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KS 이승엽 동점포! 마해영 끝내기포!
불비불명(不飛不鳴). 삼성은 그렇게 큰 울음을 터뜨리기 위해 그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1982년 원년 멤버로 출발한 뒤 2001년까지 무려 7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준우승만 차지했던 삼성은 2002년 마침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비원을 풀었다.
6차전에서 9회말 터진 기적 같은 이승엽의 동점 3점홈런과 마해영의 시리즈 끝내기 홈런. 그런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시리즈 역사상 가장 짜릿한 우승 마무리의 순간. 그날의 끝내기 주인공 마해영의 시선으로 20년 전 한국시리즈의 전설을 되돌아 본다.
6차전 앞두고 임수혁 꿈을 꾼 마해영

“형, 어떻게 지내?”
이상한 꿈이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앞서 삼성 마해영은 집에서 묘한 꿈을 꿨다.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임수혁이 야구장에 나타난 것이었다.
“잘 지내고 있어.”
마해영의 물음에 임수혁은 얼굴 한가득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임수혁은 원래 개그맨이었다. 입만 열었다 하면 주변 사람들이 포복절도할 정도로 입담이 좋았다. 그래서 어딜 가나 항상 팀 내 분위기 메이커였다.
“형, 진짜 잘 왔다. 건강하게 돌아와서 다행이다. 이제 괜찮은 거지?”
“몇 년 동안 누워있었는데 몸이 좋아졌어. 괜찮으니까 이렇게 왔잖아.”
임수혁은 마해영의 고려대 1년 선배. 롯데에서도 한솥밥을 먹었다. 그러나 2000년 4월 18일 임수혁은 잠실 LG전 도중 2루에서 쓰러진 뒤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을 앞두고 밤에 마해영의 꿈에 찾아왔다. 마해영은 2001년 1월에 2대1 트레이드(김주찬+이계성)로 롯데에서 삼성으로 이적했지만, 롯데 시절 임수혁과 함께 ‘마림포’로 불리며 팀의 장타력을 책임졌다.
마해영은 그렇게 꿈속에서 그리웠던 임수혁과 몇 마디를 나눈 뒤 평온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다. 안타까운 건 꿈이었다는 사실. 임수혁은 현실에선 여전히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꿈속에서나마 야구장에 나타난 건강한 얼굴의 임수혁 선배를 봤다는 사실이었다.

‘형이 나한테 힘을 주려고 그러나? 이건 좋은 의미인 것 같다.’
야구장으로 나갈 시간. 마해영은 그렇게 해몽을 하며 여느 때처럼 왼쪽 양말부터 신고 오른쪽 양말을 신었다. 바지를 입을 때도 왼쪽 다리부터 넣고, 오른 다리를 넣었다. 징크스 아닌 징크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걸 왼쪽부터 해결하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해영은 2002년 한국시리즈 들어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특히 4차전에서 4타수 4안타 3타점, 5차전에서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5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11월 10일 대구구장. 6차전이 펼쳐질 삼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이다. 마해영은 한국시리즈 내내 사용했던 배트를 들고 타격훈련을 시작했다. 삼성이 3승2패로 앞선 상황이라 6차전을 이긴다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게 된다.
“기억나는 거는 그때 삼성이 합숙훈련을 안 했어요. (한국시리즈 내내 홈경기 때는) 집에서 출퇴근을 했어요. 이상하게 그때는 그랬어요. 그랬는데 집에서 자다가 수혁이 형 꿈을 꿨습니다. 임수혁 선배 꿈을 꿨어요. 6차전 하기 전, 그러니까 6차전 전날 저녁에 수혁이 형을 만났어요. 굉장히 반갑게 인사하면서 ‘건강하게 돌아와서 다행이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수혁이 형이 왔죠. 운동장에 나타났죠. ‘아, 이거는 아무래도 좀 좋은 의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죠.”
삼성과 LG의 격돌부터가 화제
삼성은 더는 물러서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하고도 한국시리즈에서 패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최악의 시나리오. 삼성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그때까지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985년 전·후기리그 통합 우승으로 한 차례 챔피언이 된 역사를 지니고는 있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유독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82년 원년에는 OB에 1승1무4패로 졌고, 1984년에는 롯데에 3승4패로 물러났다. 1986년과 1987년에는 해태에 물렸고, 1990년에는 프로야구에 뛰어든 LG에 0승4패의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1993년에도 해태에 패하면서 20세기에만 6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삼성은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해태에서 9차례나 우승 신화를 쓴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는 마지막 방책을 썼다. 그런데 2001년 페넌트레이스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지만, 준플레이오프부터 올라와 지친 두산에 2승4패로 패하는 충격을 입었다. 그해 삼성과 두산은 무려 13.5게임차나 날 정도로 전력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천하의 김응용이 삼성으로 와서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하자 “삼성은 김응용이 와도 안 되는 팀”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2002년에도 삼성은 정규시즌에서 압도적 전력을 자랑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이번에도 한국시리즈 파트너는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한 LG였다. 2001년 두산이 정규시즌 3위였다면, LG는 4위였다. 한술 더 떠 양 팀의 페넌트레이스 격차는 무려 15게임차였다.
그해 기본적인 팀 전력 지표들도 거의 대부분 삼성의 우세였다. 팀타율은 삼성이 0.284인 반면 LG는 0.261이었다. 팀홈런은 삼성이 191개로 LG(100개)에 비해 거의 2배나 많이 쳤다. 다만 팀도루에서는 LG가 140개로 47개의 삼성을 압도했다.
팀평균자책점은 삼성이 3.92, LG가 3.93으로 엇비슷했지만 대체적으로 선발은 나르시소 엘비라, 임창용, 배영수를 보유한 삼성의 우세로 점쳐졌다. 불펜은 이동현, 류택현, 장문석, 이상훈 등을 갖춘 LG가 우세하다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LG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두 판 만에 2승무패로 이기고 올라왔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KIA와 5차전 혈전을 치르면서 3승2패로 이긴 상황. 이미 7경기를 치른 LG이기에 강점인 불펜도 지쳐 있었다.

