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론'에 멈춰버린 취약계층 지원사업

입력
수정2022.08.11. 오후 3:55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과 여당 의원들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 photo 뉴시스


"여성가족부(여가부)는 약 680여개의 시민사회여성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성과는 별로 없고 예산만 축내는 부처다." 지난 6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지난 1월 대선 기간에는 장예찬 당시 국민의힘 선대위 청년본부장이 "각종 여성, 시민단체에 여가부가 무차별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 많다"며 여가부의 시민단체 공모사업에 비판을 가했다.

'여가부 예산은 여성·시민단체 주머니로 흘러간다'는 이들의 비판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리다. 사실 여가부가 시민단체 대상으로 벌이는 공모사업은 '현장 밀착형'인 경우가 많다. 부처 정책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직접적 도움을 주는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한부모가족복지단체 지원사업'이다. 공모에 선정된 단체는 한부모가정과 직접 소통하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저소득층 가정의 부모 직업교육, 부모자녀 유대관계 강화를 위한 사업 진행, 부자가정 자녀의 상담 및 교육 등이다. 이처럼 취약계층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밀착형 활동을 도맡아 한다.

이러한 시민단체 공모사업은 지난해 기준 총 14억~15억원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같은해 여가부 예산이 1조2000여억원인 것에 비하면 1%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책의 사각지대, 미혼모나 청소년 부모 등 취약계층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밀착형 지원사업이 많아 필요성을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다시금 여가부 폐지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이러한 시민단체의 취약계층 지원사업도 사실상 멈췄다. 실제로 윤 대통령이 지난 3월 부처 폐지를 내걸고 당선된 이후 여가부에서 시작한 민간단체 공모사업은 규모가 축소되거나 진행이 더뎌진 것으로 나타났다. 윤 정부는 여가부의 핵심적 기능이나 중요한 사업을 다른 부처로 이관하겠다고 했지만, 출범 3개월이 넘도록 구체적인 로드맵 없이 '폐지론'만 나오는 상황이라 부처가 이도저도 못 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부처 조직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부재 등에 대한 대안마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 끝나자 반 토막 난 지원금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유일하게 새로 시작된 민간단체 공모사업은 현재 사업자 선정이 무기한으로 미뤄졌다. '국제네트워크 활성화 지원사업'은 원래대로라면 지난 6월 신청자를 받기 시작해 7월 중 선정 결과가 나와야 했다. 그러나 별다른 공지 글이나 안내 없이 선정이 유예됐다. 여가부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저희가 다른 사업도 같이 검토를 하다 보니 좀 늦어졌다"며 "8월 중으로는 발표하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대선을 전후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진행 중 지원금이 반 토막 나는 일도 있었다. 애초 공고에 명시됐던 금액의 절반이 별다른 이유 없이 깎인 것이다. 사업자를 맡은 단체의 한 관계자는 "계획했던 것처럼 그대로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였다"며 "그것도 사업을 진행하는 도중에 절반이나 깎이니 당황스러웠지만, 지원받는 것에 감사하고 규모에 맞게 행사를 조정해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민간단체나 법인이 주도하는 대외적 사업이 아닌, 여가부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진행하던 사업이 여당 인사의 말 한마디에 물거품이 된 일도 있었다. 지난 7월 5일 여가부는 3년간 이어져 온 '버터나이프 크루'(2022년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4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해당 사업에 대한 비판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바로 다음날이다. 권 대표는 페이스북에 "(지원사업이) 벌써 4기를 맞고 있는데 남녀 갈등 개선에 무슨 효과가 있었느냐. 오히려 명분을 내걸고 지원금 받아 가는 일부 시민단체와 유사한 점은 없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라며 "김현숙 여가부 장관과 통화해 이와 같은 비판을 전달했다"고 적은 바 있다.

이 때문에 여가부 소관의 비영리법인 및 민간단체 사이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폐지된다는 말은 무성한데 부처의 어떤 기능을 다른 어떤 부처로 이관한다든가, 언제까지 어떤 기능을 이관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나 로드맵이 전혀 없는 상황이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여가부 소관의 한 단체협의회 관계자는 여러 회원단체가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좀 더 꼼꼼한 정책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우리는 다른 부처 어디로 가야 한다, 이런 말들이 지금 단체들 사이에서는 많이 나온다. 단체들끼리 아직 의견 수렴이 안 된 곳도 많다. 정부에서 로드맵이 나오면 단체에서 입장을 정리해서 성명서를 낸다든가 어떻게 조치를 취할 텐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니…."

로드맵 없이 밀어붙이는 '여가부 폐지'

사실 여가부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 시절 대표적인 공약이었지만, 집권하는 지난 3개월간 일관성 있게 추진된 것도 아니었다. 지난 5월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는 해당 내용이 빠져 '공약 파기'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에서는 기조대로 진행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5월 김현숙 여가부 당시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여가부 폐지에는 동의하지만, 권성동 원내대표가 발의한 여가부 폐지법에 대해서는 "찬반을 밝히기 어렵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다 윤 대통령은 다시금 여가부 폐지론을 이슈화했다. 지난 7월 25일 윤 대통령은 김 장관의 업무보고를 받으며 "조속히 부처 폐지 로드맵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는 폐지 절차의 컨트럴타워를 맡을 김 장관과의 사전 조율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장관은 업무보고 이후 "여가부 개편에 시간을 좀 더 가지려 했는데 대통령께서 조속히 해달라고 한 것으로 이해했다"면서 "저는 타임라인을 특별히 정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빨리하라고 했으니 더 빨리해야겠다"고 말했다.

윤 정부의 성평등 및 여성 정책에 '철학'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유미숙 대외협력국장은 부처 폐지에 대한 대안이나 추진 목표가 없어 폐지를 외치는 명분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다른 부처로 기능 이관을 한다고 해도, 어차피 새로운 사람이 똑같은 일을 맡지 않겠나. 괜히 새로운 업무를 익히는 데 시간만 더 들고. 그런 불필요한 행정력을 왜 낭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현장에서 드는 생각이다. 차라리 지금 여기서 일을 못하는 부분이 뭔지 보완하고 조금 바꾸고 하면 모를까."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윤 정부가 이른바 '이대남' 등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낸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여가부는 하는 일이 없다'고 퍼진 반감과는 달리, 실제로 담당하는 분야가 넓은데 이를 어떻게 쪼개고 이관할지도 폐지에 앞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탈북민 청소년과 여성 관련 활동을 하는 한 시민단체 대표는 "여가부 진행 프로젝트를 보면 '여성' 관련된 폭넓은 지원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의) 돌봄 부재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학교 밖 청소년 프로젝트라든가, 북한 여성의 성인지 감수성을 키워주는 탈북민 여성 교육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