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日, 반도체 공세… K칩스법조차 낮잠 자는 한국 미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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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론 5세대 HBM 첫 대량양산
日도 2나노 AI용 반도체 개발 속도
민관정 한몸으로 총력 대응 나서야


인공지능(AI)발 반도체 전쟁이 불붙고 있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26일 AI 반도체의 핵심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5세대 제품 HBM3E을 세계 최초로 대량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가 2분기에 출시하는 신제품 H200에 탑재된다며 고객사까지 공개했다. HBM 개발·양산 경쟁에서 세계 3위 업체가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한발 앞선 것이다. 이러다 한국이 장악한 메모리 시장의 판도가 확 바뀌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한국은 파운드리(위탁생산)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반도체 제국’이라 불렸던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올해 말부터 최첨단인 1.8나노미터(nm) 공정을 도입해 6년 내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2위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의 신생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도 2나노 AI용 반도체를 개발해 2028년부터 양산한다고 한다. 세계 1위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는 일본 구마모토 공장을 불과 22개월 만에 완공했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협력체 ‘칩4 동맹’에서 미·일·대만 간 결속이 단단해지고 한국만 사면초가에 몰리는 형국이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론의 8단을 뛰어넘는 12단 HBM3E를 개발했고 SK하이닉스도 아직 4세대 HBM 시장을 선점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개별기업에만 맡겨서는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 제1, 2공장에 그린벨트 해제 등 파격적인 규제 완화도 모자라 10조8000억원의 보조금을 쏟아붓는다. 미 정부도 인텔에 13조원 이상을 몰아줄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한가하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대기업 15%, 중소기업 25%) 기한을 2024년에서 2030년으로 연장하는 ‘K칩스법’ 개정안이 작년 12월 발의됐는데 아직도 낮잠을 자고 있다. K칩스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돼야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 계획을 세울 것 아닌가. 얼마 전 정부는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입해 경기 남부지역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클러스터에서 삼성전자의 1호 반도체 공장은 2030년에야 가동된다. 이런 속도와 실행력으로는 숨 가쁜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기조차 어렵다. 반도체 전쟁은 국가 간 총력전으로 변한 지 오래다. 기업과 정부, 정치권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몸처럼 초격차 유지와 경쟁력 강화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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