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통일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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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9. 오후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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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존재 자체가 딜레마… 국가엔 통일이 축복이지만 통일되는 순간, 부처는 사망 선고
헌법 정신에 충실하려면 이북5도위와 통합해 행안부 독립 외청으로 둬야
“진보 좌파 경도됐다” 비난 말고 동기와 의욕 제공해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의 모습. /뉴스1

통일부는 지금 실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장차관과 국가안보실 통일비서관이 동시에 교체되면서 전면적 조직 개편의 진통을 겪고 있다.

통일부를 위기로 몰아넣은 직접적 계기는 지난 4월 온라인으로 공개된 2023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에 포함된 ‘정확성은 책임 못 진다’는 면책 문구(disclaimer)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대하는 통일부 관료들의 무책임한 자세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지만 이는 조직 문화와 매너리즘이 빚은 실무진의 실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통일부가 그간 쌓아온 업보가 임계치에 도달하는 티핑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통일부가 저지른 가장 부끄러운 과오는 3년 전 김여정의 ‘하명’에 따라 ‘대북 전단 금지법(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제정에 앞장선 일이다. 2020년 6월 4일 김여정이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이를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라고 협박하자 통일부는 즉각 전단 살포를 막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화답했다. 북한 주민의 알 권리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근본 가치뿐 아니라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살행위를 김여정의 협박을 받고 4시간도 안 되어 결심한 것이다.

물론 정무직 장관이 청와대의 뜻을 받들어 정치적으로 결정한 것이겠지만 관료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통일부의 장래를 걱정하는 간부라면 최소한 전단금지법의 문제점을 제기하여 장관과 청와대의 경솔한 결정을 막으려는 시도라도 했어야 한다. 전단 살포의 효과나 부작용에 대한 논란을 떠나 북한 주민에게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불법화하는 것이 북한 주민의 자각과 북한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가로막는 반통일 악법임을 통일부 간부들이 몰랐다면 통일 정책을 다룰 자질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도 이를 옹호했다면 통일부가 어떤 운명을 만나더라도 항변할 자격을 포기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폭정의 공범자가 되는 악역은 종북 정치인들의 몫으로 남겨둘 일이지 통일부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통일부의 태생적 문제는 국가의 이익과 조직의 이익이 충돌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는 데 있다. 통일이 국가적으로는 축복이지만 통일부에는 사망 선고다. 통일부 관료들이 의욕적인 통일 정책보다 북한 체제의 연명과 강화에 도움이 될 교류 협력에 더 열의를 보인다고 이들을 탓할 수 없는 이유다.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는 북한에 비핵화를 거부할 체력을 키워주고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정책의 성공에 도움이 되더라도 제재 완화와 경제 협력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 대화를 북한 체제의 긍정적인 변화와 통일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여기고 ‘대화를 위한 대화’에 매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화 자체가 목표가 되면 억압받는 북한 주민 대신 대화 결정권을 가진 북한 정권의 편에 설 수밖에 없고,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북한 지도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의 대북 정책과 자세를 바꾸게 된다. 다만 통일부가 대북 굴종을 선택을 할 때도 이를 국가의 이익이나 평화를 위한 선택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할 그럴듯한 논리를 개발한다.

그렇다면 통일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소하고 헌법 정신에 충실한 해법은 행정안전부 산하 이북5도위원회와 통합하여 행안부의 독립 외청으로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북한은 법적으로는 반국가 단체이지만 사실상 무허가 지방정부이므로 지방정부를 관할하는 행안부 산하의 북한 예비 정부(Shadow Government)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맞는다. 북한의 현행 행정조직에 따라 시장·군수까지 미리 임명하여 소관 지역의 세부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임시 행정 체제를 설계하는 임무를 부여하면 통일의 수혜 부처로 바뀐다. 다만, 이러한 발상은 여당이 입법권을 장악하기 전에는 실현 가능성이 없으므로 당장의 처방은 통일부 조직을 정비하고 체질을 바꾸는 것뿐이다.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내리기 전에는 대북 제재가 풀릴 수 없으므로 교류 협력과 개성공단 재개는 물론 의미 있는 대화도 당분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장기간 할 일이 없는 조직은 통폐합하되 업무의 우선순위에 따라 필요한 조직은 신설할 필요가 있다.

다만, 통일부가 진보 좌파 정부에 적극 ‘부역’했다는 이유로 이념적으로 진보 좌파에 경도된 집단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통일에 인생을 바칠 큰 뜻을 품고 통일부에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 이기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혼 없는 관료 집단이 되었을 뿐이다. 유휴 인력을 대폭 감축하기보다는 의욕적으로 일할 동기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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