2002년 한국시리즈는 삼성 김응용 감독과 LG는 김성근 감독의 맞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다. 김응용은 1년 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실패를 맛봤지만 9차례 우승으로 자타공인 최다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명장. 반면 김성근 감독은 첫 한국시리즈 무대였다. 2001년 LG에서 타격왕에 올랐던 양준혁이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으면서 친정팀 삼성에 복귀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삼성과 LG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하는 것은 1990년 이후 두 번째였다. 1990년에는 페넌트레이스 1위 LG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준플레이오프부터 올라온 삼성과 만났다. 당시엔 LG가 4승무패로 삼성을 완전히 압도하며 완전무결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11월 3일에 KS 1차전…삼성 첫 승 먼저

2002년 페넌트레이스 총 관중수는 239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 1988년 193만 명 이후 가장 적은 관중수였다. 국민의 관심은 그해 열린 한·일월드컵 4강 이후 축구 쪽으로 급격히 쓸려 있었다. 야구의 대위기였다.
게다가 10월에 펼쳐진 부산아시안게임으로 인해 포스트시즌 자체가 보름가량 늦게 막이 올랐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11월 3일에서야 펼쳐지는 상황이 연출됐다. 11월에 한국시리즈에 돌입하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시리즈 파트너가 삼성과 LG로 결정되자, 다시 야구가 국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우승에 목마른 삼성 팬들과 LG 팬들이 매 경기 야구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1차전이 삼성 나르시소 엘비라와 LG 김민기의 선발 맞대결로 막이 올랐다.
선취점은 LG의 몫이었다. 1회초 시작하자마자 1번타자 류지현(당시 등록명은 유지현)이 우중간 2루타로 출루하자 이종열의 희생번트로 1사 3루. 여기서 3번타자로 나선 루키 박용택이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때려 1-0으로 리드했다.
삼성은 곧바로 1회말 강동우의 좌전안타와 박한이의 희생번트로 1사 2루를 만든 상황에서 이승엽이 중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1-1 동점.
삼성은 5회말 박정환의 좌중간 2루타 후 강동우의 우월 2점홈런으로 3-1로 달아났다. 강동우의 프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 홈런이었다. 삼성은 6회말에 틸슨 브리또의 좌중월 솔로홈런으로 4-1로 승리했다. 특히 강동우의 활약은 삼성 팬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해줬다. 그는 1998년 LG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펜스에 부딪치며 타구를 잡다 정강이뼈가 골절되는 불운을 겪었다. 강동우가 그날 이후로 처음 가을무대를 찾았고, 팬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했다.
삼성 선발투수 엘비라는 그해 정규시즌에서 LG를 상대로 평균자책점 0.39로 매우 강했다. 그러면서 1차전 부담도 없이 8.1이닝 동안 4안타 1사구 7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를 펼치면서 첫 승을 따냈다. 김민기는 4이닝 3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키 178㎝으로 중남미 투수치고는 작았던 엘비라는 먼 훗날인 2020년 1월에 자신의 모국인 멕시코에서 무장 단체에 의한 총격으로 아들과 함께 피살돼 국내 팬들에게도 안타까움을 샀다.
2차전, 만자니오와 이상훈 반팔투혼…대구서 1승1패

11월 4일 월요일. 2차전은 유난히 추웠다. 야간경기로 치러졌다. 대구구장 기온은 섭씨 5.2도. 바람까지 불면서 체감온도는 영하권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외국인 유격수 틸슨 브리또는 푸른색 방한용 두건으로 얼굴 전체를 감싸서 경기에 뛸 정도였다.
삼성 임창용과 LG 라벨로 만자니오의 선발 맞대결.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 만자니오는 반팔로 등판해 뜨거운 피칭을 이어나갔다.
삼성이 3회말 먼저 점수를 뽑았다. 볼넷 3개로 만들어진 1사 만루에서 3번타자 이승엽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날렸다.

