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뜨겁게… 더 솔직하게… 홀로 선 제이홉에 10만명 ‘보랏빛 응원’

입력
수정2022.08.02. 오전 10:26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 음악평론가 김영대의 팝·콘 - 美 시카고 첫 솔로 무대 가진 BTS ‘제이홉’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제이홉이 인간 정호석의 내면을 담은 첫 솔로 정규 앨범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를 발매한 데 이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미국의 유명 음악 축제인 시카고 ‘롤라팔루자’(LOLLAPALOOZA)에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출연해 20여 곡의 무대를 선보였다. BTS가 그룹 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솔로 활동 첫 공개 무대였다. 이날 공연엔 약 10만5000명이 몰렸고 공연이 펼쳐진 미 일리노이주 시카고 그랜트 공원은 아미밤(BTS 응원봉)의 보라색 불빛으로 넘실거렸다. 제이홉은 “욕심과 치기 어린 애정으로 시작된 이 음반 활동이 마무리되고 있는 거 같다. 많은 스케줄이 사실 두려움의 연속이었다”면서도 “굉장히 뜻깊은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이겨낸 저 자신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잭 인 더 박스’ 발매와 시카고 무대에 맞춰 김영대 음악평론가가 제이홉의 음악 세계를, 제이홉의 발걸음이 BTS를 넘어 어떻게 펼쳐질지 살폈다.

‘희망’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대중의 기대·선입견 갇혔지만

틀 깨고 ‘고민·갈등’ 진솔 고백

첫 앨범 ‘잭 인 더 박스’에 담은

‘뮤지션 정호석’으로서의 선언

“많은 스케줄이 두려움의 연속

이겨낸 저 자신이 자랑스럽다”


평론가의 입장에서 제이홉은 방탄소년단(BTS)이라는 거대한 발자취에 비춰볼 때 아직은 그 전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아티스트다. 그것은 그만큼 아티스트로서 드러내 보일 것이 많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며, 어떤 의미로는 더 광범위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전에 의도한 행보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BTS의 그룹 활동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시점에 공개된 첫 솔로 작업이 바로 제이홉의 새 앨범이라는 점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많은 이가, 심지어 팬들조차도, 제이홉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그의 이름에서 비롯되는 편견 아닌 편견이다. BTS 멤버 중에 삶을 대하는 태도와 캐릭터 그 자체가 이름이 된 케이스는 그가 유일하다. 덕분에 그는 그룹에서 가장 명확한 페르소나를 부여받은 반면 그 페르소나가 만든 상자 안에 부지불식간에 갇혀야만 하는 운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티스트는 늘 대중이 그들에게 갖고 있는 기대감과 선입견을 두 개의 서로 다른 예술적 동력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제이홉에게 품은 기대가 무한한 긍정 에너지에서 비롯되는 무해한 유쾌함과 희망이라면, 그는 그 기대감에 더 충실하게 복무를 할 수도, 그 기대를 깨부수면서 반전의 모멘텀을 모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것이 더 옳거나 나은 것은 아니며 그 협상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긴장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인 과정인 셈이다.

그의 첫 믹스테이프인 ‘홉 월드’(Hope World)가 제이홉이라는 희망의 아이콘이 구축한 새로운 세상으로의 판타지적 탐구였다면, 첫 정규 앨범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는 그 세상을 스스로 부수고 나와 혼란스럽게 여러 고민과 갈등을 마주하는 인간 정호석의 보다 내면적이고 진실한 고백이다. 첫 믹스테이프에 비해 앨범에 대한 본인의 통제력은 압도적으로 높아졌고, 그는 작사, 작곡, 편곡뿐 아니라 콘셉트 구축과 아트워크, 비주얼 연출 등 모든 부분에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 사실상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앨범의 인트로와 첫 곡은 모두 판도라의 상자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앨범이 내세우는 방향성과 콘셉트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 옛날, 상자가 열리고 모든 어둠이 세상으로 나왔지만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던 그의 이름과 같은 단어인 희망(hope). 첫 믹스테이프가 상자 속에 갇힌 새로운 세계의 항해였다면, 이제 그는 그 상자의 문을 다시 열고 나와 희망이라는 껍질 안에 가려져 있던 정호석의 본질을 본격적으로 공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이홉을 넘어 뮤지션 정호석의 선언과 같은 앨범이기에 그 선공개곡이 ‘모어’(MORE)인 것은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육중하고 건조한 비트에 얹은 ‘벌스’(verse)가 그의 욕망과 의지를 드러낸다면 마치 내면의 소리인 듯 저 먼 곳에서부터의 강렬한 샤우팅이 헤비한 펑크록 사운드와 함께 ‘더!’를 외치며 풀리지 않은 갈증을 고백한다. 여기서 ‘더’는 그가 팝스타로서 이미 얻은 것에 관한 불만족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아티스트로서의 도약과 완성에 대한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모어’와 쌍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예외적으로 마지막에 배치된 앨범의 타이틀곡 ‘방화’는 BTS의 지난 9년을 거치며 느낀 바를 비유적으로 풀어내는, 메시지와 태도에 있어서 앨범의 가장 날 선 트랙이다. 나의 꿈을 위해 지폈던 불꽃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통제를 벗어나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지기 시작했고, 이제 다 타고 남은 재를 보며 그것이 내가 은연중에 방치해왔던 ‘방화’였음을 깨달은 후 느끼는 복잡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반복적인 힙합 그루브와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촘촘히 엮인 수작이다.

아기자기한 리듬과 다재다능한 능력을 백화점처럼 전시했던 ‘홉 월드’와 달리 ‘잭 인 더 박스’는 건조하고 육중한 동부 스타일의 올드스쿨 힙합 사운드가 시종일관 지배한다. 선공개곡과 타이틀곡을 제외한다면 앨범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앨범의 중반부에 배치된 ‘=’(이퀄 사인(Equal Sign))과 ‘왓 이프...’(What if...)를 꼽고 싶다. 두 곡은 서로 완전히 다른 의미로 진솔한 제이홉의 성격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는데, 전자가 희망의 화신으로서 제이홉이 인간에게 품은 긍정적 바람을 담은 단순명료한 메시지라면, 후자는 지난 9년간 품어온 제이홉의 페르소나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과 회의감을 솔직하게 터놓은 가장 내밀한 곡이다. 그 상반됨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라 모두 자연스러운 그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앨범을 듣고 또 들으며 비로소 얻게 된 당연한 결론이 있다. 제이홉이라는 페르소나 혹은 희망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마저 열고 나와 그가 세상을 향해 보여주고픈 진짜 모습은 ‘모어’에 담긴 욕망의 절규나 ‘방화’ 속 서늘한 자기 고백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이홉 혹은 정호석의 본질은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혹은 음악을 대하는 그 절묘한 균형감에 있었다. BTS 시절 그가 맡았던 곡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건조한 비트에서도 그의 음악은 결코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앨범에서 가장 대범한 노랫말을 선보이는 ‘스톱’(STOP(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에서 그는 시종일관 냉소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다 마지막 벌스에 이르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고백한다. 음악은 늘 사람을 닮는다.



아티스트에게 페르소나는 종종 자신과 완전히 구분될 수 없는 실존 그 자체이다. ‘잭 인 더 박스’는 제이홉의 발걸음이 BTS를 넘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채워줌과 동시에, 그간 보여준 제이홉의 모습이 단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가면’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준 기분 좋은 작업이다. 설령 ‘희망’이라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지라도 그 의미와 무게는 완전히 다르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