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꺾이지 않는 물가와 약세를 이어가는 원화가치가 한은의 보폭을 키웠다. 미국이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에 나서며 커진 한·미 금리 역전 폭도 한은의 등을 떠밀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3.0%로 0.5%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1999년 기준금리 도입 이래 처음으로 0.5%포인트 인상을 한 지난 7월에 이은 두 번째 빅스텝 인상이다. 다만 이번 결정에서 주상영, 신성환 금통위원이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소수의견을 냈다.
한은이 0.5%포인트 인상에 나서며 격차를 줄이긴 했지만, 미국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높다. 하지만 한·미 금리 역전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지난달 Fed가 공개한 점도표에 따르면 연말까지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4.25~4.5%포인트까지 뛸 수 있다. 지금보다 최대 1.2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Fed가 11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한은이 이번 달과 다음 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베이비스텝) 올릴 경우 한·미 금리 역전 폭은 최대 1.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었다. 금리 역전 폭이 커질수록 높은 금리를 좇아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환율 상승) 가능성이 커진다.
원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더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 물가 상승 압력도 커질 수 있다. 지난 11일 서울 외환시장에 원화가치는 전거래일보다 22.8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435.2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번에 빅스텝을 밟아 조금이라도 금리 역전 폭을 줄여 놓을 필요가 컸던 셈이다.
물가 상승의 수요자 측 압력을 보여주는 개인서비스 물가는 6.4% 뛰며, 지난 8월(6.1%)보다 오름폭이 더 커졌다. 특히 외식 물가상승률은 9%로 1992년 7월(9%) 이후 3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향후 물가가 정점을 찍더라도 빠르게 내려오길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게다가 물가 상승 압력을 낮췄던 에너지 물가가 다시 들썩일 우려도 있다. 23개국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다음 달부터 일일 원유 생산량을 이번 달보다 200만 배럴 줄이기로 지난 5일 합의하면서다. 배럴당 80달러 선으로 떨어졌던 서부텍사스유(WTI)는 지난 10일 기준 배럴당 91.13달러로 다시 90달러 선을 넘어섰다. 이날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96.19달러에 거래됐다.
한은의 분석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5%포인트만 뛰어도 전체 대출자의 이자는 6조 5000억원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대출자 1인 평균 연간 이자는 32만 7000원 증가한다. 만일 한은이 다음 달에도 빅스텝을 밟아 두 달 만에 기준금리가 1.0%포인트 뛰면 전체 대출자의 이자는 13조원으로 급등하게 된다. 대출자 1인 평균 이자 부담액도 65만 5000원으로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