LG 타선은 6회 1사까지 단 1안타에 그치며 침묵을 지켰으나 조인성이 임창용을 상대로 좌월 동점 솔로홈런을 날리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이어 2사 후 유지현이 안타로 출루한 뒤 2도 도루에 성공했다. 이병규의 좌전안타에 ‘꾀돌이’ 유지현은 3루를 돌아 과감하게 홈까지 내달렸다. 포수 진갑용이 포구하려는 순간 미트를 보고 재치 있게 진로를 안쪽으로 틀었고, 송구가 팔꿈치를 맞고 굴절되면서 2-1 역전 득점에 성공했다.
LG는 만자니오에 이어 8회부터 장문석~이상훈으로 이어 던지면서 삼성 타선을 막아나갔다. 그런 사이 9회초 승부에 쐐기를 박는 귀중한 추가점을 뽑았다. 2사 1·3루에서 LG가 더블스틸을 시도하는 도중 진갑용의 3루 악송구가 나오면서 LG가 3-1로 달아났다.
LG 선발투수 만자니오는 6회말 2사 후 마해영에게 첫 안타를 내주기까지 노히터 행진을 이어가는 등 7이닝 동안 단 1안타 5볼넷 8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당시 만 39세 17일로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령 승리투수(현재는 한국시리즈 최고령 선발승) 기록을 세웠다. 만자니오의 스페인어식 발음은 만사니요. 불혹의 나이에도 역투를 펼치자 ‘마흔살이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8회말 바뀐 투수 장문석이 선두타자 양준혁에게 볼넷을 내주자 ‘야생마’ 이상훈이 만자니오처럼 반팔만 입고 마운드로 뛰어 올라갔다. 여기서 3타자를 연속 아웃시키는 등 2이닝을 탈삼진 3개를 포함해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를 지켰다. 2002년 포스트시즌에서만 5번째 세이브째였다.
LG는 원정에서 1승1패를 거두는 성과를 올렸고, 김성근 감독 개인적으로도 한국시리즈 첫 승을 올리는 기쁨을 맛봤다.
삼성은 1년 전 두산과 한국시리즈에서도 안방에서 1차전을 이긴 뒤 2차전을 패했는데, 그때의 악몽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는 겨울날씨 속에 진행됐지만 전날에 이어 1만2000명의 만원 관중이 대구구장을 찾아 월드컵으로 빼앗겼던 관심을 야구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3차전, 전병호로 바람잡고 배영수로 틀어막고
하루 휴식 후 11월 6일 잠실구장에서 3차전이 펼쳐졌다. LG는 최원호, 삼성은 전병호를 선발투수로 기용했다. 92학번 동기생들의 맞대결이었다.
삼성이 전병호를 선발로 내세운 건 의외였다. 대부분 배영수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김응용 감독도 경기 전 “배영수를 선발로 예고하면 어린 나이에 긴장할 수 있어서 그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배영수가 1회부터 몸을 풀었다. 그런데 전병호는 기대 이상의 역투를 펼쳤다. 초반 바람잡이 역할만 해도 성공이라고 했으나 4이닝 동안 3안타 1볼넷 무실점. 비록 5회말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면서 강판해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3차전 승리 바람을 제대로 잡았다.
2차전에서 1안타로 눌린 삼성 타선은 1회초 시작하자마자 폭발했다. 선두타자 강동우의 중전안타와 박한이의 희생번트, 이승엽의 볼넷으로 만든 1사 1·2루에서 마해영의 중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브리또의 사구로 1사 만루로 이어졌고, 양준혁과 김한수의 연속 적시타, 진갑용의 희생플라이가 나오면서 4-0으로 리드했다.
LG는 1회에만 선발 최원호에 이어 류택현, 이동현을 줄줄이 투입했으나 삼성 타선의 불길을 잡지 못했다.

