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민주당의 공천 기준이 ‘비명횡사’라니

입력
수정2024.02.28. 오후 1:17
기사원문
전석운 기자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하위 20% 평가에 비명계 일색
사법리스크도 사람마다 달라
공천 잣대 적용 일관성 없어

납득 못한 탈락자들 반발
단식과 탈당, 후유증 심각
당 원로들도 우려 표명

공천 파동 수습 못 하면
총선 참패 불 보듯 뻔해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유행어가 돼버렸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작업이 난장판으로 흐르자 이를 비꼬는 말이다. 이재명 당 대표에 반기를 들었거나 비토하는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하는 반면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이라도 이 대표와 친하면 공천을 받는다는 걸 뜻한다. 공천 잡음은 역대 어느 선거마다 있었다. 그러나 요즘 민주당의 공천은 당의 원로들조차 비판할 정도로 상식을 벗어나고 있다. 공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의원들의 반발이 단식과 탈당 러시로 이어지고 있다. 이 대표는 “시스템 공천이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지도부 안에서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의원들이 있다.

가장 논란이 된 건 의원 평가에서 하위 20%에 든 31명이 비명계 일색이라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법안 대표발의 실적이나 국회 출석률 등 객관적인 지표만 보면 빼어난 의정활동을 펼친 의원들이 많다.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지난 4년간 107건의 법안을 대표발의했고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출석률은 각각 95%, 93%를 기록했다. 김 부의장은 하위 20% 통보를 받자 “모멸감을 느낀다”며 탈당했다. 송갑석 의원은 지난해까지 국회가 선정하는 의정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할 만큼 뛰어난 평가를 받았지만 당내 하위 20%라는 굴레가 씌어졌다. 박용진 의원은 82건의 법안을 발의하고 90~95%의 국회 출석률로 성실한 의정활동을 펼쳤지만 하위 10%로 낙인찍혔다. 윤영찬 의원은 올 초 탈당을 결행한 ‘원칙과 상식’ 의원들(김종민, 이원욱, 조응천)과 막판에 결별하고 당에 잔류했지만 끝내 하위 10%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대표의 법안 발의와 국회 출석률은 각각 6건, 35%에 그쳤다.

비명계가 하위 20%에 몰린 건 ‘동료 평가’를 포함한 정성평가에서 박한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지난해 11월 동료평가 당시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들을 색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의원은 136명으로 표결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 수(167명)보다 31명이 적었다. 31명은 하위 20% 의원 수와 일치한다.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설훈 의원 역시 하위 10% 통보를 받고 탈당했다.

노웅래 의원과 황운하 의원, 기동민 의원은 각각 사법리스크에 발목이 잡혔다. 불법 정치자금 6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노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황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라임사태의 주역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기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런데 김 전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이수진 의원(비례)은 같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은 당초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포기한뒤 돌연 윤 의원의 지역구인 성남중원 출마를 선언했다. 하위 10% 평가를 받은 윤 의원의 낙마 가능성을 크게 보고 경선에 뛰어든 것이다. 하위 10% 의원은 자신의 경선 득표율에서 30%를 감산해야 한다.

사법리스크라면 민주당의 어떤 의원도 이 대표를 능가하지 못한다. 이 대표가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은 선거법 위반을 비롯해 5~6건에 달한다. 백현동 개발 비리와 성남 FC 뇌물 등 일부 사건이 병합됐지만 많게는 일주일에 세 차례 법정에 나가야 한다. 대장동 개발 사건의 배임 혐의 액수만 4895억원이다. 특히 이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은 유죄 선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판사조차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공천 탈락자들을 설득하고 끌어안는 노력도 안 보인다. 평가내용을 보여달라는 당사자들의 요청은 거절당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말 언론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오는 4월 총선 목표를 “최대 151석”이라고 밝혔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겸손한 발언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벌어지는 공천 파동을 보니 이대로라면 총선에서 참패할 것 같다. 민주당은 4년 전 총선에서 180석을 얻었고, 지난해까지 169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원들의 탈당 러시로 총선 전에 160석이 무너질 수도 있다. 총선이 아직 40여 일 남았지만 민주당이 이런 공천 파동을 겪고도 과반을 차지한다면 그 자체가 이변일 것이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