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안혜리의 시선]'누칼협'과 '알빠노'가 지배하는 카카오에 미래가 있나

입력
수정2022.10.20. 오전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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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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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서비스 장애로 국민 불편 속
'무급이라 일 안해' 직원 글 논란
돈만 좇는 탐욕적 기업문화 도마
안혜리 논설위원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카카오 먹통 사태가 이틀째 이어지며 전 국민의 짜증이 쌓여만 가던 지난 16일 저녁,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내가 장애대응 안 하는 이유'라는 논쟁적 글이 하나 올라왔다. 글을 쓴 카카오 직원은 '주말이라도 16시간까진 무급이라 쿨하게 노는 중'이라며 '(회사가 주말 근무에) 돈 쓰기 싫으면 서비스 터지는 게 맞지'라고 요즘 유행하는 '알빠노'(※뜻은 아래에)의 전형을 보여줬다. 사측은 즉각 부인했지만, 지난 7월 도입한 놀금(격주 금요일마다 쉬는 제도)으로 직원들이 매달 의무 근무시간(40시간)보다 16시간씩 일을 덜 하기에 이를 초과하지 않으면 수당을 받을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참고로, 카카오의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1억 7200만원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카카오 서비스들이 먹통이 됐다. 일부 서비스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았다.
여전히 서비스 장애가 이어지던 그다음 날에도 블라인드엔 '자본주의야'라는 또 다른 글이 올라와 말 그대로 국민적 분노로 훨훨 타오르고 있던 불난 집(카카오)에 기름을 확 부어버렸다. 이 직원은 '니들(카카오 이용자) 불편하니까 내 회사니까 책임감으로 일하라고? 누가 카카오 쓰래? 오너 마인드가 글러 먹은 서비스에 니들 일상을 올인한 게 문제인 걸 (카카오 직원한테) 무료봉사를 강요하지 마'라며 창업자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전 이사회 의장)과 5000만 카카오 이용자 모두를 싸잡아 조롱했다. 한마디로 '누칼협'(※뜻은 아래에)이라도 했느냐는 비아냥이다.
지난 16일 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 IT 라운지에 올라온 카카오 직원의 글.
게임 유저에게서 유래했다는 '알빠노'는 '내가 알 바가 뭐 있나?', 즉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냉소적 신조어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음?'이라는 뜻의 '누칼협' 역시 너 좋아서 한 일이니 나한테 뭐라 하지 말라는 냉소가 깔린 말이다. 한마디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한 회사가 망하든 말든, 일상에 지장을 겪는 서비스 이용자가 고통받든 말든 난 관심 없다는 극단적 이기심의 표현이라 하겠다. 여기엔 이미 카카오에 중독된 사용자가 결코 이 플랫폼을 떠나지 못할 거라는 오만 섞인 배짱도 깔려 있다.

당장 온라인이 들끓었다. 처음 이 내용을 접하곤 오로지 내 이익만 좇는 MZ 세대의 무너진 직업윤리인가, 아니면 성과 보상에 유난히 예민한 판교 문화인가 잠시 헷갈렸다. 하지만 네이버 직원이 블라인드에 이 논리를 반박하는 등 IT 업계 내부에서조차 즉각 비판이 나오는 걸 보고 세대나 업계 문제가 아닌 카카오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먹통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까지 언급한 플랫폼 독점 문제나 이미 지난 수년간 이어져 온 골목상권 침해 불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 63개에 불과했던 계열사를 187개(6월 기준)까지 늘린 문어발 확장 논란, 경영진 배 채우기 위한 무리한 쪼개기 상장 등 카카오가 국민들로부터 악덕 기업이라는 미운털이 박히게 된 일련의 일탈이 단순히 오너나 일부 경영진의 탐욕 탓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서비스 먹통 이틀째인 지난 16일 밤 카카오 판교 빌딩 전체에 불이 켜있다. 김정민 기자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익명의 글 몇 개로 회사 구성원을 싸잡아 비난하는 게 무리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비록 사람들 기대보다 많이 늦긴 했지만 카카오의 누군가는 보상과 상관없이 열심히 피해복구에 나섰기에 대부분의 서비스가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가 규제를 들이대려고 할 때마다 '서비스 멈춰서 정부 정신 차리게 하자'는 식의 알빠노와 누칼협 정신에 충만한 카카오 직원들의 글이 블라인드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던 걸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은 기업문화가 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도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카카오택시 등 카카오 계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혁신은커녕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황당한 경험을 할 때마다 이 회사가 이렇게 초심을 잃고 돈만 좇다간 오래가지 못할 텐데, 싶은 불안감이 들곤 했다. 이번 사태를 겪고 보니 괜한 기우가 아니라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매출은 똑같이 6조 원대인 네이버가 지난해 정보보호에 350억원을 투자할 때 카카오는 140억원밖에 쓰지 않았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두 회사가 똑같이 쓰는 데이터센터에 불이 났는데 한 곳은 멀쩡하고 다른 하나는 초토화된 것만 봐도 카카오가 그동안 얼마나 탐욕스럽게 돈만 좇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창업자인 김범수 센터장(전 이사회 의장)은 2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 출석한다. 지난해 그랬던 것처럼 또 거짓 약속으로 잠시 상황을 모면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갈 거라 믿고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구성원들이 이번에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하고 계속 알빠노와 누칼협 정신을 이어간다면 카카오는 결국 돈만 좇다 돈을 전부 쫓아버리는 결과를 맞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이미 그 전조를 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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