삼성은 5회초 대타 김종훈의 1타점 2루타, 6회초 이승엽의 희생플라이로 1점씩을 추가해 6-0으로 달아났고, 5회 무사 1루서 전병호를 구원등판한 배영수는 9회까지 2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2001년 1차전 구원승에 이어 개인적으로 한국시리즈 2번째 승리였다. 강동우와 브리또가 3안타씩으로 삼성 타선을 주도했다.
4차전, 마해영 결승타로 삼성 2승1패

LG는 여기서 밀리면 1승3패로 벼랑 끝에 몰리기에 김성근 감독은 모든 투수를 총동원하며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3-3 동점으로 이어지자 이상훈을 7회부터 투입하는 강수를 던졌다.
8회말 선두타자 박한이가 우중간 2루타로 출루한 뒤 이승엽의 2루땅볼 때 3루까지 진출했다. 이상훈과 고려대 절친인 마해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서 마해영은 잠실구장 좌중간 펜스 상단을 직격하는 천금의 적시타를 날렸다. 삼성의 4-3 리드.
7회에 등판한 노장진이 9회까지 3이닝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4시간20분간의 치열한 접전이 마무리됐다. 이상훈도 9회까지 3이닝 역투를 펼쳤지만 마해영에게 맞은 통한의 한 방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날 선발투수는 1차전처럼 삼성 에이스 엘비라와 LG 김민기의 대결. 삼성이 1회초 마해영의 우월 적시 2루타와 김한수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2점을 선취했다. 2회초에도 마해영의 중전 적시타로 1점을 추가해 3-0으로 앞서 나가면서 전날처럼 쉽게 가는가 했다.
그러나 LG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2회말 최동수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따라붙은 뒤 3회말 1사 1·2루에서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한 루키 박용택이 좌중간 2루타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삼성 김응룡 감독은 엘비라를 4회까지만 던지게 한 뒤 5회에는 5차전 선발로 내정된 임창용을 등판시키는 승부수를 띄웠다. 결국 임창용이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7회에 마운드를 노장진에게 넘기면서 승리를 결정지었다.
삼성 마해영은 4타수 4안타에 홀로 3타점을 올리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LG는 7명의 투수를 줄줄이 내보내며 안간힘을 썼지만, 7회말 공격 무사 만루 찬스에서 1점도 내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5차전, 4시간25분 혈투 끝에 LG 8-7 승리

2차전도 추웠지만 5차전 기온은 더 내려갔다. 섭씨 2.1도였다. 야외 기자석에 앉은 기자들은 손이 얼어 노트북 자판을 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경기 열기는 기온과 정반대였다. 3승1패로 앞선 삼성은 우승을 확정하기 위해, 벼랑 끝에 몰린 LG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기 위해 초반부터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삼성은 오상민, LG는 만자니오를 선발투수로 내보냈다. 팀컬러대로 삼성은 장타력으로, LG는 기동력으로 대항한 5차전이었다.
탐색전은 없었다. 삼성이 1회초 시작부터 마해영의 2점 홈런으로 장군을 불렀다. 마해영은 전날 4타수 4안타의 타격감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러자 LG는 1회말 빠른 발로 상대 틈새를 노렸다. 1사 후 이종열이 우중간 안타로 나간 뒤 2루 도루에 성공했다. 다음 타자 매니 마르티네스도 볼넷으로 나가 2사 1·2루. 여기서 오상민의 폭투와 박연수의 2타점 중전 적시타로 2-2 동점이 만들어졌다.
삼성이 1회부터 투수를 김현욱으로 교체하며 마운드 백병전을 예고한 가운데 LG는 3회말 2점을 먼저 달아났다. 2회에 구원등판한 삼성 3번째 투수 강영식을 상대로 1사 후 박연수와 이병규가 연속 볼넷을 얻었다. 최동수의 좌전 적시타로 3-2로 리드. 여기서 다시 구원등판한 배영수의 폭투가 나왔다. 그러자 적토마 이병규가 3루를 돌아 과감하게 홈까지 파고드는 역주로 4점째를 뽑았다.
삼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4회초 무사 만루에서 박정환의 중견수 희생플라이와 김종훈의 좌전 적시타로 4-4 동점을 만들었다.
LG는 3회부터 구원등판한 배영수에게 막히다 6회말 다시 한번 기동력을 발휘하며 앞서나갔다. 2사 후 유지현이 우월 2루타를 치고 나갔다. 이어 이종열 타석 때 기습적인 3루 도루를 감행했다. 배영수가 흔들렸다. 이종열도 볼넷.
2사였지만 1루주자 이종열과 3루주자 유지현은 언제든지 더블스틸을 할 수 있는 재치 있는 주자들이었다. 삼성 벤치는 1루주자를 묶어둘 수 있는 좌완 전병호를 올렸다. 그러나 전병호는 주자들에게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폭투를 범했고, 3루주자 유지현이 5-4로 리드하는 이날의 결승득점을 올렸다.
LG는 7회말 이종열의 2타점 좌전 적시타로 7-4, 8회말 이병규의 희생플라이로 8-4로 앞서나가 여유를 얻는 듯했다.
그러나 삼성은 호락호락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대타 임재철과 이승엽의 연속안타로 만든 1사 1·2루에서 마해영이 LG 마무리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좌중간 3점홈런을 날려 7-8까지 쫓아왔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브리또가 유격수 실책으로 나갔다. LG 김성근 감독은 과부하 징조를 보인 이상훈을 빼고 장문석을 마운드에 올렸다. 여기서 김한수의 내야안타까지 이어져 다시 1·2루. 그러나 장문석이 진갑용과 박한이를 연속 범타 처리하면서 치열했던 4시간25분의 접전을 마무리했다.

