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쇠퇴하고 정치 위기 직면
- 그사이 中은 부쩍 커진 국력과시
- 만성적 긴장 구도로 충돌 우려
- 압도적인 양으로 무역대국 된 中
- 첨단 분야 뒤처지고 인권은 취약
- 美 금융·산업 등 전방위 압박 속
- 정치 유연화·국제관계 해소 절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만물유전(萬物流轉), 모든 것은 변한다. 강대국의 흥망성쇠 역사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이나 대항해시대를 선도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현재가 바로 그 사례다.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 간 갈등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엘리슨은 자신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지난 500년 동안 있었던 16번의 투키디데스 함정을 정리했다. 공통으로 지배세력 증후군과 신흥세력 증후군이 발생했고, 16번 중 12번은 결국 전쟁으로 마무리되었다. 지배세력은 쇠락을 경험하며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 신흥세력은 높아진 자의식에 국제적 인정 욕구가 강하다. 피해망상과 오만함이 만나면서 만성적 긴장 구도가 이어지고 불확실성이 커진다. 리더들은 전략적 딜레마에 빠진다. 균형자가 나서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거나, 제한된 대리전으로 김을 좀 빼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면 두 세력 간 무력 충돌을 피할 길은 없다. 그래서 함정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바로 그 투키디데스의 트랩에 빠져 있다.
■“전쟁 원인은 아테네의 부상과 스파르타의 두려움 때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그 전쟁에 참전했던 아테네의 장군이었다. 패전했고, 정적들의 무고로 고국에서 추방당했다. 사령관 경력을 기반으로 정계에 나서려던 꿈이 34세에 무산된 것이다. 이후 그는 세상 읽기에 깊이 몰두했다. 투키디데스는 ‘왜’에 천착해 현실주의적으로 정치를 해석하고 복잡한 사건 뒤의 근본 원인을 규명했다. 정치가를 포기하고 역사가가 된 그는 “덕분에 나는 양쪽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썼다.
■미·중, 경제 군사 영역서 제로섬 게임
현상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기존 질서를 변경하려는 중국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패권 경쟁은 모든 공간과 모든 영역을 망라한다. 공간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넘어 전 세계에 지정학적 변동을 야기하고, 영역은 무역 산업 기술 금융 군사 그리고 문화와 이념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 시간도 오래 지속된다.
중국은 태평양은 넓으니 동서로 나누어 관리하자는 주장이다. 동쪽은 미국이, 서쪽은 중국이, 특히 남중국해는 중국의 내해(內海)로 지배하려고 한다. 남중국해는 세계 두 번째의 무역 항로이자 오일 루트다. 중국은 무역과 원유 수입 규모 모두 세계 1위다. 에너지 소비량의 70%를 해외에 의존한다. 남중국해 장악만으론 부족하니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곳곳에 항만 거점을 확보하고 해상 영향력을 확장하려 한다.
국제정치에도 기본적으로 질량불변의 법칙이 적용된다. 어디선가 어느 나라의 영향력이 빠지면 그 공백을 다른 나라가 메우게 된다. 하지만 어디선가 갑작스레 위중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즉각 군사력을 투입하고 수습할 수 있는 나라는 아직 미국밖에 없다. 운영 중인 11대의 항공모함 전단을 활용해 하루면 대응이 가능하다. 게다가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가 많다. 군사기지만 세계 곳곳 800여 군데다.
중국은 무역 대국이다. 2005년에 미국의 주부 기자가 가족과 중국산 물건 없이 1년 살아보기를 시도했다가 미션 임파서블을 선언하고 중도에 포기한 적이 있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대중국 의존도가 더 심화했고, 제품도 고급스럽고 대체 불가 품목도 많아졌다. 통신 장비와 전기차 배터리 등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 품목이 독일 미국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다. 질적인 변화를 유도할 정도로 양은 압도적이다.
■중국‘중진국 함정’ 극복이 과제
문제는 대국이긴 하나 아직 강국은 못 된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물량에 비해 디테일이 약하고 첨단 분야에 뒤처져 있다. 물론 안면인식 기술이나 빅데이터 등 글로벌 최고를 자랑하는 분야도 있지만, 1에서 응용력을 더해 ‘End’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0에서 1을 창출해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대체로 부족하다.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조 강국 2025’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30년에 걸쳐 미국의 과학기술을 추월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 대목을 정밀 타격하고 있고 초격차를 유지하려 한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반도체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30%가 채 안 되고, 기술력과 생태계는 실리콘밸리와 20년 차이가 난다. 미국의 설계, 일본의 장비, 한국과 대만의 생산으로 연결되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이 소외되면 격차 줄이기는 더 힘들어진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다양한 영역에서 전략적으로 타격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카드는 많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250여 개 중국 기업에 관한 감사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흔들기도 하고, 자유와 인권 등 가치관을 내세워 중국의 이미지를 폄하하기도 하며, 집권 공산당과 인민을 아예 분리해 대응하기도 한다. 결정적인 대목은 대만 카드를 활용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파기하는 것이다. 중국은 가치와 이념 분야에서는 더 취약하다.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시장자본주의라는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대체할 소프트 파워를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 운명공동체’는 브랜드로서도 공허하고 내용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면 시간은 중국 편일까. 일단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긴 시간관념을 갖고 있다. 장기전에 익숙하며 전략적 인내심이 강하다. 장기적 게임이 유리하다 싶으면 언제까지도 인내하고, 상황이 불리하면 더더욱 참고 버틴다. 교착상태는 괴롭지만 견딘다. 미국식이 체스라면 중국식은 바둑이다. 체스는 공격하는 게임이고 바둑은 에워싸는 게임이다. 다만 미국은 공격력도 강하고 에워싸는 봉쇄에도 능하다. 그러니 중국이 패권 경쟁에서 이기려면 버티기만으론 안 된다. 미국의 누르기를 견디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안으로는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야 하고, 압제적인 정치를 유연화해야 하며, 밖으로는 마찰적인 국제관계도 해소해야 한다. 무엇보다 매력을 보여주어야 하고 행운도 따라줘야 한다.
강대국 흥망사를 보면 근대 이후 패권국은 1인당 소득 수준에서 늘 최고였다. 지금 중국은 규모로는 미국의 70% 수준이나 1인당 소득 수준은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만일 중국이 최강대국이 된다면 당대 최고 수준의 소득을 누리는 나라가 아닌 개발도상국 나라가 세계를 주도하게 된다는 뜻이니 인류 역사를 새로 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