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빛나는 유산 남긴 故이건희 회장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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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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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K리그 수원삼성 블루윙즈의 창단은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결단이었다. 199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선출된 정몽준 회장이 이 선대회장을 삼고초려했다. 처음엔 주저했던 이 선대회장은 2002년 월드컵 유치를 고려해 창단을 결정했다고 한다.

월드컵 유치 경쟁국이었던 일본은 1993년 10개 팀으로 J리그를 창설했고, 1996년엔 16개 팀으로 늘었다. 반면 1995년 리그에 참여한 한국 프로축구 팀은 8개 팀이었다. 월드컵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 자국 리그 활성화는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할 거면 제대로 하라."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일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이건희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이 선대회장은 우선 독일에서 체육교사를 하던 윤성규 씨를 단장으로 영입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프로축구 시스템을 갖춘 곳은 독일 분데스리가였다. 팀 운영 시스템을 벤치마킹할 최적의 인물이었다. 삼성스포츠단을 총괄하던 박성인 고문도 합류했다.

연고지를 수원으로 정하고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선수도 영입했다. 어린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 키워 다른 구단에 매각하는, 당시로서는 전례 없던 비즈니스 모델도 수립했다. 수원삼성 블루윙즈는 2년여의 착실한 준비 과정을 거쳐 1996년 K리그 제9구단으로 리그에 참여했다. 수원삼성은 리그 참가 첫해 준우승, 세 번째 시즌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아시아 챔피언에도 오르며 명문 구단으로 성장했다.

수원삼성의 창단은 한국 축구 문화의 역사가 바뀌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단장의 지원하에 당시 유럽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서포터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수원삼성 서포터들은 1997년 시작된 붉은악마의 주축이었다. '짝짝 짝 짝짝 대~한민국'이라는, 첫음절을 길게 끈 응원 구호는 수원삼성 서포터들이 원조였다. 비록 지금은 K리그1 최하위에 있지만, 가장 열정적인 서포터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경기 용인시 소재 삼성 안내견학교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안내견과의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며 눈물바다가 연출됐다. 무엇보다 주목받았던 것은 무려 30년 전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을 밀어붙였던 이 선대회장의 의지였다.

이 선대회장이 고인이 된 지 다음달로 3년이 된다. 지금도 그가 남긴 유산은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선대회장이 쓴 미발간 에세이에는 "환하게 열린 우리 사회의 미래가 모두에게 현실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때까지"라는 대목이 남아 있다. 지금 우리는 미래의 기정사실을 만들기 위해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최승진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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