 수괴는 남극대륙에 인접한 남반구 고위도 웨델해(Weddell Sea) 등에서 무거워진 해수가 깊이 가라앉아 생성되어 심층 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수송되어 대서양의 가장 깊은 수심, 해저면 부근에 위치하게 된다. 그 바로 위에 놓인 NADW, 북대서양 심층수도 AABW와 비슷하게 무거워진 해수가 깊이 가라앉아 생성된 것이지만, 생성 해역은 완전히 다르다. 북반구 고위도의 그린란드(Greenland) 동부 그린란드해(Greenland Sea)에서 만들어져 심층 해류를 타고 이번에는 남쪽으로 수송되어 대서양 한복판까지 온 것이다. 그 위에 놓인 AAIW(남극중층수)보다는 무겁고, 그 아래 놓인 AABW보다는 가벼워 남쪽 기원의 두 수괴 AAIW, AABW 사이에 북쪽 기원의 NADW가 끼인 셈이다. AAIW와 비슷한 수심이지만 북쪽에 치우쳐 분포하는 MW(지중해수)는 지중해에서부터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위치하는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북대서양으로 흘러나온 수괴이다. 지중해 내에서는 증발이 활발하여 염분이 증가하고 소금기가 많아져 무거워지는데, 이렇게 무거워진 해수가 지브롤터 해협을 빠져나와 북대서양으로 흘러나오면 주변의 해수와 섞이면서 적절한 깊이로 가라앉아 – 표층수(surface water)보다는 깊지만, 심층수(deep water)와 저층수(bottom water)보다는 얕은 수심에 위치 - 남극중층수와 비슷한 수심에 위치하여 중층수(intermediate water)가 된다. 가장 위의 얕은 수심에 위치하는 CASW, 즉 대서양 중앙표층수는 고위도를 벗어난 해역에서 태양 복사에너지 흡수가 상대적으로 많아 표층 부근에서 수온이 높아지므로 가벼워서 중층수 위에 떠 있는 수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서양에서만 다양한 수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 주변 바다를 포함한 전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도 여러 수괴를 목격할 수 있다. 황해(Yellow Sea, 흔히 서해라고도 부르지만, 서해 West Sea는 상대적인 방위를 나타내는 개념이라서 공식적인 바다 명칭으로 사용하기엔 부적합하다. 예를 들면, 필리핀 서쪽에 위치하는 바다의 명칭은 서해가 아니라 남중국해 South China Sea이며, 덴마크 서쪽에 위치하는 바다는 서해가 아니라 북해 North Sea이다. 북해는 유럽 대륙의 북쪽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북해라 불려 온 고유명사 개념이라 공식적인 바다 명칭에 통용된다)의 가장 깊은 곳에는 황해저층냉수(Yellow Sea Bottom Cold Water)라고 알려진 차가운 수괴가 존재하며, 수심이 훨씬 깊은 동해(East Sea, 일본해 Japan Sea로 불리기도 하지만 위 북해와 같은 논리라면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해라 불려 온 고유명사 개념이라 바다 명칭에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의 심층은 더더욱 차가운 중앙수(Central Water), 심층수(Deep Water), 저층수(Bottom Water)와 같은 수괴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동해 중앙수, 심층수, 저층수는 동해 북부 해역(우리나라 해역이 아니라 주로 러시아 해역이다) 표층에서 생성되어 남부 해역에의 심층에 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곳곳의 바다마다 어떤 수괴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들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그 특성은 어떻게 변화하며, 마지막에는 어떻게 사라지는지 알아내기 위해 해양학자들은 지금도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 중이다. 바다를 알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제각각의 바닷물 하나하나마다 이름을 붙이고, 그 일대기를 이해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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