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첫 콘서트가 너무 좋았거든요. 그당시 개막 직전 취소됐던 뮤지컬 ‘록키’의 배우들을 무대에 올려 일당을 줄 수 있었고, 게스트들도 공연 수익 기부에 동참해서 뿌듯했죠. 창작자로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뮤지컬계가 대중에게 받기만 했지 다시 갚는 것에 인색하지 않나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정말 하고 싶은 건 ‘위 아 더 월드’ 같은 대형 콘서트인데, 장기적으로 공연을 봐주는 분들에게 갚아가고 싶은 원대한 꿈이죠. 내년쯤 다시 도모할 겁니다.”
사실 그는 1990년대 미국 유학 후 ‘사운드 수퍼바이저’로 두각을 나타내며 이적·김동률·정재일 등과 함께 활동한 대중음악 프로듀서 출신이다. 뮤지컬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건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부터다.
“전에도 뮤지컬 작업을 간혹 했는데, 좀 얄팍하다고 생각돼 끌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정재일씨 부탁으로 ‘지저스’ 지휘를 하며 무대와 관객 사이에서 통역하고 있다는 ‘현장성’에 매료돼버렸죠. 마이클 리의 마지막 공연 날이었는데, (조용하게 끝나는) 엔딩씬에 원래 박수가 안 나와야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좀 기다리니까 기립 박수가 터지더니 10분 정도 멈추지 않는 거예요. 왠지 뭔가 나올 것 같아서 가지 않았을 뿐인데, 관객도 배우도 울어버린 ‘교감’이 제 손끝에서 시작됐다는 느낌이 짜릿하더군요.”
7년째 오케스트라 피트를 지키고 있지만 그에게 ‘뮤지컬 음악감독’이라는 타이틀은 한참 모자라다. ‘23’이라는 예명으로 영화·연극·드라마·전시 등 폭넓은 영역의 음악을 작곡부터 편곡, 믹싱, 음향까지 두루 책임지고 있다. 대극장 뮤지컬 같은 상업 프로덕션은 생계수단일 뿐, 그는 창작에 목마른 ‘예술가’에 가깝다. 스스로 꼽는 대표작도 ‘?A빠이 이상’ ‘베르나르다 알바’같은 매니어틱한 소극장 뮤지컬이다. 지난해 대구예술발전소가 기획한 ‘글리치&비주얼아트 팬데믹’전도 빼놓을 수 없다.
“화가 10명이 팬데믹을 주제 삼은 작품들을 내놨는데, 작품마다 음악을 들으면서 보는 이머시브 전시라 총 60곡을 작곡했어요. 방 하나에 10개의 작품이 전시되는데, 작품별로 다른 음악이 흐르니 개별 곡들이 독립되면서도 심포니처럼 하나의 곡이 되도록 만든 작업이었죠. 앰비언트, 글리치, 현대음악까지 모든 장르를 동원했는데, 그런 실험적인 작업이 재미있어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도장깨기 하듯 도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