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국 경제 정점론과 창조적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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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중국 경제 정점론을 논하는 한국 언론을 향해 한 일본 언론사가 ‘한국은 끝났다’라는 선정적 기사로 한국 경제 정점론을 제기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이고 극심한 저출산으로 노동력이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 정점론을 마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우리 경제는 지금 내리막길인가.

한국전쟁 이후 우리가 이룩한 경제 발전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은 장기간 급성장하며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선진 기술을 모방하는 따라잡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진 기술을 개척해야 할 시점이다.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전환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저출산 고령화, 기후위기 등의 난제를 생각하면 미래가 암울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 정점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지 않겠는가.

조셉 슘페터가 제시한 ‘창조적 파괴’는 경제 발전의 핵심 기제로 꼽힌다.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혁신 기술이 쇠퇴한 기술을 몰아내는 현상을 뜻한다. 모든 기업이 기술을 혁신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기술 혁신에 성공한 신생 기업이 기존 기업을 밀어내고 시장에 진입하며 경제가 발전한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실직은 순탄하지 않다. 진입규제를 통해 기득권층을 보호해 달라는 요구는 언제나 존재해 왔으며 제도적으로 안전하게 보호받는 기업은 치열하게 혁신을 추구할 유인을 가지지 못한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의사인 듯하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반대하면서 쌓아 올린 진입장벽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공급을 줄이고 경쟁을 제한하면 이윤은 높아진다. 코로나를 겪으며 급속히 발전한 인공지능(AI) 기술, 비대면 기술을 도입하며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기업들과 달리 의료기관들은 비용 보전을 요구하며 원격의료 도입에 소극적이다. 불편은 국민들의 몫이다. 법률서비스 플랫폼인 로톡은 소비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편리하게 제공하며 변호사들 간 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 변호사협회는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를 징계하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플랫폼에는 정부 지원을 요구한다. 택시 사업자들은 새로운 모빌리티 플랫폼인 타다의 시장 진입을 막는 데 결국 성공했고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던 국민들은 택시 잡기가 힘들어졌다. 서울의 대학은 정원 규제를 받는다. 새로운 대학을 설립할 수도, 우수한 대학이 정원을 늘리기도 어렵다. 서울의 대학들도 지금보다 대학 간 경쟁이 더 치열했더라면 사회수요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 학과별 정원을 조정하지 않았을까.

혁신적 기술 도입은 경제 내에서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사유재산이 확고히 보장되고, 법질서가 공평하게 시행되며, 누구에게나 공평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를 강조한다. 만약 ‘경제적 특혜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경제적 패자와 정치권력이 침해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적 패자가 가로막는다면 경제 성장은 지속되기 어렵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이해집단이 기득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근시안적 인기영합주의가 득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 발전 단계에서 경제·사회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국민들은 더 기대할 것이다. 기득권의 반발을 누르고 경제구조 개혁을 추진한다면 한국 경제 정점론도 자연스레 가라앉을 것이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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