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죄어오자 “나 밥 안 먹어”
“단식하든 말든 수사는 진행된다”
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3부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의혹’ 재판을 위한 절차다. 15일 첫 공판이 열릴 모양인데 피고인 측의 태도가 이렇다.
무기한 단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설명부터 해 줄 일이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단식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정해진 기한이 없는 단식이라는 말인가. 전자의 뜻으로 이해하자면 ‘죽어야 끝날’ 단식인 거고, 후자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멈출 수 있는 단식이 된다. 어느 쪽 단식인가?
(2003년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8일간 단식투쟁을 한 바 있다. 이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방문해서 단식 중단을 종용하며 말했다.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
또 황당한 것은 “단식 철회 조건이 없다”는 민주당의 입장 표명이다. 분풀이 노상 격투를 벌이겠다는 말이나 다르지 않다. ‘단식’은 목적 달성을 위해 행하는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 할 수 있다. 조건도 없이 무기한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목숨을 갖고 장난이나 치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런 따위 협박 정치에 맛을 들이면 민주정치 회복은커녕 파괴만 초래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사즉생,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며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도 야당 지도자 시절 단식으로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했다.
단식 선언의 까닭이야 뻔하다. 각일각 죄어오는 검찰의 수사에 숨이 막힐 처지가 된 것이다. 온갖 흰소리(터무니없이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거드럭거리며 허풍을 떠는 말)는 다 했으니 이제와서 불체포 특권에 의존하기는 낯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무기한 단식’을 내지른 게 아닌가 짐작된다. 그 자신은 물론 부인하고 있다. 자신의 단식 때문에 9월로 예정된 검찰 소환조사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처지 설명을 잊지 않았다.
차기 정권 쟁취가 유력해진 정당, 그 정당을 이끄는 이 대표 자신을 검찰이 아니라 누구든 감히 핍박할 수 있겠느냐는 배짱인 듯하다. 검찰도, 법원도 ‘사즉생’으로 덤비는 이재명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잠시만 인고하면 정국 조종간은 우리 손에 넘어 온다. 윤 정부에 당하기 싫으면 나의 배에 승선하라. 최후의 승리 쟁취에 한몫하고 싶다면 내 휘하에서 충성을 입증해 보이라. 이런 메시지에 거역할 민주당 의원들이 얼마나 있을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 대표가 단식을 선언한 날 “개인 비리 수사에 단식으로 맞서는 것이냐. 워낙 맥락 없는 일이라 국민들께서 공감하실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거대정당이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당 대표 방패 역할 밖에는 없어 보이는 민주당. △온갖 술수를 동원해 국회에 입성한 이후로 당을 자신의 호위병(장기적으로는 대선 후보)으로 만드는 것 외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당 대표.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묻지 말라. 판단을 대표의 몫이고 우리는 눈 딱 감고 돌진할 뿐”이라는 극렬 추종자들.
이걸 일이랍시고 정당과 그 소속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보수를 당당히 받아 챙긴다. 집단 무지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극렬 지지 세력은 그 돈을 마치 자기들이 만들어낸 양 주인행세가 하늘을 찌른다. 당 대표는 개인사에 정당 조직을 동원한다. 허세를 부리며 “방탄은 없다. 불체포 특권은 행사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 치다가 막상 검찰이 오라고 하자 당원들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안 끌려가려고 안달이다. “밥 굶어 몸을 가누기 어려운데 어떻게 출석해!” 이 정도는 이재명 대표에게 잔꾀 축에도 못 든다.
정치 부재의 상황에 정치적인 주장들이 난무하고, 정치적 행위가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는 시절이다. 우리가 이 시절을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