4차전에서 LG가 7명의 투수를 투입했다면, 이날 5차전에서는 삼성이 7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세우는 백병전을 치렀다. LG는 선발 만자니오가 5이닝 4실점으로 물러난 뒤 이동현~류택현~이상훈~장문석으로 이어 던지며 마지막 동아줄을 잡았다.
이날 승리투수는 2년생 투수 이동현. 두 번째 투수로 나와 2.2이닝 1안타 2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그런데 이 승리투수가 지금까지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승리투수로 남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삼성 마해영은 이날도 4타수 2안타 5타점을 올리면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4차전과 5차전의 맹활약은 6차전의 기적 같은 한 방을 위한 예열이었는지 모른다.
6차전, 6-9로 뒤진 9회말 이승엽의 극적 동점포

“형, 3점차인데 초구부터 쳐야 해? 말아야 해?”
삼성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서게 될 9번타자 김재걸은 9회말 마운드에 올라 몸을 풀고 있는 이상훈을 바라보며 마해영에게 물어봤다.
11월 10일 대구구장. LG가 9-6으로 앞선 상황. 이상훈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2002년 포스트시즌에서만 10번째 등판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또 반팔만 입고 나와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연습투구를 하고 있었다.
“1점차도 아닌데 괜찮아. 쳐.”
김재걸은 1995년 당시 역대 최고 계약금 2억1000만 원을 받고 삼성에 입단할 정도로 기대를 받았으나 수비와 주루에 비해 타격 성적이 신통치 않아 백업으로 밀려난 상황이었다. 이날도 경기 막판 2루수 대수비 요원으로 들어갔다. 이날 첫 타석이었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이상훈. 초구가 날아들었다. 남자답게 직구 승부였다. 시속 140㎞ 한가운데 높은 코스. 김재걸은 마해영에게 조언을 구한 대로 초구부터 기다리지 않고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타구는 중견수 매니 마르티네스의 키를 넘어 중앙 펜스를 때렸다. 2루타. 하마터면 홈런이 될 뻔했다.
“김재걸이 초구에 2루타를 치고 나갔죠. 그러면서 분위기가 좀 잡혔고, 아무래도 우리가 홈이었기 때문에, 말공격이었기 때문에 찬스가 한번은 오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때 3~4~5번이 홈런을 많이 칠 때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죠. 무조건 ‘됐다’라고 생각은 못했어요. 엽이가 워낙 안 맞고 있었기 때문에….”
마해영은 20년 전 가을밤 9회말의 기적을 시작한 김재걸의 2루타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해영의 말처럼 이승엽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극도의 타격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1번타자 강동우가 이상훈의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2번타자 브리또가 타석. 그러자 3번타자 이승엽도 대기 타석 원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당시 삼성 현명관 구단주는 자신의 자서전 ‘위대한 거래’에서 비화를 밝힌 바 있다. 귀빈실에서 그라운드를 지켜보는데 이승엽이 눈앞에 나타나자 속이 뒤집혀 인터폰을 통해 김응용 감독에게 “이승엽 좀 빼라”고 말할 뻔했다고 한다.
“이승엽 빼야 하는 거 아니요? 오늘 4타수 무안탑니다. 5타수 무안타 만들 겁니까? 정말 여기서 포기하자는 거예요, 뭐예요? 안 되겠습니다. 인터폰 어딨어요? 내가 감독한테 직접 말하겠습니다.”
현명관 구단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 쪽으로 향하자 삼성 김재하 단장이 조용히 말렸다.
“한 번만 더 김응용 감독을 믿어 보시죠. 무슨 생각이 있겠죠.”

