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자고 욕하면 즉각 제지...뉴욕, 학생 인권만큼 책임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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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2.04. 오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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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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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다른 ‘美 학생권리장전’

지난해 미 최대 교육구인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최근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으로 학생·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 문제가 부각되면서 학생의 자유와 권리에만 치중한 한국의 학생인권조례를 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실제 경기도와 서울 등 학생인권조례를 채택한 6개 교육청의 인권조례는 학생의 권리 보호에만 치중해 있다. 반면 경기도가 2010년 김상곤 교육감 시절 국내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 참고했다는 미국 최대 교육구 뉴욕시의 ‘학생권리장전(Student Bill of Rights)’엔 학생들이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책임 및 의무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강조돼 있다. 뉴욕의 권리장전의 양대 축 중 하나인 책임·의무에 대한 조항을 뺀 한국판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때부터 균형을 갖추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뜻이다.

뉴욕 학생권리장전은 1947년 전미학생연합에서 토론과 투표, 교육학자·교사·법학자 등 전문가들과 협의해 만든 학생권리장전을 토대로 수립됐다. 이름은 미 독립혁명 직후 제정된 헌법 중 국민의 권리를 명시한 수정헌법 1~10조를 권리장전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내용이 교내에서 표현·언론·사상·집회의 자유와 평등 등 미성년 학생의 기본 인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수정헌법과 비슷하다.

그래픽=이철원

지난 2021년 뉴욕 브루클린의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뉴욕 학생권리장전은 부제가 ‘K-12(유·초·중·고) 학생 권리와 책임 장전’이다. 미 헌법과 마찬가지로, 인권 보호와 동시에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을 동시에 언급했다. 첫 줄부터 “뉴욕시 공립학교는 학생·부모·교직원 간 상호 존중의 정신을 고양한다”며 “다원화된 사회의 생산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이 장전의 목표”라고 돼 있다. 1절은 ‘무료 공교육을 받을 권리’, 2절은 ‘표현의 자유’, 3절은 ‘적정한 절차에 대한 권리’, 4절 ‘18세 이상 학생의 추가 권리’이며, 마지막 5절이 ‘학생의 책임’이다. 5절 도입 부분엔 “각 학생의 책임 있는 행동만이 이 권리장전에 명기된 권리의 전제”라며 “이러한 책임을 어길 경우 학교별 훈육 규정에 따른 지도 조치가 이뤄진다”고 적혀 있다. “책임에 기반한 권리 행사만이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더 큰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한다”고 명시해, 장전에 언급된 권리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지난해 뉴욕 맨해튼 '헌터 사이언스 하이스쿨'의 쉬는 시간 모습. /월스트리트저널

책임을 구체화한 5절엔 총 24개 조항이 나온다. 교사·교직원을 포함한 학교 내 다른 모든 이들의 존엄과 평등권을 존중하고, 예의 바르며 진실되고 협조적인 태도로 급우와 교사를 대한다는 내용 등이 표현돼 있다. 학교에 정기적으로 제 시간에 출석하기, 교실이나 학교를 드나들 때 규정 지키기,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지 않는 안전한 환경 만들기 등의 내용도 담겼다. ‘갈등을 해결할 때는 위협적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기’, ‘사상은 자유이나 외설적·모욕적 표현은 삼가기’,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교내 다른 구성원과 이해의 폭을 넓힐 것‘ 등 학교 구성원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여러 차례 강조돼 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엔 별도의 ‘훈육 규정’에 따른 처벌을 받는다.

‘권리’를 주로 다룬 1~4절에도 책임과 의무 규정을 계속 병기하고 있다. 예컨대 3절 ‘적정한 절차에 대한 권리’는 주 내용이 “어떤 행동이 적절하고 어떤 행동은 징계를 받는지 정확히 안내받을 권리”에 대한 것으로, 규칙을 어기면 후과가 따른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한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빌딩에서 열린 교육부-교사노동조합연맹 교사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과 참석자들이 서이초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서울과 경기, 광주, 전북, 충남, 제주 등 6개 시도 교육청이 채택 중인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하나같이 학생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 항목만 있을 뿐,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나 타인의 권리 존중에 대한 항목은 일절 없다. 서울 조례를 보면 약 30개 항에 걸쳐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교육에 관한 권리’ ‘사생활 비밀과 자유 및 정보의 권리’ ‘양심·종교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 등 자유와 권리만 빼곡히 나열돼 있다.

한국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된 두발 및 복장의 자유를 뉴욕시도 보장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붙어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4절 12조 ‘개성을 실현할 권리’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 의사에 반해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선 안 된다”는 두 개 조항으로 끝이다. 뉴욕 학생권리장전(2절 8조)엔 “학생은 뉴욕 교육청의 교복·복장 규정 범위와 종교적 표현을 위해 자신의 복장을 결정할 수 있으나, 이런 복장이 위험하거나 학습·지도 과정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된다”고 적혀 있다.

지난 2월 20일 서울 중구 시의회 앞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 혹은 개정 움직임에 반발해 시위하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지키기 대책위원회' /뉴시스

전북에서 ‘화장실 가려면 손을 든 뒤 가라’고 지시했다는 이유로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한 사건이 올해 초 있었다. 그러나 뉴욕 학생권리장전을 해석한 일선 학교 지침과 판례에선, 학생이 화장실을 평균보다 자주 가야 하는 의학적 이유를 입증하지 않는 한 교사는 지정한 시간 외에 학생이 마음대로 화장실을 오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교내 휴대폰 카메라와 소셜미디어 사용, 엎드려 자는 행위 역시 서울 등에선 학생인권조례상 ‘사생활의 자유’ ‘개인정보 보호 권리’ ‘휴식권’ 조항 때문에 교사가 손을 댈 수 없다. 그러나 뉴욕 학교에서 이런 행위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즉시 제지할 수 있으며, 불응 시 교사나 교장이 교실 밖으로 쫓아내거나 부모 상담, 반성문 작성, 정학 처분 등 단계별 훈육·지도를 규정에 따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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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미국과 한국의 여러가지 문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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