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확인 안된 '유령 아동' 800여명 남았다…"출생통보제 도입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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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23. 오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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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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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6명 중 베이비박스에 1418명…818명은 어디에
출산보호제 해외는 어떻게?…프랑스·독일 사례 참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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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병원에서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안된 이른바 '유령 아동' 2236명 가운데 800여명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추정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수원 비극'과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23일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호를 받은 아동이 1418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25명은 원래 가정으로 돌아갔고 148명은 입양됐다. 이들 373명은 모두 출생신고를 마쳤다. 나머지 1045명은 미아신고를 통해 관할 구청에 인계돼 시설에서 보호하거나 입양됐다.

같은 기간 정부가 파악한 유령 아동은 2236명에 달한다. 결국 행방이 묘연한 유령 아동은 818명이란 계산이 나온다.

주사랑공동체 관계자는 "정부가 '유령 아동'이 2236명이라는데 베이비박스엔 같은 기간 1418명의 아기가 보호됐다"며 "818명의 아기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된 아기를 제외하면 818명의 아기가 불법 입양 거래됐거나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끝을 흐렸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 주택 내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다. 각각 2018년, 2019년에 친모에게 살해당했다. 태어났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이 생명들은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났다. 현재까지 총 4명의 유령 아동이 사망한 것으로 아이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아살해 등 아동학대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6.2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출생미신고 과태료 고작 '5만원'…법안은 국회에 '쿨쿨'

전문가들은 출생 미등록 아동 관련 살해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부모의 출생신고 없이는 존재 유무를 파악할 수 없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가족관계등록법상 출생신고는 한 달 안에 해야 하지만 이행하지 않더라도 형사 책임은 없고 과태료는 '5만원'에 불과하다.

국회에는 지난해 3월부터 의료기관이 출생정보를 직접 등록하는 '출생통보제'와 임산부가 의료기관 밖에서 출산하는 경우 위험을 막기 위해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등록법 정부개정안이 제출됐으나 1년인 넘도록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봉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태어나는 순간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 아기를 위해 보편적인 출생통보제를 시급히 진행해야 된다"며 "존재가 인정돼야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지원 등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생통보제의 경우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상당수 국가가 채택해 제도를 운영 중이다.

다만 출생통보제의 경우 의료계에서 반대하고 있다. 병원의 업무 부담이 생기고 출생 신고를 꺼리는 산모가 사각지대에서 출산을 할 수 있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산모를 낙태로 내모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핵심은 '출산 보호제'…프랑스·독일 방식 혼합도 고려해야

출생통보제를 보완하기 위해 함께 제시된 법안이 보호출산제다. 익명을 보장해 병원 밖 출산으로부터 산모와 아기를 지키자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병원 밖 출생 사례는 연간 100~200건 정도로 추정된다.

다만 보호출산제도 양육 포기를 부추기거나 친모 대신 국가가 출생 신고를 하고 입양을 보낸다는 점에서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해외입양자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알권리도 침해할 수 있다는 염려도 제기된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출생통보제 마련엔 동의를 하면서도 "보호출산제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이러한 접근방식으로는 누구도 보호할 수 없다"고 보호출산제에 우려를 표했다.

'알 권리'와 '생명권' 충돌을 고민하는 것은 해외 사례를 통해 확인된다. 보호출산제를 채택한 프랑스의 경우 친모의 정보를 남기도록 권유하고 있다. 의무가 아니지만 아이가 커서 친모를 찾고 싶을 경우 국가기관에 신청을 해 동의 하에 친모와 연결해 준다. 보통 이런 경우 친모는 정보를 밝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독일의 경우는 친모가 출산하는 경우 의무적으로 정보를 남겨야 한다. 국가는 밀봉된 봉투에 보관하다가 아이가 16세가 넘어서 확인을 신청하면 친모의 동의 하에 공개한다. 친모가 반대할 경우 법원에서 판단하게 돼 있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살지 못하면 그 권리가 성립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에 도입할 경우 두 제도를 혼합해서 독일처럼 의무적으로 정보를 남기되 프랑스처럼 친모가 동의할 경우 공개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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