실제로 이승엽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도저히 기대감을 가질 수 없는 수준의 타격을 하고 있었다. 1차전 1회말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뒤 내내 무안타였다. 5차전 9회초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치며 감을 잡는가 했으나 6차전 역시 앞선 4타석에서 무안타였다. 20타수 2안타로 타율이 1할에 머물고 있었다.
브리또가 볼넷을 골라 나갔다. 1사 1·2루 찬스. 여기서 결국 3번타자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당시 마해영도 속으로 이승엽이 한 방을 쳐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제발 병살타만 치지 마라’고 빌고 있었다.
“솔직히 어떤 생각을 했냐면, 1아웃에 1·2루였단 말이에요. 그래서 ‘병살타만 치지 마라, 병살타만 안 치면 내가 4번이고 (양)준혁이 형이 뒤에 5번이니까 4번, 5번에서 뭔가 좀 나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승엽이가 병살타를 쳐버리면 경기가 끝나잖아요. 그러니까 뭐 ‘홈런을 쳐라’ 이런 건 상상도 못했고, ‘병살타만 안 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딱’ 맞는 순간에 알았죠. 맞는 순간. 그게 슬라이더였거든요.”
초구는 몸쪽으로 붙는 시속 134㎞ 스트라이크. 포수 조인성의 미트 방향과는 거꾸로 가는 반대투였다. LG로선 행운이었다. 유광점퍼를 입은 LG 덕아웃의 선수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볼카운트 0B-1S. 이상훈이 모자챙을 고쳐 쓰며 포수 조인성의 사인을 응시했다. 셋포지션. 쉼호흡을 끝낸 이상훈의 2구째가 날아들었다. 한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시속 126㎞짜리 슬라이더.
“딱!”
날카롭게 돌아간 이승엽의 방망이에서 경쾌한 타구음이 들렸다. 우익수 최만호 뒤로 대구 밤하늘에 하얀 무지개 아치가 그려졌다. 거짓말 같은 우월 3점홈런. 한순간에 9-9 동점이 됐다.

이승엽은 1루 앞에서 마치 한 마리 학이 날듯 양팔을 벌린 채 포효했고, 1루코치 박흥식과 부둥켜안고 미친 듯이 기뻐했다. 그라운드를 돈 이승엽이 홈 앞에서 껑충 뛰어올라 홈플레이트를 밟자 먼저 득점한 브리또가 이승엽을 격하게 포옹했다. 삼성 선수들이 3루 쪽 덕아웃 앞으로 일제히 쏟아져 나와 이승엽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사이, 대구구장은 떠나갈 듯 팬들의 함성으로 메아리쳤다.
‘불신물용(不信勿用) 용인필신(用人必信)’. ‘믿지 못하면 쓰지 말고, 쓴 사람은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김응용의 뚝심과 그것을 결과로 증명한 이승엽. 현명관 구단주가 다시 한번 이 말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만약 이승엽을 거기서 교체했더라면 이런 역사적인 장면이 나올 수 없었다.

마해영, 사상 최초 ‘시리즈 끝내기 홈런’
“총재님, 빨리 돌아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날이 마지막이 될 수 있어서 KBO는 우승 시상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팀이건 3승을 먼저 한 팀이 나타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두산그룹 회장인 KBO 박용오 총재도 이날 대구구장에 와 있었다.
이날 경기는 초반부터 역전에 재역전으로 명승부를 펼치고 있었다. 양 팀 선발투수 전병호와 신윤호가 나란히 1.1이닝 만에 강판한 뒤 불펜싸움을 전개했다.
2회초 LG 최동수가 구원등판한 배영수를 상대로 선제 3점포를 날렸다. 그러자 삼성은 2회말 삼성 박한이의 투런포로 응수한 뒤 3회말 양준혁의 적시타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4회초 조인성의 적시타로 LG가 4-3으로 리드하자 삼성은 4회말 진갑용의 1타점 좌익선상 2루타와 박정환의 중전 적시타로 5-4 역전에 성공했다.
LG가 6회초 2사 1·2루 찬스를 잡자 삼성은 마무리투수 노장진을 투입했다. 7차전까지 가면 승부를 알 수 없는 상황. 어떻게 해서든 6차전에서 끝내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믿었던 노장진이 조인성에게 적시타를 내주며 5-5 동점이 됐다. 여기서 LG는 고관절 부상으로 벤치에서 대기하던 대타 김재현을 투입했다. 타석에 들어선 김재현은 2타점짜리 좌중간 안타를 날렸다. 7-5 역전. 보통 선수라면 2루타가 돼야할 타구였지만, 김재현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1루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김재현의 눈물겨운 부상 투혼에 사기가 오른 LG는 8회초 최동수와 조인성의 연속 적시타로 9-5까지 달아났다.
그 순간, 박용오 총재는 홈팀 귀빈실에서 현명관 구단주에게 “오늘 내가 우승 팀에게 시상을 할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서울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7차전은 잠실구장에서 치르기로 예정돼 있었다. 박 총재가 탑승한 승용차는 대구구장을 떠났다.
그런데 9회말 이승엽이 믿기지 않는 동점 홈런을 치자 KBO 관계자가 박용오 총재에게 긴급히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박 총재가 탄 승용차가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북대구IC로 막 들어서려던 순간이었다. 결국 박 총재는 급하게 차를 돌려 다시 대구구장으로 달렸다.

