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1800만부 팔린 베스트셀러
인터넷에선 정보 넘치지만 파편화
시대·역사 꿰뚫어 전달해야
"난 지식큐레이터이자 문명 번역자"
최근 인도와 주변 나라들편 출간
교양만화는 '정확성' 가장 중요
자료수집 1년…5~10년마다 개정
“세상이 달라졌죠. 유튜브다 소셜미디어다 해서 지구촌 구석구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잖아요. 그래도 <먼나라 이웃나라>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최근 <먼나라 이웃나라> 인도와 인도아대륙편 1·2권을 내놓은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어도 시대와 역사를 꿰뚫는 줄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7일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세계를 보는 축, 역사적 관점을 전달하는 지식 큐레이터이자 문명의 번역자”라고 불렀다. 이번 편은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부탄·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를 다뤘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고려원미디어를 통해 처음 소개된 이후 35년 동안 베스트셀러 지위를 이어왔다. 판권을 김영사로 옮긴 뒤에도 세계 여행은 이어져 시리즈의 누적 판매부수가 1800만 부에 달한다. 서울 역삼동 작업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요즘도 평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작업대 앞에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그린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만화를 그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교수가 이 시리즈를 시작한 계기는 어린 시절 단짝이던 고(故) 김수남 소년한국일보 사장의 권유였다. 이 교수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김 사장에게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만화로 그리면 어떨까’라고 했더니 당장 연재하라고 했다”며 “그 자리에서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제목까지 뚝딱 지어줬다”고 말했다.
독일 유학생이던 이 교수는 1주일치 원고를 국제우편으로 한국에 매주 보냈다. 그 뒤로는 심지어 덕성여대 교수 시절에도 만화를 그렸다. 총장에서 물러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이 교수는 “처음 책을 낼 때는 ‘만화 그리는 교수’가 화제가 될 정도로 만화를 낮잡아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요새 웹툰 작가가 선망하는 직업으로 여겨지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웃었다.
이 교수는 만화 시리즈를 이어가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국제 감각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흘씩은 늦지만 일본 미국 독일 신문을 매일 받아보며 글로벌 정세를 파악했다. 이 교수는 “인터넷 세상에 정보는 넘쳐나지만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며 “정보들이 파편으로 부서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양만화의 생명은 정확성”이라며 “갈수록 책임감과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책을 내기 위해서 이 교수가 자료 수집에 투입한 시간만 1년이다. 5~10년마다 개정판을 내며 정확성을 유지한다. 유럽편 출간 이후 독일이 통일하자 ‘개정판 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번 편 역시 ‘터키’의 국가명이 ‘튀르키예’로 바뀌면서 원고를 일일이 수정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1년에 세 번 정도 해외에 나가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했다. 이 교수는 “이번 집필 기간에는 코로나 탓에 인도에 가지 못했지만 과거 인도 여행에서 찍어온 사진 등을 활용했다”며 “역설적으로 해외에 못 나간 덕에 작업에만 전념해 전작 이후 2년 만에 일찌감치 새 책을 낼 수 있었다”고 웃었다.
다음 시리즈로 아프리카편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책상에는 벌써 아프리카 관련 책이 쌓여 있다. 이 교수의 입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 수, 케냐의 인구 수, 마틴 키마니 주유엔 케냐 대사의 올해 2월 연설 내용 등이 술술 나왔다. 그는 “뭔가에 대해 잘 모르면 편견을 갖는다”며 “먼나라를 제대로 설명해 이웃나라로 느끼게 하는 게 여전히 제 책의 목표”라고 말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 교수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여행하고,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