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받아내라” 민원인 고소에 잠못드는 근로감독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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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21. 오전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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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받아준다고 화풀이성 소송-항의
고소-고발 97% 각하-무혐의 처분
내부선 보호 대신 “왜 문제 키웠냐”
피소되면 징계 처분… 극단 선택도
“아직도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간신히 잠이 들면 꿈에서 민원인이 저를 향해 ‘내 돈 받아내라’며 고성을 지르는 악몽을 꾸고요.”

근로감독관 A 씨는 20일 “지난해 수당 관련 업무를 처리하다 민원인으로부터 직무유기 혐의로 형사 고소를 당했다. 각하 처분을 받아 억울함은 풀렸지만 트라우마와 불면증을 얻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민원인이 억지를 부리는데도 ‘일 커지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상사의 태도에서 다시 한 번 상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최근 기업의 임금 체납이나 수당 지급 등 노동법 위반 사안을 다루는 ‘근로감독관(특별사법경찰관)’이 민원인들의 화풀이성 소송과 항의에 시달리다 ‘마음의 병’을 얻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감독관은 악성 민원인의 고소로 인한 심적 부담을 호소하며 지난달 ‘근로자의 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 고소·고발 시달리는 근로감독관들
전국에 3000여 명 있는 감독관들은 지방고용노동청 소속으로 기업들에는 ‘노동 경찰’로 불리는 경계의 대상이다. 하지만 민원인들로부터는 돈을 대신 받아 주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장과 돈이 걸린 문제다 보니 요청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고소·고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용부가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 4월까지 감독관이 민원인에게 고소·고발당한 사건은 총 529건에 달했다. 이 중 292건(55.2%)이 각하됐고 219건(41.4%)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민원인이 제기한 고소·고발의 97%가 각하되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억지 고소·고발이 많지만 조직 내부에선 보호해 주기는커녕 “왜 문제를 키웠느냐”는 시선이 돌아오기 일쑤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업무를 처리하다 민원인으로부터 고소당한 천안지청 소속 새내기 감독관은 고소당한 후 상부로부터 ‘주의 촉구 처분’까지 받자 지난달 1일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 감독관은 “최근 민원인의 ‘네가 뭔데 내 돈을 떼먹으려 하느냐’는 막무가내 항의를 받고 상사에게 ‘너무 힘들다’고 했더니 ‘원래 다 그렇다. 멘털(정신력)을 키워 보라’는 말이 돌아왔다”며 “근로자로서 보호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근로 환경 개선을 담당하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 중대재해법 시행 후 업무 폭증
특히 최근 중대재해법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으로 감독관들의 업무가 폭증한 상황에서 민원인의 도 넘는 행동에 감독관들 사이에선 “그만두고 싶다”는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악성 민원으로부터 감독관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공무원 책임보험을 통해 회당 3000만 원씩 연 3회까지 소송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지만 2020년 신설된 후 현재까지 이용 건수는 8건에 불과하다. 수도권에서 일하는 한 감독관은 “문제가 생기면 조직 차원에서 대응하는 대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결론도 나기 전에 징계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감독관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부 측은 “민원 대응 과정을 개선하고,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거나 간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지금은 감독관이 민원을 임의로 종결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반복적 악성 민원에 대해선 내부 논의를 통해 종결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감독관에게 특화된 심리건강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임금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 보니 도 넘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감독관이 많다”며 “맞춤형 심리건강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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