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한국 야구, 팬들 책임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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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12. 오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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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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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1라운드 경기를 일본 도쿄 경기장에서 보면서 한일(韓日) 야구 수준 차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건 단지 선수 기량만이 아니다. 팬들 태도도 달랐다. 특히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 경기를 찾는 일본인 관중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주최 측은 외국 팀 간 낮 경기와 일본 팀 저녁 경기 표를 한 장으로 묶어서 팔았다. 일본 관중은 자국 경기 시간에 맞춰서 저녁에 올 법한데 낮부터 자리에 앉아 외국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이탈리아와 일본의 8강전 2회 경기에서 팬들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AP 연합뉴스

15일 쿠바와 호주 8강전에는 3만5061명이 입장했다. 일본 경기랑 끼워 팔지도 않은 날이다. 남의 나라 경기인데도 관중석을 80% 넘게 채웠다. 타국 경기가 이 정도였으니 일본 경기는 두말할 나위 없었다. 암표 값이 수백만원에 이르렀고 경기장 안팎에선 팬들이 6시간씩 줄을 서서 대표팀 기념품을 샀다. 도쿄돔 근처 음식점에는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모여 단체 관람하며 응원에 열을 올렸다. 대회를 축제처럼 여긴 셈이다.

2017년 한국에서도 WBC 조별 예선이 열린 적이 있다. 고척 스카이돔에서 한국, 이스라엘, 네덜란드, 대만이 겨뤘는데 한국 경기(1만7000석)도 매진에 실패했고, 다른 나라 경기는 평균 입장객 3000여 명에 그친 바 있다.

이번 대회 내내 한국 선수단은 어딘지 활력이 떨어져 보였다. 전력부터가 ‘역대 최강’이란 일본과 기대치가 달랐겠지만 선수단은 물론 팬들 분위기도 전 같지 않았다. 선수단은 여론 눈치를 보느라 위축됐다. 일본 대표팀은 개막 전 회식까지 하며 결속을 다지는 여유를 보였지만, 한국 팀은 ‘말 실수 하면 끝’이란 부담 때문인지 어떤 질문에도 그저 ‘이기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일전 시청률은 지상파 3사를 합쳐도 11.7%. 40%를 계속 웃돈 일본팀과 비교하면 초라했다. 처참하게 무너진 뒤 게시판엔 혐오성 댓글만 넘쳐나고 있다.

일본은 2013년 WBC에서 3위를 하자 실패로 규정하고 대표팀 강화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굴욕의 순간이 없었던 게 아니다. 2015년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한국에 9회 역전패하는 수모를 겪었고, 2017년 WBC 준결승에선 실책을 거듭하며 탈락했다. 그래도 변함없이 ‘사무라이 재팬(일본 야구 대표 애칭)’을 지켜보고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팬들이 있었다. 그들은 기다릴 줄 알았다. 이번 WBC를 앞두고 일본 대표팀 훈련장 미야자키, 나고야, 오사카에는 구름 인파가 몰렸다.

한국 야구는 이번에 분명히 실패했다. 전력 차는 났지만 투혼을 발휘했던 과거와 달리 무기력했다. 다만 스포츠에서 영광의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 한국 야구가 다시 일어서려면 물론 선수들부터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는 애정 어린 팬들 시선에서 나온다. 질책이 필요하지만 질책만으론 쇄신이 이뤄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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