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가나와 조별리그 2차전 직후 받은 레드카드 때문에 벤치에 앉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과의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모습으로 경기를 지켜보다 천금 같은 역전골이 터지자 흥분하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한국 대표팀은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H조 최종 3차전에서 포르투갈을 2-1로 이겼다. 한국은 우루과이와 나란히 1승 1무 1패를 기록했지만 다득점에서 앞서 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벤투 감독은 16강에 오른 유일한 외국인 사령탑이 됐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32개국 중 외국인 감독은 한국을 포함해 9개국이다. 이 중 한국만 조별리그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벤투 감독은 또 월드컵 본선에서 조국인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를 따낸 인물로도 기록됐다.
벤투 감독은 1992년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포르투갈 국가대표를 지냈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었다. 현재 포르투갈 사령탑인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 직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바로 벤투였다.
포르투갈 축구를 가장 잘 아는 벤투 감독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가나와의 경기를 마친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벤투 감독의 결장이 팀으로서 좋은 상황은 아니다. 감독님이 요구하는 것들을 더 잘 이행하기 위해 새겨들으려 노력하고 며칠 안 남은 기간에 준비를 더 잘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팀의 막내 이강인도 “당연히 우리에겐 안 좋은 상황이다. 그래도 감독님이 어디 계시든, 함께 하는 것을 선수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는 선수들과 스태프들을 믿었다. 벤투 감독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제가 그 자리에 있지 못하는 것에 선수들이 많은 영향을 받진 않을 것이다. 제가 없더라도 자리를 채워줄 사람들이 많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 믿음은 현실이 됐다.
이날 벤투 감독 대신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가 팀을 이끌었다. 그는 이날 1-1로 팽팽하던 후반 황의조(올림피아코스), 황희찬(울버햄프턴) 등 공격 자원을 투입했고 이는 결국 직선적인 속도를 살린 황희찬의 결승 골까지 이어졌다.
코스타 코치는 벤투 감독과 상의해 결정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우린 직접적으로 감독님과 대화할 수 없었다. 전반적인 공격과 수비에서의 전략만 사전에 이야기를 했다. 90분 간 세부적인 것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스타 코치는 “포르투갈은 훌륭한 팀이었지만 우리 선수들도 강했다. 잘 준비한 전략을 그라운드에서 펼칠 수 있었다. 오늘 뿐 아니라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우리가 준비했던 경기를 잘 보여줬다. 우린 승리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지난달 28일 가나와의 2차전 종료 후 앤서니 테일러 주심에게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았다. FIFA 규칙에 따라 퇴장당한 감독은 벤치에 앉을 수도 선수단과 접촉할 수도 없다. 때문에 벤투 감독은 이날 무전 통신기기 등 어떠한 방법으로도 벤치와 소통할 수 없었다. 하프타임에 라커룸에 입장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이날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고 모습을 드러낸 벤투 감독은 VIP석에 앉아 관중과 함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그는 전반 5분 한국이 히카르두 오르타에게 선제골을 내줬을 때나 전반 27분 김영권(울산)이 동점골을 뽑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을 때 무표정한 모습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최대한 동요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 46분 황희찬(울버햄프턴)이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리자 흥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리가 확정되자 통로로 달려나와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이런 모습은 MBC를 비롯해 여러 중계방송을 통해 포착됐다. 이를 본 많은 누리꾼은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결국 벤투호가 해냈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한편 한국은 오는 6일 오전 4시 G조 1위와 8강 진출을 다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