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기의 쓰나미 시대, 특단의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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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배 경찰대학 교수

눈을 떠보니 대한민국에 사기의 쓰나미가 몰려와 있다. 휴대폰에는 청첩장과 해외결제를 가장한 미끼 문자와 신종 코인에 투자하면 금방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메일이 넘쳐난다. 거액의 은퇴자금을 사기당하여 절망에 빠진 60대 가장의 피눈물 나는 인터뷰와 로맨스 사기를 당한 20대 여성이 경찰서에서 투신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이어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과 운동선수의 사기 피해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신혼부부, 대학생들이 전세사기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미국의 범죄학자 도널드 크레이시는 ‘압력, 기회, 합리화’라는 세 가지 요인이 갖추어질 때 사기가 발생한다는 ‘부정의 삼각형(fraud triangle)’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반칙을 쓰더라도 빨리 부자만 되면 된다는 ‘압력’과, 통신과 금융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기회’, 그리고 정당한 방법으로 성실히 일해 돈을 버는 사람을 바보처럼 취급하는 사회적 ‘합리화’는 지금의 완벽한 폭풍우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 현상으로 금융 강국 영국은 전체 범죄의 45%, 아시아의 용 싱가포르는 50%가 사기 범죄라고 한다. 이는 초연결사회가 초래한 부작용이다.

그런데 왜 사기에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가? 그 답은 사기는 경제적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우울증 등 트라우마를 초래하고 사회적 자본인 신뢰까지 갉아먹는 심각한 사회적 재난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어리석고 욕심 많다는 비난까지 받는다. 이러한 비난을 멈춰야 한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사기를 당할 수 있다. 악성 앱을 보내어 휴대폰을 좀비폰으로 만들고 딥보이스까지 동원하는 사기꾼들의 교묘한 수법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2006년 시작된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경제적 손해가 현재까지 5조원에 육박하고, 주식 리딩방, 코인, 전세사기 등 피해 규모가 가히 천문학적이다. 이에 따른 피해자의 자살, 가정 파탄 등 사기의 쓰나미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소중한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

민생사기의 척결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검찰과 경찰, 중앙정부와 지자체, 통신과 금융회사 등 민간과 정부를 가리지 말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영국에서는 민간 기업에도 적극적인 사기 방지 책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지난 9월 통과시켰다. 총리까지 나서서 사기 행위 감축을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사기 발생을 매년 10%씩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사기 범죄인 송환 등 국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기 방지 정상회의(fraud summit)를 내년 3월 런던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국회에는 현재 사기방지 기본법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기존 보이스피싱에만 국한돼 있던 범부처 종합대응을 투자사기와 전세사기, 로맨스 스캠 (결혼 등을 약속하고 금전 등을 요구하는 사기 행위)등 특정 악성 사기로 확대하고, 사기 위험에 대해 통신과 금융 매체 등에 선제적 차단을 요청할 수 있는 사기통합신고대응원을 신설·운영하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그리고 유행하는 사기 유형과 수법을 분석해 일기예보처럼 경보를 발령하고, 사기 예방교육을 직장과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비유적으로 미사일을 타고 날아다니는 사기꾼들을 중고차를 타고 좇아가서는 싸워 이길 수 없다.

국회는 사기에 대한 통합적·선제적 대응을 위해 사기방지 기본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당연히 행정부도 그에 맞는 특단의 조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사기의 쓰나미 시대다. 사기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구성원 모두의 지혜와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때다.

서준배 경찰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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