그 순간, LG는 투수를 이상훈에서 최원호로 교체했다. 지친 이상훈의 구위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다음 타자 마해영은 앞선 5차전에서도 이상훈을 상대로 홈런을 날리는 등 고려대 동기인 이상훈에게 유난히 강했다. 어차피 동점 상황이라 투수교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즌 내내 이상훈 선수한테 좀 강했던 면이 있었고요. 시즌에도 홈런이 있었고, 5차전에도 제가 홈런을 쳤었고…. 아무래도 김성근 감독님 생각도 ‘계속 가기에는 좀 힘들지 않나’ 해서 바꾼 것 같아요. 제가 왼손 투수에 강했기 때문에, 또 아무래도 (이상훈 투수가) 지쳤고. 그래서 교체를 했는데, 그때 LG 불펜에 경헌호 투수하고 최원호 투수가 몸을 풀고 있었어요. 경헌호 투수한테는 제가 그렇게 잘 친 기억이 없었어요. 근데 최원호 투수한테는 제가 잘 쳤거든요. 근데 최원호가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너무나 고마웠고, 자신 있었고, 그러면서 결과가 좋았습니다.”
삼성 선수단이나 팬들은 다 진 경기에서 이승엽이 동점을 만든 데 대해 흥분하고 있었다. 사실 그렇게 해서 연장전만 가더라도 하늘에 큰절을 해야 할 판이었다.
“형, 끝내 주세요”
이승엽은 동점 홈런을 친 뒤 자신을 환영하러 나온 마해영을 포옹한 뒤 한마디 부탁을 했다. 자신이 동점을 만들었으니 4번타자가 해결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마해영이 타석에 들어섰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노림수를 갖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최원호 투수가 강속구 투수는 아니니까 정면 승부를 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몸쪽 승부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있을 테니 ‘무조건 바깥쪽이다’ 생각하고 바깥쪽을 노리고 있었죠. 2구째에 변화구(커브)를 던졌어요. 그런데 제가 변화구를 친 게 레프트(왼쪽) 파울 선상으로 잘 맞은 타구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상대편에서는 오히려 더 깜짝 놀랐죠. 그러니까 더욱더 조인성 포수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고, 저는 그걸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앞발이 좀 더 홈 플레이트 쪽으로 들어가면서 바깥쪽을 노리는 타격을 해서 밀어서 쳐야겠다고….”
볼카운트 1B-1S. 마해영은 타석을 벗어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뭔가를 생각했다. 결심이 선 듯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 들어섰다.
3구째 바깥쪽 시속 139㎞ 포심 패스트볼. 마해영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다.
“딱!”
타구는 직선으로 대구구장 오른쪽 담장을 향해 날아갔다. 관중들의 함성이 터졌다. 우익수 최만호가 담장을 향해 달려갔고, 타구는 쏜살처럼 비행하더니 오른쪽 외야 관중석에 꽂혔다. 공이 배트에 맞은 뒤 4.3초 만에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끝내기 홈런!”

타구를 바라보며 달리던 마해영은 1루 앞에서 홈런을 확인하고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포효했다.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표정으로 무아지경 속에 자신도 모르게 1루 주위를 리본 모양으로 한 바퀴 돌았다.
박흥식 1루코치가 날뛰는 마해영을 끌어안기 위해 술래잡기 놀이를 하듯 따라 돌았고, 둘은 얼굴을 마주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격한 포옹을 했다. 마해영은 2루로 향하면서 다시 한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웅크린 자세에서 있는 힘을 다해 포효했다.
삼성 선수들은 모두 홈플레이트 쪽으로 몰려나와 개선장군하는 마해영을 환영하면서 보이는 대로 동료들을 끌어안고 기뻐했다. 10-9 삼성 승리. 그리고 4승2패 삼성 우승.
한국시리즈 역사상 백투백 홈런으로 승리하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시리즈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확정하는 것도 최초의 일이었다. 마해영이 그라운드를 도는 시간에 최원호는 마운드에 주저앉아 일어서지를 못했다.

마해영은 홈런을 노리고 쳤을까. 보통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타자들은 “홈런을 노리고 친 것은 아니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마해영은 “솔직히 홈런을 노리고 쳤다”고 말했다.
“큰 거를 노렸고요. 맞는 순간 넘어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때 LG트윈스 우익수 최만호 선수가 (타구를) 잡을 것처럼 뛰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어? 어?’ 했죠. 맞는 순간 넘어갔는데 막 잡으러 가니까, ‘어? 왜 잡으러 가지? 혹시?’ 이런 생각을 좀 했거든요. 근데 넘어가고 나니까 (1루 앞에서) 한 바퀴 돌았죠.”
‘불비불명’과 삼성의 7전8기 한풀이
마해영이 그라운드를 도는 순간, 이미 외야 펜스에 줄줄이 설치된 폭죽이 터졌다. 삼성 양준혁과 이승엽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고, 삼성 팬들과 삼성 구단 프런트도 모두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 김재하 단장도 아예 대놓고 엉엉 울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부터 그렇게 기대하고 고대했던 한국시리즈 우승. 앞선 20년간 무려 7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우승이라는 자리.
김응용은 해태 감독 시절 삼성의 우승을 막아선 적장이었지만, 삼성 이적 2년 만에 라이온즈의 20년 우승 한을 풀어줬다. 개인적으로도 해태에서 9번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삼성에서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한국시리즈를 10차례나 우승시킬 감독이 나타날까.

