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음악회 전화 벨소리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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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4.09.12. 오후 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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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 집중력 깨고 관객 감동 망쳐

전파차단기 설치 관련법 개정 시급
2012년 1월10일, 뉴욕 링컨센터 에이버리 피셔 홀. 뉴욕 필의 말러 교향곡 9번이 피날레를 향해 달려 갈 무렵, 객석에서 갑자기 울려나온 전화벨 소리. 지휘자 앨런 길버트는 연주를 중단했고, 벨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관객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 일은 외신을 타고 국제적인 뉴스거리가 됐다. ‘이례적이고 특별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뉴스 가치를 인정받은 듯. 그러나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뉴스가 안 된다. 한국의 공연장에서는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일어난 음악회 전화벨 테러의 약사(略史)를 보자.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2010년 2월, 예술의 전당. 피아니스트 임동혁의 리사이틀. 쇼팽 마주르카의 애수 띤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던 순간, 객석의 전화벨 소리가 연주자와 관객의 혼연일체를 깨버렸다. 연주자는 당황해서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고, 모든 관객은 연주가 끝날 때까지 일그러져 있는 그의 표정을 보아야했다. 2011년 3월, LG아트센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2악장을 지나 인터미션 없이 3악장으로 들어갔다. 절정 전의 고요한 아다지오 부분이었다. 그때, 객석에서 무려 30초 이상 이어진 전화 벨소리. 이제 곧 거장 리카르도 샤이의 지휘봉이 관객을 심벌즈와 트라이앵글의 폭풍 속으로 끌고 가기 직전이었다. 악단은 연주 후에 공연기획사에 공식 항의했다. 그 뒤로 이 악단은 내한공연을 꺼린다고 한다. 같은 해 8월, 예술의 전당.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지휘자, 연주자, 관객이 막 하나가 된 순간, 객석에서의 전화벨 소리. 연주자들은 움찔, 관객들은 단꿈을 꾸다 강제로 깬 아이처럼 울고만 싶었다. 2013년 5월, 서울시향의 ‘더 브릴리언트 시리즈2’. 연주곡은 그 어렵다는 말러 교향곡 5번. 단원 개개인에게 고도의 기교와 집중력이 요구되는 곡이다. 더구나 전체 5악장을 연결하는 3악장의 연주가 사실상 전체 연주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 그런데 하필 3악장의 연주가 물이 오를 즈음에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그것도 두 번이나! 2013년 8월, 다시 서울시향. 이날은 말러 교향곡 9번. 도이체 그라모폰(DG)이 실황을 녹음 중이었다. 테러는 정명훈 감독이 1악장을 조용히 이끌고 있을 때 일어났다. 갑자기 객석에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연주가 시작된 것. 휴대전화 착신음이었다. 공연 이후 인터넷에선 말러 9번 1악장이 ‘벚꽃엔딩 협주곡’이란 별명을 얻었다. 올해 3월. 통영국제음악당.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가 윤이상 작 ‘유동’의 연주를 끝내고 지휘자 리브라이히가 지휘봉을 멈춘 순간, 감동이 고양된 그 찰나. 객석에서 착신벨이 울렸다. “오빤 강남스타일∼” 감동은 폭소로, 박수는 한숨으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 한국인은 휴대전화를 왜 잠시도 끄지 못하는 걸까? 왜 공공장소에서 진동이나 무음을 선택하지 않는 걸까? 어떤 시도도 효과가 없었다. 해법은 공연장 내 전파차단기 설치뿐이다. 일본 등 외국에서는 이미 채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 몇몇 공연장에서 운용한 바 있다. 그러나 구(舊)정보통신부가 2003년 불허 결정을 내렸다. 전기통신사업법 제79조 1항의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때문이란다. 우습다. ‘문화 향유’를 방해하는 행위는 합법이란 말인가.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 집단손해배상 청구는 어떨까. 관객 1인당 만원씩 배상한다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꽉 찼을 경우 3021만원을 물어내야 한다. 공연장에 영구 출입금지시키는 방법도 있다. 걸리면 평생 휴대폰을 못 갖게 하는 건 어떨까. 해법이 희극 같다고? 현실은 비극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휴대전화가 꼭 필요한 사람은 ‘불륜연애자’와 ‘스파이’뿐이라고 썼다. 이상하다. 그들은 왜 음악회에서 암약하는 걸까.

김무곤 동국대 교수·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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