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을 군산복합체로 개조하다 [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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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13. 오전 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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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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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_안보의 시대

시진핑 주석은 2022년 3연임으로 장기 집권에 들어간 뒤,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을 ‘군산복합체’로 바꿔가려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과학기술 분야의 자립자강, 독자적 첨단기술 혁신을 핵심 목표로 추진 중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신형 거국체제’인데, 군수산업은 이 전략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는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지난 10일 열린 정치협상회의(정협) 회의에서 연단에 설치된 스크린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중국이 ‘경제의 시대’에서 ‘안보의 시대’로 완전히 전환했다. 정치·경제·사회 곳곳을 ‘안보’ 중심으로 개조해나가고 있다.

개정된 반간첩법(신방첩법)이 지난해 7월 시행되면서 간첩 활동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 외국 컨설팅 기업들의 시장 조사나 학자들의 데이터 제공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비슷한 국가안전부가 에스엔에스(SNS)에 공식 계정을 개설해 ‘주변의 간첩에 유의하고 신고하라’는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마오쩌둥 시대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민병 조직 ‘인민무장부’가 여러 기업에 새로 설치될 정도다. 지난 5일 리창 중국 총리가 전인대 업무 보고에서 ‘안보’를 29번, ‘위험’을 24번이나 언급한 것은 이런 중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시진핑 시대 중국이 이토록 안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원을 찾으려면 201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두자릿수 성장 시대를 마감하면서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관료와 기업가들이 결탁한 ‘권력 귀족’의 부패는 더 심해졌고 여론의 원성이 들끓었다. 노동자 파업과 노동, 환경, 부패 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는 공식 발표만으로도 매일 300건이 넘었다. 대처 방안을 두고 당내 노선·권력투쟁도 심해졌다. 당의 합의로 정해진 ‘시진핑 집권’에 도전한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쿠데타를 시도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2008년과 2009년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중국 통치에 저항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중국 밖에서는 2011~2012 ‘아랍의 봄’ 시위가 중동 국가들을 휩쓸면서 독재정권이 하나둘 무너졌다. 특히 2011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했고,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군중들의 구타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런 복합 위기 속에서 시진핑이 집권한 2012년 말, 중국공산당은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었다. 특히 서양이 비정부기구나 종교, 민간기업 등을 이용해 서구적 가치를 확산시켜 공산당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화평연변’을 시도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시진핑은 집권 직후부터 ‘안보’를 명분으로 중국의 모든 영역에 대한 공산당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이 위기에 대응해왔다. 2014년엔 ‘총체적 국가안보관’을 제시해, 정치, 군사 안보, 경제, 금융, 문화, 과학기술, 사이버, 식량, 생태, 자원 등을 모두 안보 문제로 규정했다. 반간첩법도 이 무렵 제정했다. 중국의 한 전문가는 “시진핑의 최우선 목표는 공산당 영구집권”이라며, “그는 자신은 권력욕이나 사심이 없지만 공산당이 영구집권하도록 할 수 있는 이는 자기뿐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믿지 않고, 특히 민간기업가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고 말한다.

미국과의 갈등이 깊어지던 2018년, 시진핑의 안보 집착은 더 강해졌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미국, 소련 등과의 전쟁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정세 판단에 근거를 뒀다. 안보 위험이 낮아졌기에 중국은 경제발전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시진핑 주석은 이런 정세 판단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딩쉐량 홍콩과기대 명예교수는 지난 1월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시진핑 신시대는 중국의 주선율이 더는 평화발전이 아니고, 마오쩌둥 시기처럼 전쟁을 준비하는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지금 당장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보 대비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 시진핑 주석은 대만 등을 둘러싼 미국과의 전쟁이나 대중국 경제·금융 봉쇄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에너지·식량 안보를 강화하면서 유사시 언제든 인력과 물자를 동원할 수 있는 총동원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안전부가 SNS 웨이보 공식계정에 올린 간첩 잡는 수사대 홍보 만화. 웨이보 갈무리

