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지금 국정원은 반쪽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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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1. 오후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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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국정원은 ‘대북 협상국’
2020년 국내 정보 없앤 뒤
요소수·백신 대란에 무기력
넉 달 뒤엔 간첩 수사도 못해



2021년 국가정보원 중국 지부가 “중국 해관(세관)에서 특이하게 한국으로 수출하는 요소수 물량을 일일이 통관 검사하고 있다”는 정보 보고를 했다. ‘요소수 대란’이 일어나기 두 달 전쯤이다. 당시 해외 정보 파트는 ‘이상한 일’이라고 고개를 갸웃하기는 했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오는 요소수 중 중국산이 97.6%이고, 수출 통제 시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사실은 예측하지 못했다. 전 국정원 간부는 “종전에는 해외 파트가 한국 관련 정보를 물어오면 국내 파트가 어떤 파급이 생길지 분석하는 구조였다”며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2월 법을 바꿔 국정원의 국내 정보 기능을 없애면서 정보 종합·판단 기능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이 요소 품목의 수출 검사를 강화하면서 1만원 하던 요소수가 10배로 뛰었고 주유소마다 ‘품절’이 나붙었다.

'요소수 품절입니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1일 서울 시내 주유소에 요소수 품절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다. 2021.11.21 ryousanta@yna.co.kr/2021-11-21 15:07:00/<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코로나 백신이 없어 쩔쩔매던 2021년 초 국정원 본부가 러시아 지부에 “왜 러시아 백신 확보에 대한 정보가 없느냐”며 질책했다고 한다. 그 직전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과 모더나 CEO가 27분간 화상 통화를 하고 2000만명분 백신을 확보했다면서 ‘극적 타결’이라고 TV에 홍보했다. 그런데 그해 4월 중앙사고수습본부는 효능이 불분명한 러시아 백신 도입을 검토한다고 했다. 러시아 지부 측은 ‘대통령이 직접 백신 확보를 발표했는데 실제 도입에 펑크가 났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국내 정보 파트가 없어져 한국 내 사정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도 없었다. 국정원 본부에서 ‘질병청이나 복지부에 전화 한 통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러시아 지부 측은 ‘그런 전화를 하면 바로 국내 정보 수집에 해당해 처벌받게 되는데 누가 하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국정원이 국내 정보 기능을 잃은 건 자업자득 측면이 크다. 정권마다 ‘정치 개입’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 부처 정보를 모은다면서 공무원 뒤를 캐고, 경제 정보를 한다면서 기업들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지금 국정원은 북한과 테러·사이버·국제 범죄 등 해외 정보만 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해외정보원인 셈이다. 영국은 MI5(국내)와 MI6(해외), 이스라엘은 신베트(국내)와 모사드(해외)로 정보기관을 분리한다. 미국은 해외 정보는 CIA, 국내는 FBI가 주도하는데 DNI(국가정보국)가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구조다. 주요국 중 정보기관의 국내 정보 기능을 없앤 곳은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지금 국내 정보 대부분은 경찰이 맡고 있는데 ‘범죄 정보’인 경우가 많다. 국내외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해 요소수나 백신 대란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예방 정보’ 활동은 지금 누가 하고 있나.

‘대공 수사권’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국정원은 간첩을 잡을 수가 없다. ‘요즘도 간첩이 있느냐’고 하지만 있다. 최근 북한과 연계 혐의가 드러난 민노총 출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은 2016년부터 국정원이 추적해왔다. 해외 지부의 정보와 국내 대공수사국의 경험이 결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찰이 국정원처럼 간첩을 잡을 수 있을까.

최근 국정원이 내부 인사 문제로 시끄러웠다. 누가 1급이 되는 것보다는 이전 정부에서 ‘북한 협상국’이 되다시피한 정보기관의 기능과 역량을 복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정원법상 정치에 관여한 사람은 7년 이하 징역이다. 미수범까지 처벌한다. 상관 지시라고 정치 정보 수집하면 감옥 간다는 걸 국정원 직원부터 잘 안다. 국정원이 못 미더우면 주요국처럼 국내외 정보를 분리하고 이를 종합·판단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지금 정보기관은 반쪽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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