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슴 출현’ 순천 봉화산 가보니... 市 “일본 나라현 모델 사슴 테마파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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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02.24. 오전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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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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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농장 탈출한 사슴 4~5마리가 번식해 60여 마리까지 늘어

“사슴을 봤으니 오늘도 행운이 있겠네요”

지난 21일 오후 5시 순천 봉화산. 산에 오른 지 15여분 만에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풀을 뜯는 암컷 꽃사슴 5마리를 본 시민들이 이렇게 말했다. 수컷과 달리 뿔이 없는 암컷 사슴은 커다랗고 선한 눈망울을 갖고 있었다. 둘레길을 찾은 다른 시민들도 사슴과의 조우에 익숙한지 “오늘도 이쁜 사슴이 있다”며 휴대전화에 사진 몇 장을 담고는 산행을 이어갔다.

본지 기자가 사슴 약 10m 앞까지 접근했지만 사슴은 멀뚱히 쳐다만 볼 뿐 도망가거나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사슴의 배와 엉덩이 쪽에는 흰색 점박이 무늬가 있었고 크기는 1.5m에 달했다. 뿔이 달려있었다면 자칫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봉화산 일대에 서식하는 꽃사슴 무리가 최근 겨울철 부족한 먹이를 찾아 산 북쪽 맞은 편 아래에 있는 아파트 단지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이처럼 ‘생태 수도’ 순천에서는 주 서식지인 봉화산을 비롯해 아파트 단지와 공원 등 시내 곳곳에서도 사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20년 전쯤 폐업한 한 농장에서 탈출한 사슴 4~5마리가 번식해 지금은 60여 마리까지 개체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순천시 관계자는 “일본의 나라현(奈良県)처럼 사슴 테마파크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7월 순천 조곡동 장대공원에 출몰한 사슴 무리. /독자 제공

봉화산 꽃사슴의 최초 근원지로 추정되는 생목동 사슴 농장의 모습. /구동완 기자

기자가 봉화산에 오르기 위해 찾은 조곡동 죽도봉 공원 둘레길 진입로에는 ‘봉화산 둘레길과 도심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꽃사슴’이라고 쓰인 대형 안내 표지판이 시민들을 반기고 있었다. 순천 조곡동·용당동·서면·조례동·생목동에 걸쳐 있는 507만m² 규모의 봉화산(해발 355.9m)에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어 마음만 먹으면 사슴을 만날 수 있다. 이날 둘레길에서 만난 시민들도 두 번 중 한 번꼴로 꽃사슴을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용당동에서 15년을 살았다는 최여주(67)씨는 “사슴이 4~5마리씩 어울려 다니곤 하는데 예전에는 사람을 보면 도망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순해서 공격성이 없고, 주변에서 흔히 보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존재”라고 했다. 주민 최모(53)씨도 “산에만 올라가면 사슴을 늘 볼 수 있어 함께 지내는 반려동물처럼 느껴진다”며 “우리 순천과 봉화산의 마스코트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는 20년 전쯤 한 시민이 폐업을 준비하던 생목동의 작은 사슴 농장에서 사슴 4~5마리가 봉화산으로 탈출했고, 서로 번식한 끝에 개체수가 60여 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시는 지난해 봉화산에 열화상 카메라가 탑재된 드론을 띄워 개체수를 처음 파악했다. 개체수가 크게 늘면서 날씨가 따뜻한 봄과 여름에는 사슴 열댓 마리가 둘레길에 모여 풀을 뜯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특히 짝짓기 시즌인 11~1월 사이에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무리지어 움직인다고 한다.

지난 5일 전남 순천 용당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포착된 사슴 무리. /뉴스1

겨울철이 되면 부족한 먹이를 찾기 위해 사슴이 산 아래로 내려오기도 한다. 사슴이 출몰했던 아파트에 거주하는 양상태(75)씨는 “예전에는 사슴들이 용당교 아래 갈대밭에서 월동을 했는데 데크길이 생긴 뒤로는 갈 곳이 없어졌다”며 “1200세대가 넘는 이 아파트가 신축되기 전에는 산이었다. 그래서 사슴들이 찾아온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도 “봉화산에 서식하는 사슴 4마리가 먹이를 찾아 아파트 정문 앞 차도를 건너와 5~6분 정도 머물다 갔다”며 “마침 당시 아파트 뒤쪽에 있는 쪽문이 열려있었는데 거기로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혹여나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까 우려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용당동의 한 아파트 주민인 오경미(60)씨는 “사슴들이 6~7마리씩 무리지어 아파트 단지 인근까지 내려오는 일은 흔하다”며 “2~3년 전부터 개체수와 출몰 빈도가 부쩍 늘어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사슴 가족들이 먹이를 찾아 귀여운 새끼를 데리고 내려와 신기하지만, 텃밭을 가꾸는 분들이 농작물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사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텃밭 근처에 1.5~2m 높이의 녹색 그물을 설치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철조망이 2.5m 높이로 세워진 곳도 있었다.

사슴 진입을 막기 위해 텃밭에 설치된 철조망. /구동완 기자

시는 사슴을 함부로 처분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홍균 동물자원과장은 본지 통화에서 “사슴은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가축으로 분류돼 행정기관에서 임의로 포획하거나 살상할 수 없다”며 “최근 전라남도를 통해서 환경부에 사슴을 법정관리 대상 동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시에서는 일본의 나라현처럼 사슴 테마파크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나라현은 사슴으로 유명한 나라 공원이 있는 관광 명소다. 다만 아직 주민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고, 봉화산의 70% 이상이 사유지로 지정돼 있어 공유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슴을 방사할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시는 일단 사슴을 법정관리 대상으로 지정한 뒤 먹이 주기 활동을 병행하며 사슴이 시내로 내려오는 것을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사슴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발정기가 되면 사슴의 공격성이 올라가 시민들에게 자칫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사슴을 제도적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 소장은 “사슴이 농장에서 탈출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봉화산은 사슴이 장기적으로 살만한 곳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동혁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사슴은 번식기에 호르몬의 영향으로 사나워질 수 있어 시민들에게 위해가 될 수 있다”면서도 “지자체에서 개체수를 잘 관리한다면 테마파크 조성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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