특히 시진핑 주석은 2022년 3연임으로 장기 집권에 들어간 뒤,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을 ‘군산복합체’로 바꿔가려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80년대 자오쯔양 총서기의 정치개혁 자문 출신으로 중국 정치에 통찰력을 지닌 우궈광 미국 스탠퍼드대학 중국경제제도센터 선임연구원은 2022년 10월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를 통해 중국 지도부의 중심에 군수산업과 연관된 인물들이 대거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중국공산당 권력 서열 24위까지인 중앙정치국 위원 중 13명이 군수 분야 관련 인물이다. 장궈칭, 류궈중 부총리는 무기산업, 리간제 당 중앙조직부장은 원자력, 마싱루이 신장위구르자치구 서기는 항공우주산업, 위안자쥔 충칭 당서기는 로켓과학자 출신이다. 우궈광은 이달 초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에 쓴 글에서 군수산업 출신 엘리트들이 약진하면서, 중국의 경제 전략과 정치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시진핑 주석은 과학기술 분야의 자립자강(自立自强), 독자적 첨단기술 혁신을 핵심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신형 거국체제’인데, 군수산업은 국가 전체의 관련 자원을 동원해 중대한 과학기술 혁신을 달성해 내는 이 전략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는다. 마오쩌둥 시대에 중국은 경제·기술적으로 낙후되었지만 거국체제 덕에 핵폭탄과 위성을 독자 개발할 수 있었다. 시진핑은 지금 이 방식을 업그레이드해 미국의 견제를 뚫고 기술적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함께 군사와 민간 부문의 기술과 자원을 통합해 경제와 군사력을 동시에 발전시키겠다는 ‘군-민 융합' 전략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민간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을 통해 핵심 기술을 획득한 뒤 군사 기술 개발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최고지도부에 배치된 군사 관련 분야 최고 엘리트들이 군사-민간의 자원을 총동원해, 미국의 제재를 뚫고 독자적인 첨단기술 혁신을 실현할 총력전을 지휘하는 것이다. 중국 전체로는 공산당이 통제하는 국가주의 경제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국가가 관리하는 군수 산업 부문에서 육성된 엘리트들은 민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국가 부문을 더욱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시진핑 주석은 서방에 대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면서 동시에 외부의 기술·투자는 받아들여 국력 성장을 가속하려는 모순적 목표를 이루려 한다. 현재 상황만 보면 시진핑의 전략이 뜻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021년 미국의 75.3%(17조7759억 달러 대 23조5940억 달러)까지 추격했으나 2022년에는 70.3%(18조1000억달러 대 25조7440억달러)로 되레 격차가 벌어졌다.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해 외국인들의 대중국 직접투자는 전년 대비 80% 감소했다.

중국 정부가 돈을 쏟아붓다시피 하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부패 문제로 샤오야칭 산업정보기술부장(장관)이 2022년 7월 해임되기도 했다. 군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핵과 미사일을 다루는 핵심부대인 로켓군의 대표적 인물인 리상푸 전 국방부장 등이 지난해 숙청 대상이 됐는데, 이들은 군수 장비 조달을 수십년 동안 담당했다. 과도하게 투입되는 자원을 유용하는 부정부패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시진핑 주석의 안보 집착에 따른 비용은 노동자·청년, 중산층과 중소 민영기업가들이 치르고 있다. 사회는 점점 더 경직되고 상심과 분노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상하이의 한 대학교수는 “정부는 청년실업률이 20%라고 하지만 내 제자들을 보면 실제로는 50~60%쯤이다. 이런 상황이 최고지도자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중국의 연구자는 “엘리트들은 개혁개방이 완전히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서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실감하게 되면서 불만이 커졌다”고 말한다.

중국 장쑤성 창저우에 있는 중국 전기차 기업 리오토 공장에서 지난 1월 로봇들이 차체를 용접하고 있다. 창저우/신화 연합뉴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자립자강’을 밀어붙이는 첨단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은 무섭게 강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이미 세계 최강 반열에 올라섰다. 시진핑 주석은 ‘새로운 질적 생산력(新質生産力)’을 내세우면서 반도체와 AI, 수소에너지, 신소재, 신약개발, 바이오, 우주산업, 양자기술의 기술 대약진을 주문하고 있다. 올해도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지난해보다 10% 늘렸다. ‘중국 경제는 끝났다’는 주장은 근거도 없고 섣부르다. ‘안보의 시대’ 중국의 복합적인 현실을 과소평가하는 위험한 실수를 경계해야 한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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