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보고 실망, ‘탈수록 탐나는’ 성능
‘무조건 벤츠사랑’ 경쟁사엔 짜증유도
신형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를 타본 소감이다. 무려 8년째 국내 수입차 판매 1위를 지키고 있어 지겨운데, 앞으로도 계속 자리를 지킬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인기 차종이 다양해져야 고르는 맛도, 사는 맛도, 타는 맛도 나는데 이 같은 재미를 못 느끼게 할 것 같아 짜증이 났다.
“타도 벤츠”를 외치는 경쟁사 입장에서도 8년만에 품게 된 희망마저 빼앗길 어처구니(어이)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신형 벤츠 E클래스는 7종으로 구성됐다. 가솔린 모델인 벤츠 E300 4매틱 익스클루시브, 벤츠 E300 4매틱 AMG 라인이 먼저 출시된다. 1분기 중 디젤모델인 벤츠 E220d 4매틱 익스클루시브가 나온다.
이후 벤츠 E200 아방가르드, 벤츠 E450 4매틱 익스클루시브, 벤츠 E350e 4매틱 익스클루시브, 메르세데스-AMG E53 하이브리드 4매틱 플러스가 선보인다.
모든 라인업에는 전동화 시스템이 적용됐다. 48볼트(V) 온보드 전기 시스템을 갖춘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최대 17kW의 힘을 추가로 제공한다.
추후 출시될 4세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은 1회 충전 때 최대 115km(유럽 WLTP 기준)를 전기모드로 달릴 수 있다.
벤츠 E450 4매틱 익스클루시브는 6기통 가솔린 엔진(M256M)을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이전 세대 대비 14마력 증가한 381마력, 최대토크는 51kg.m다.
4기통 디젤 엔진(OM654M)을 탑재한 벤츠 E220d 4매틱 익스클루시브는 최고출력이 197마력, 최대토크가 44.9kg.m다.
램프와 그릴 부분을 다듬은 부분변경 모델 수준이다. 변화 폭은 소소하지만 E클래스에 더욱 잘 어울리는 품격과 우아함은 더 강해졌다. 기존 10세대 모델의 디자인 바탕이 워낙 좋아서다.
차체 속으로 숨은 플러시 도어 핸들, 발광·크롬 라디에이터 그릴, 액티브 보닛, 디지털 라이트는 세련미와 품위를 모두 향상시켜준다.
크기는 플래그십 세단인 벤츠 S클래스 버금가게 커졌다. 전장x전폭x전고는 4955x1880x1475mm다. 기존 모델보다 15mm 길어지고 30mm 넓어졌다.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2960mm로 20mm 길어졌다.
경쟁차종인 신형 BMW 5시리즈(5060x1900x1515mm, 2995mm), 신형 제네시스 G80(5005(4995)x1925x1465mm, 3010mm)보다는 작다.
계기판부터 조수석 앞쪽까지 디지털 화면이 들어간 블랙 패널이 꽉 채웠다. 공상과학(SF)영화에서 봤던 미래형 자동차에 한발 더 다가갔다.
14.4인치 고해상도 LCD 중앙 디스플레이 ‘MBUX 슈퍼스크린’을 통해 유튜브, 줌, 틱톡 등 인포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티맵 모빌리티의 실시간 교통정보에 기반한 자체 내비게이션도 탑재된다.
개인화된 차량 설정을 지원하는 ‘루틴(routine)’ 기능도 새롭게 추가됐다. 운전자는 온도 설정, 앰비언트 라이트 컬러, 오디오, 주차 카메라 등의 차량 기능을 원하는 특정 조건과 연결해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대신 가격은 기존 모델보다 600만원 이상 올랐다. 완전변경 모델 출시 때 300만~500만원 정도 오르는 것과 비교하면 인상폭이 높다.
벤츠 E200 아방가르드 7390만원 벤츠 E220d 4매틱 익스클루시브 8290만원 벤츠 E300 4매틱 익스클루시브 8990만원, 벤츠 E300 4매틱 AMG 라인 9390만원이다.
벤츠 E300 4매틱 AMG 라인 프리미어 스페셜은 1억552만원, 벤츠 E450 4매틱 익스클루시브 1억2300만원이다.
아방가르드와 AMG 모델은 그릴 중앙에 커다란 삼각별이 있다. 그릴 삼각별과 달리 보닛 삼각별은 타는 내내 시선에 들어와 왠지 모를 뿌듯함을 준다.
스티어링휠 그립감은 우수하다. 손에 감기는 느낌부터 고급스럽고 무게감도 적당하다.
드라이브 모드는 에코, 컴포트, 스포츠 3가지로 구성됐다. 하이브리드 모델인 만큼 조용하다.
앞 유리에 크게 투사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성능은 우수하다. 내비게이션도 티맵 수준은 아니지만 기존 제품보다는 품질이 향상됐다.
기어 레버는 스티어링휠 뒤쪽에 부착하는 칼럼 시프트 방식이다. 기어 레버는 손잡이 형태가 아니라 방향지시기와 비슷한 원통형 스틱이다.손으로 감싸지 않고 손가락만으로도 가볍게 조작할 수 있다. 손끝으로 전달되는 질감도 고급스럽다.
‘9단 고단수’답게 변속은 매끄럽다. 오르간 타입 페달은 세밀하게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지원한다. 과속방지턱도 깔끔하게 통과한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수입차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차선 중앙을 잘 유지하면서 앞 차 움직임에 따라 가감속한다. 다른 차가 끼어드는 상황에도 잘 대처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디지털화로 많은 기능을 클릭·터치 방식으로 전환하다 보니 직관성이 떨어진다.
차체 기능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하지 않는 기능을 실행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지난해 BMW코리아의 역습에 7년간 차지했던 수입차 1위 브랜드 자리를 내준 벤츠코리아는 올해 명예회복에 나선다.
선봉장은 남심(男心)을 저격한 BMW 5시리즈에 맞서 여심(女心)을 장악하며 8년간 연속 1위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벤츠 E클래스다.
‘남자는 BMW, 여자는 벤츠’라는 말처럼 신형 벤츠 E클래스도 기존 모델의 뒤를 이어 여성들의 원픽 수입차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여성들이 선호하는 우아함, 품격, 편의성을 모두 향상해서다.
신형 벤츠 E클래스는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구매력이 가장 크고 50대 이상 남성도 공략한다.
역동성보다는 품격과 편안함을 중시하는 50대 이상 남성도 지난해에 BMW 5시리즈보다 기존 벤츠 E클래스를 더 많이 구입했기 때문이다.
‘젊을 땐 BMW, 나이들수록 벤츠’라는 말은 하루 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