김응용 감독은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적장인 LG 김성근 감독을 위로하기 위해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 이면에는 자신이 야구의 신을 이겼다는 의미도 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말 한마디로 인해 김성근 감독은 ‘야구의 신’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이를 줄여 ‘야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긴 지나고 보니, 김성근 감독 이후 LG 사령탑이 8명(이광환-이순철-김재박-박종훈-김기태-양상문-류중일-류지현)이나 줄줄이 들어 왔지만, 여전히 김성근 감독보다 높은 순위를 찍은 감독이 없다. 이제 9번째 감독(염경엽)이 과연 이천에 잠자고 있는 아와모리 소주 항아리 뚜껑을 열어줄 수 있을까.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 감독
①10회 김응용=해태 9회(1983, 1986~1989, 1991, 1993, 1996~1997년), 삼성 1회(2002년)
②4회 김재박=현대 4회(1998, 2000, 2003~2004년)
②4회 류중일=삼성 4회(2011~2014년)
④3회 김성근=SK 3회(2007~2008, 2010년)
④3회 김태형=두산 3회(2015~2016, 2019년)
⑥2회 강병철=롯데 2회(1984, 1992년)
⑥2회 김인식=두산(OB 포함) 2회(1995, 2001년)
⑥2회 선동열=삼성(2005~2006년)


마해영은 사실 롯데 시절이던 1999년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비수를 꽂은 인물이었다. 당시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호세가 추격의 솔로홈런을 친 뒤 대구 팬들이 던진 오물에 화가 난 나머지 방망이 투척 사건을 벌였고, 경기가 재개된 뒤 마해영이 동점 솔로홈런을 날린 바 있다. 당시 마해영은 덕아웃 앞에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한 뒤 헬멧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울분을 토했다.
그런데 마해영은 선수협 결성을 주도하다 앞서 설명한 대로 2001년 1월에 삼성으로 트레이드됐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4번타자로서 대구 팬들의 한을 풀어줬다. 6차전 시리즈 끝내기 홈런도 극적이었지만,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홈런 3방을 포함해 24타수 11안타(타율 0.458) 10타점으로 맹활약하면서 삼성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그러면서 기자단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생애 첫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마해영은 2002년 끝내기 홈런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20년 전 우승 날짜를 자신의 생일처럼 기억해냈다. 손끝에 그때의 홈런 감각이 살아나는 듯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20년 전 6차전에 앞서 꿈에 나타나 힘을 줬던, 지금은 하늘나라로 떠난 임수혁 선배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11월 10일입니다.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 20년 전인데 솔직히 지금 느낌도 한두 달 전? 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굉장히 생생하고요. 볼 카운트, 그때 상황…. 이번에 대구에 일이 있어서 가서 공 넘어간 시민 구장 그쪽에 한참 좀 있다가 왔습니다(웃음). 일단 한국시리즈 보면 당연히 저도 아직도 심장이 뛰고요. 한국시리즈는 롯데 있을 때(1995년, 1999년)에도 올라갔고, 여러 번 올라갔지만 우승은 그때(2002년)가 처음이었고요. 죽을 때까지, 또는 앞으로 죽어서도 계속 회자될 수 있는 그런 의미 있는 경기였던 것 같고요.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언제든지 술자리든 식사하면서 그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쟁취했기에 더욱 값진 첫 우승이었다. 2002년 11월 10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전광판 아래에는 ‘20년 不飛不鳴(불비불명) 雄飛(웅비) 삼성 라이온즈’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다. 20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못했던 삼성이 마침내 힘차게 날아올랐다는 의미였다.
20년간 무던히도 속을 썩였던 한국시리즈 우승. 막혀있던 우승의 혈은 2002년을 기점으로 뚫렸고, 그 이후 우승의 실타래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삼성은 2005년과 2006년 선동열 감독 시절 ‘지키는 야구’로 2연패에 성공했고, 류중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연패로 ‘삼성 왕조’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여러 우승 중에서도 2002년 우승의 감격에 비견될까. 꿈만 같았던 2002년 첫 우승도 벌써 20년 전 추억이자 전설이 되고 있다. 삼성 팬이라면 어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글. 이재국 야구전문기자(스포팅제국) | 이미지. 스포츠서울 등 | 영상. 스포팅제국
필자 소개 | 이재국 기자
"야구가 밥 먹여주냐"라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야구가 밥 먹여준다"는 걸 증명한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KBO 40주년을 맞아 40가지 전설 속으로 야구여행을 출발한다.
스포팅제국 대표 / 스포티비뉴스 전문위원 / KBS 이광용의 옐로우카드 패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