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판사들이 가정폭력 가해자 “상담하라” 해도 못 한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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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28. 오전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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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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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교정치료 예산 전액 삭감 영향
가정법원 ‘상담위탁’ 처분도 잇단 제동
법봉 이미지 | Tingey Injury Law Firm on Unsplash.


여성가족부가 올해 가정폭력 교정 프로그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가정법원의 상담위탁 처분도 덩달아 제동이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예산을 받지 못한 일부 상담기관이 법원의 상담위탁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상담이 어려워지면 가정폭력 예방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경향신문이 27일 입수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행위자에 대한 교정치료 예산 삭감 관련 상황 안내’ 공문을 보면, 행정처는 최근 여가부로부터 ‘2024년도 가정폭력 가해자 교정치료 프로그램 예산이 전액 삭감돼 일부 상담기관이 법원의 상담위탁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행정처는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각급 법원에 상담위탁 처분을 결정하기 전 기관들의 상담 여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가정폭력처벌법상 가정법원은 상담위탁을 포함해 치료위탁, 보호관찰, 접근 제한 등 여러 방식으로 보호처분을 할 수 있다. 이 중 상담위탁 처분은 법원이 가해자의 폭력적인 성질이나 품행을 교정하기 위해 지정된 상담기관에서 일정 기간 상담을 받도록 결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학 교수, 심리상담가 등 전문위원들과 만나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상담위탁은 가정보호 사건에서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8가지 보호처분 중 가장 가벼우면서도 가장 활용도가 높은 처분이다. 현장에서는 폭력재발 방지·피해자와의 관계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담기관들은 그동안 법원이 상담을 위탁하면 여가부에서 상담비용을 지원받았지만 올해부터 지원이 끊기면서 상담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법원의 상담위탁 처분에도 제약이 생긴 것이다. 법원행정처 공문은 전국 상담위탁 기관 중 여가부 예산 삭감의 영향을 받는 곳을 95개소로 파악했다.

삭감 여파는 서울에서 두드러졌다. 올해 2월 현재 서울가정법원 관할 내에 있는 상담기관 11개 중 7개는 상담을 중단했다. 이 가운데 6개 기관은 여가부에서 배정받던 기금의 신규 배정 중단 또는 기금 고갈을 상담 중단의 이유로 들었다.

법원 내부에선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6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는 ‘상담 중단으로 인한 가정법원의 어려움과 대처방안’에 관한 글이 게시됐다. 해당 글을 작성한 법관은 서울가정법원 관할에 있는 일부 기관들이 문을 닫으면서 아직 상담을 진행 중인 기관들에 사건이 몰리고, 상담자들이 장기간 대기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지방법원 판사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는 초기에 상담으로 막는 효과가 있는데, 이 같은 법원의 ‘제동 효과’에 걸림돌이 생긴 셈”이라고 했다.

법원이 갑작스러운 정부의 예산 삭감과 무관하게 상담을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법관들은 상담기관에 비용을 직접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관련 내규를 제정하거나, 여가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는 민간기관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법원행정처는 각급 법원이 민간기관에 상담을 새로 위탁하는 경우 신속히 상담 비용 지급을 위한 예산을 배정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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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national/gender/article/20231031164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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