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5)가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옥중 서면 인터뷰를 통해 감시와 통제로 숨막힌 일과를 공개했다.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한 것은 ‘강제 TV 시청’으로, 나발니는 “심리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지난 2월 집행유예 조건 위반으로 수감된 나발니가 교도소에서 54페이지에 달하는 자필 편지를 NYT에 보내왔다. 그간 변호사를 통해 간간이 근황을 전했지만, 언론과 인터뷰에 나선 건 수감 이후 처음이다.
나발니가 수감된 곳은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파크로프시의 제2 교도소(IK-2)다. ‘러시아 최악의 4대 교도소’ 중 하나로 불리는 이곳은 “수감자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곳”으로 악명 높다.
하지만 겉보기에 옥중 생활은 평온한 편이다. 나발니 역시 “최대한 수감자가 원하는 대로 생활하게 한다”고 했다. 과거처럼 공사장이나 석탄 채굴 현장에 투입돼 육체노동을 하거나, 간수의 매질과 신체 고문을 견디는 일도 사라졌다. 나발니는 “2010년 시행된 ‘형법 개혁’ 덕분”이라고 했다.
나발니는 가장 견디기 힘든 고문으로 ‘스크린 시간’을 꼽았다. 하루 3~5번, 총 8시간 이상씩 TV를 봐야 하는데 오로지 소련군의 영웅담을 다룬 이른바 ‘국뽕’ 선전물만 틀어댄다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다른 활동도 일체 금지되고, 조금이라도 졸면 곧장 “일어나”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감시와 통제도 여전하다. 곳곳에 감시카메라는 물론이고, 수감자 사이에 스파이까지 심어뒀다. 주로 마피아 갱단 두목 출신 수감자들이 스파이를 맡는다. 나발니는 “수감자 3분의 1 정도가 스파이로 추정된다”며 “문신을 한 근육질 남자가 미소를 띈 채 흉기를 들고 방문 앞에서 서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수면 고문’ 역시 견디기 힘들다고 전했다. 간수들은 탈옥을 방지한단 이유로 밤에 1시간 간격으로 수감자들을 깨운다. 지난 3월 나발니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수면 부족의 고통을 호소한 바 있다. 당시 외신은 그가 신경학적 반응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수면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됐다. 나발니는 “수면 고문은 흔적 없이 수감자를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전했다.
나발니는 이런 고통 속에도 수감자들과의 동료애를 강조했다. 그는 함께 수감된 한 마피아 보스의 파스타 솜씨가 일품이라고 자랑하며 “마피아 세계를 그린 영화 ‘좋은 친구들(Goodfellas·1990)’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겐 멋진 냄비도 불도 없지만,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간편식 파스타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고 했다.
그는 “푸틴 정권은 곧 있을 지역 및 의회 선거를 우려하고 있다”며 “결국 지역 지도자까지 탄압하는 무리수를 둬 적을 늘리고, 장기적으로 푸틴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재 친(親)크렘린 성향의 중도 우파 정당과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에 대표적인 정치적 인물이 없다는 점도 향후 야당의 존재감을 높일 요인이라고 했다.
나발니는 “푸틴 정권은 역사적 우연”이라며 “조만간 이 실수가 교정될 것이며 러시아는 민주적이고 유럽적인 발전 경로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