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삼권분립의 소중함 일깨워 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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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18. 오전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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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200석 이상이었다면 국회 권력 앞에 행정부 무력화
견제받지 않는 권력 부패했던 역사의 교훈 되새겨야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승부 추가 확실히 야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판세 분석이 쏟아지던 이달 초, “야당의 압승을 경계하는 중앙 부처 공무원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어떤 경우든 야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처음엔 “역시 공무원은 집권 여당 편인가”란 생각이 들었지만, 찬찬히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무원들이 걱정한 대상은 윤석열 정부가 아니라 ‘행정부’였다. 행정·입법·사법부의 3권분립(三權分立)을 얘기할 때 행정부로, 입법부와 구별되는 좁은 의미의 정부다. 직업이 공무원인 사람들답게 입법부 권력의 비대화로 행정부가 무력화되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관료들은 야당이 200석을 넘더라도 대통령 탄핵과 개헌 가능성은 낮게 봤다. 탄핵의 최종 결정권은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도 국민투표를 거쳐야 확정된다. 야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경우 본전도 못 건지는 리스크(위험)가 따른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최악의 시나리오는 거대 야당이 법률 제·개정권을 십분 활용해 행정부의 권한을 뺏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수단은 대통령령인 시행령으로 위임해 놓은 각종 행정조치를 상위 법체계인 법률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예컨대 주택에 대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보유세 세율은 법에 정해져 있지만,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은 시행령으로 조정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 동의가 필요한 법 개정 절차 없이 보유세를 낮출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런데 세율뿐 아니라 과세표준까지 법률로 정해놓으면 행정부가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정부가 보유세 부담 완화라는 정책을 펴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입법”이라고 반대해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에서 재의결하면 된다. 그게 200석이 갖는 절대적인 힘이다. 이처럼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세금 감면 조치는 법률이 아니라 시행령으로 많이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622건의 법률과 1886건의 대통령령이 있다. 법률에 많은 내용을 담을수록 국회의 권한은 강화되는 반면, 대통령령으로 상징되는 행정부 권한은 위축된다.

미국은 의회 권력이 비대해지더라도 대통령령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통해 행정부의 권한을 보장한다. 대통령 임기는 4년인데 총선은 2년마다 치러져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정부 때 만든 ‘건강보험법(오바마케어)’을 폐지하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도록 한 조치가 모두 행정명령으로 이뤄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모든 금(金)을 국유화하고 금의 소유와 유통을 불법화하는 초법적인 행정명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과거 독재 체제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약했던 긴급조치와 같은 행정권 남용을 막기 위해 대통령령의 제정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국회가 위임해 주지 않으면 대통령령을 발령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집중을 막는 삼권분립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핵심 원리다. 영국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였던 존 액턴 경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일수록 독재와 부패의 길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독재란 행정권의 남용을 의미하지만, 이런 상식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국회가 행정부를 압도하는 입법부 독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를 넘어 삼권분립까지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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