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의 시간' 겪고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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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은 로봇피자배달 스타트업 줌(ZUME)도 지난해 폐업한 스타트업 중 하나다. photo 뉴시스


금융 데이터 분석 기업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32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폐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한 스타트업들이 모은 투자금은 총 270억달러를 넘었다. 그런데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 때와 달리 폐업 시에는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는다는 점에서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수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벤처캐피털 IVP의 총괄파트너 톰 러베로(Tom Loverro)는 2023년이 스타트업 '대멸종(Mass Extinction)'의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정보업체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146개가 폐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규 투자 유치도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해 신규 설립된 스타트업 중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업체는 2022년 322개에서 2023년은 95개로 약 30% 수준까지 축소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어떤 스타트업들이 폐업했나

우선 미국에서 하이퍼루프 대중교통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던 하이퍼루프원(Hyperloop One)을 꼽을 수 있다. 하이퍼루프원은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을 비롯한 여러 투자자로부터 총 4억5000만달러를 유치했지만,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다.

한때 40억달러의 가치에 달했던 헬스케어 스타트업 올리브AI(Olive AI)도 총 8억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했지만 설립 11년 만에 폐업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유명 벤처캐피털 그레이록 등으로부터 10억달러 이상을 투자받은 해운 물류 스타트업 콘보이(Convoy)도 문을 닫고 경쟁업체 플렉스포트(Flexport)에 기술 자산을 넘겼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등으로부터 총 2억달러를 유치한 소셜 앱 IRL은 이용자 수 조작 논란 후 폐업했다. IRL은 월활성이용자수(MAU) 2000만명 중 95%가 가짜였다. 이외에도 프롭테크 스타트업 제우스리빙(Zeus Living), NFT 스타트업 리커(Recur), 로봇 피자배달 스타트업 줌(Zume), 암호화폐 결제 스타트업 와이어(Wyre), 약국 스타트업 메들리(Medly) 등이 폐업했다.

국내 시장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폐업 사례를 누적 투자 유치 금액 기준으로 살펴보면, 지난해 10월 폐업한 옐로디지털마케팅(511억원 투자 유치)과 옐로오투오그룹(300억원 투자 유치)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회사는 한때 유니콘 기업으로 분류되었던 옐로모바일의 주요 자회사로 수익성 부족으로 인해 결국 폐업하게 됐다.

이외에도 야구 시뮬레이터를 만들던 클라우드게이트, 사업자 매출 정산 서비스 더체크, 공유 픽업장소를 활용한 샐러드 배송 서비스 프레시코드, 부동산 P2P 대출 투자 서비스 루프펀딩, 인도네시아 대상 판매자 지원 서비스 셀러리를 운영하던 스토어카메라, 3D 아바타 기반 팬덤 커뮤니티 스탠월드, 화훼시장 새벽배송 서비스 오늘의꽃, 유저 참여형 스토리 콘텐츠 플랫폼 테일버스 등이 폐업했다.

이들 사례는 스타트업에 있어서 높은 투자금 유치가 성공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물론 초기 단계에서 충분한 투자금 확보는 중요한 일이지만 투자금이 떨어지기 전에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실패와 생존의 기로에 선 스타트업의 진화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스타트업 투자시장의 침체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글로벌 경제의 불안정성과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이 투자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기술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도 투자 위축에 일조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기술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투자 리스크가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들은 여러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아직 충분한 매출을 달성하지 못한 스타트업은 운영 자본의 부족으로 현금 흐름 문제가 발생하면서 급여 지급, 임대료 납부, 제품 개발 등 기본적인 비즈니스 활동이 어려워졌다. 그렇게 되면 폐업이나 헐값에 매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폐업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성장 전략과 확장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 스타트업도 많이 늘었다. 현금이 넉넉하던 시절에는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를 통해 빠른 성장을 추구해 왔지만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그러한 계획들이 무산되거나 지연되었다. 더불어 인재 확보 및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스타트업들은 주로 스톡옵션 등 대기업에 없는 보상 패키지로 우수 인재를 유치한다. 그러나 이런 인센티브에 매력을 느끼는 인재들이 줄어들면서 신규 채용이 어려워졌고, 기존 직원들의 이탈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시장 상황은 스타트업들에 새로운 전략을 요구한다. 비용 관리 및 효율성 향상, 새로운 수익 모델의 개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당분간은 성공이 아닌 생존이 문제라서 많은 스타트업이 전통적인 벤처캐피털 외에 정부 지원 프로그램, 크라우드펀딩, 전략적 파트너십 등 다양한 자금 조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스타트업 멸종의 시간은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발생해온 일이다. 시장에 자금이 넘칠 때는 스타트업들이 근거가 미약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으나 어려운 시기가 도래하면 자동으로 옥석이 가려진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스타트업들이 보다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도록 독려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어려운 시장 상황은 스타트업들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투자 유치에 집중하기보다는 사업 모델의 지속 가능성과 수익성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필요하다면 비즈니스 모델을 신속하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에 맞는 적절한 재무 관리와 자금 운용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알려준다.

결과적으로 현재와 같은 시장 침체는 일부 스타트업의 폐업을 초래할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시장에서의 경쟁이 줄어들면서 남아있는 스타트업들에는 더 많은 시장 점유율과 성장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또한 투자자들은 더 성숙하고 검증된 스타트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이들 기업에는 더 안정적인 투자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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