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로 꼭지에 산 집 때문에, 저희…매일 싸웁니다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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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6.25. 오후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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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

사이 좋다가 ‘영끌 집 구매’ 뒤
옥죄는 빚에 부부싸움 이어져
남편 화풀이, 낮아지는 자존감
마음 단단해지는 방법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Q  : 돈 때문에 매일 싸웁니다. 하우스푸어가 됐어요. 청약 당첨될 때까지 집 사지 말자, 전세 한 번 더 살자는 남편 의견 들어주다가 애들은 커가고 안정감을 찾고 싶어 지난해 봄 신용대출까지 ‘영끌’해서 집을 샀어요. 금리가 높아 한 달에 원리금이 수백만원씩 나갑니다. 집값은 저희가 산 가격보다 떨어졌습니다. 애들 학원 줄이고, 먹는 것도 줄이고, 큰아이가 수박 사달라는데 그 앞에서 고민하는 저를 보고 있자니 이렇게 살 일인가 싶습니다.

본래 상냥했던 남편은 집을 사자고 한 저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저만 좋자고 집 산 것도 아니고,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같이 의논하고 협의해서 산 건데, 저한테 화풀이할 일인가요.

남편이 화풀이하지 않아도 충분히 우울합니다. 매일 드는 자책감에 자존감도 떨어지고, 돈을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습니다. 우울감이 자꾸 드니 가족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있어요. 자꾸 과거 부동산 계약 시점으로 돌아가 이럴 걸, 저럴 걸 하는 생각만 듭니다. 화근인 집을 팔까도 생각했지만, 저희 직장, 아이들 학교 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면 좋을까요. 마음이라도 좀 단단해지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 한숨 많은 하우스푸어

A : 어떤 사람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겁니다. 돈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도 하고, 모든 사람이 돈을 열심히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 역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감정에 모두들 시달리지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간과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돈으로 도저히 해결하거나 보충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살 수는 있지만, 그 집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마음은 돈으로 구매할 수 없습니다. 내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내 집이 생겼다고 해서 내 마음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안타깝게도 바로 여기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마음, 즉 두려움이라는 내면의 ‘감정’을 제대로 본 적 없는 채로 집을 구매하는 식의 외부적이고 현실적인 ‘행동’을 먼저 가동시키는 것이죠. 연일 치솟는 집값을 보며 집 없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러다 나만 도태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이렇게 어렵게라도 집을 구매해 그 결과 집값이 많이 올랐다거나 수입이 증가해서 대출을 갚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면 그 결정이 당장에는 2차 스트레스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자극되어 감행한 어떤 행동이 현실적으로 그리 좋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면 바로 여기에서 내가 옆으로 밀어두었던 두려움이 증폭되어 한층 거대한 2차 스트레스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게 진짜 과제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싸움은 단지 남편과 나의 화풀이라든가 단순한 부부싸움이 아닙니다. 두려움으로 가득한 남편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내가 각자 겪는 내면의 고통을 어찌할 바 몰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남편이 당신에게 화풀이를 한다는 생각에 괴롭겠지만, 사실은 그도 두려움에 휩싸여 어찌할 바 모르는 가련한 사람일 뿐이죠. 돈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너무 괴로워 둘 다 몸부림치고 있을 뿐입니다. 집이 문제가 아닙니다.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집 문제와 별도로 두 사람은 점점 더 서로를 비난하는 것 말고 할 것이 없게 됩니다.

처음에 집을 사려고 했던 그 이유로 돌아가세요. 거기에 이미 해답이 있으니까요. 내가 원한 것은 ‘안정감’이었고 그 아래에 있던 마음은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서로를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저 잘 살고 싶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라면 일단 집을 정리하고 전세로 옮긴 다음에, 부부 상담을 받는 쪽을 택할 것 같습니다.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할 테고, 또 다른 어려움도 맞닥뜨려야 하겠지만, 분명히 지금의 괴로움은 내려놓게 될 것이니까요. 저는, 어려운 때일수록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눈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짜 안정감은 집이 주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있다는 명료한 자각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은 샀지만 그 집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집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요? 돈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상태에서 돈을 만들기 쉬워진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 곽정은 작가, 메디테이션 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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