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재학들 “나는 누구와 싸우나” “정규직 지부 외면 여전”
언론노조 수석 “‘사업장 정서’란 말로 느슨한 싸움, 책임 통감”"형이 바란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더 늦기 전에 지금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에게 우리가 힘이 돼 줬으면 좋겠다. 저희가 큰 뜻은 같은 조직이지 않나."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엔딩크레딧 대표)가 이재학 PD의 4주기 추모제에서 말했다.
이재학 PD 4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3일, '이재학, 기억 그리고 투쟁' 추모제가 충북 청주시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유족과 동료 방송노동자들, 여러 방송사의 프리랜서들이 이재학 PD가 해왔던 싸움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재학 PD가 숨진 뒤에도 회사와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노조의 외면과 방해가 변하지 않았다는 방송노동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민주노총 충북본부, 엔딩크레딧, 언론노조가 추모제를 주최했다.
행사는 이재학 PD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자리, 또 '2024년의 이재학들'이 서로 응원하고 힘을 주는 자리로 기획됐다.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법무법인 창조)는 이재학 PD를 만나 상담과 소송을 진행했던 1년 반 동안 그에게 받은 느낌을 "일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요약했다.
이 변호사는 "'라꾸라꾸'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일 하나만큼은 제대로 해내겠다는 열정으로 14년 간 CJB청주방송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한 것 같다. 그게 없었다면 견뎌내기 힘들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그는 "또 '주변 사람을 잘 챙긴다'는 동료들의 일관된 얘기를 들었다. 누구 하나 일말의 비판적인 얘길 할 법도 한데 그런 얘기가 없었던 게 당시에도 인상적이었다"며 "자신도 어쨌든 비정규직인데,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품으려는 노력들에 대해 들었다"고 했다.
CJB청주방송에서 14년 간 일해온 이재학 PD는 2018년 4월 동료 비정규직 스태프의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관리자에게 처음 말했다가 곧바로 해고당했다. 그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그는 2020년 1월22일 패소 판결을 받고 항소했고, 2주 뒤인 2월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PD는 유서에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며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왜 그런데 부정하고 거짓을 말하나"라고 적었다. 청주방송은 그가 'PD'가 아닌 조연출이었으며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 PD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증언을 한 직속 상관에) 위증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재판 과정에서, 법정 밖에서 이재학 PD를 둘러싼 진실에 대해 흠집 내려는 시도들이 목격되고 있다"며 "이재학 PD와 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다. 그런 시도에는 분명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동생 이대로씨 "더 늦기 전에 지금 싸우는 이들을 돕자"
이 변호사는 과거 비정규직 노동자로 겪은 일도 언급했다. "20년 전 비정규직 노동자로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다. 하얀 명찰을 단 정규직, 파란 명찰을 단 비정규직 노동자가 혼재돼 일했다. 명찰 하나로 구분되는 세계. 모멸감도, 마음의 상처도 받는 세계였다. 정규직 노조위원장 집까지 찾아가 도움을 호소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는) 그 때 매몰차게 외면했다. 비정규직을 양산한 사용자의 행태가 근본 문제이지만, 먼저 다가오는 건 그런 상처이지 않을까."
그는 "방송사의 행태를 겪으면서도 안에서 버티는 방송노동자 당사자 분들이 제게는 형제처럼 느껴진다"며 "더 늦기 전에, 지금 싸우는 당사자들에게 우리가 힘이 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조가입 거절, 뒷조사, 비난…"'같이 해 형'이란 말에 울었다"
방송사를 상대로 싸우는 '오늘의 이재학들'의 대담 자리가 이어졌다. UBC울산방송 아나운서 이산하씨와 CG 노동자 손민정씨, 광주MBC 아나운서 김동우(가명)씨다. 이들은 이재학 PD가 생전 소송하던 중 썼던 편지 속 "제가 싸우는 청주방송은 누구일까요? 요즘은 누구와 싸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거듭 말했다. 이 PD는 청주방송 구성원들에게 이 편지를 썼지만 끝내 사내 게시판에 올리지는 못했다.
청주방송 노동자이자 이재학 PD의 동료인 A씨는 이들에게 "언론노조 산하 지부에서는 도와준다는 이야기가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산하씨는 "도움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앞장서서 거짓 소문을 내거나 회유하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재 안 뿌리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A씨는 자신과 이재학 PD가 청주방송과 소송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을 말했다. 불법파견으로 청주방송에서 일하던 그는 2018년 말 직고용을 요구하다 해고된 뒤 소송을 시작했고, 불법파견과 부당해고를 인정받고 복직했다. A씨는 "(2020년) 불법파견 소송할 때 노조의 도움을 받아보려 했는데, 당시 지부장이 저와 일한 동료를 불러다 놓고 저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 '쟤는 회사에서 일할 때 어땠냐, 일은 잘했냐, 인간관계는 어땠냐' 등을 물었다고 한다"고 했다.
A씨는 "재학이도 당시 노조위원장(지부장)에게 도와달라고 찾아갔는데, 지부장이 재학이에게 '네가 노조에 대해 비판하고 다니고, 나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고 다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저는 그 얘길 재학이에게 직접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노조라는 큰 집단의 지부장들이 왜 (비정규직 노동자를) 도와주지 못하고, 오히려 나서서 역으로 방해를 할까. 정말 궁금하다. 수석부위원장님께 묻고 싶다. 상급단체에선 지부 교육 같은 걸 안 하시나.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산하씨는 이재학 PD와 방송노동 현장을 기록한 추모집 '안녕, 재피' 속 이대로 대표의 '같이 해, 형'이라는 말을 읽고 "많이 울었다"며 "어렵게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듣고 싶었을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씨 역시 부당해고 소송을 겪으며 그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동료의 진술서와 구성원들의 외면을 겪었다고 했다.
업무배제와 고립…김미숙 이사장 "나를 끼워맞추지 말고 '부당하다' 말하자"
아나운서 김동우(가명)씨는 '회사와 오래 싸우며 자기를 의심하게 될 때의 동력'에 대해 말했다. 그는 "2년째 업무 배제를 당하니 몸이 아파지더라. 원래는 생활체육 동호회를 했는데 아프니 집에만 있고, 회사엔 일이 없고, 사람들과 서먹해지니 지난 가을부터 고립됐다고 느꼈다"며 "지난 여름부턴 엔딩크레딧의 동지들이 매일 함께 싸워주면서 내가 겪는 일이 불의하고, 내가 잘못된 게 없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2016년 프리랜서 아나운서 공채를 거쳐 입사해 광주MBC에서 뉴스진행 등을 맡으며 일했지만 노동자성 인정 판단을 받은 현재 5분짜리 코너를 주 2회 진행하고 있다. 근로계약은 맺지 못했다.
이씨와 김씨는 법적 다툼 끝에 노동자성을 인정 받고도 회사 내에서 벼랑 끝에 내몰리는 사례이기도 하다.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고인이 발자국을 남기며 생전에 원했던 건 이런 상황은 아니었을 거다"라며 "(노동자가) 이기는 사례가 계속 나오지만 사측이 설마설마했던 대응, 상상할 수 없는 대응을 보이고 있어 우리가 계속,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용균이를 키우고 난 뒤 다시 회사 생활을 하려니 비정규직이 엄청 많이 생겼다. 인간 대접을 못 받는 것이 당연하듯 진행되고 있었다"며 "사회가 만들어놓은 자리에 나를 끼워맞추지 말고, '잘못됐다'고 말하며 숨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고 했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재학 PD가 돌아가실 때 저는 현장 조합원으로 사안을 접했다. '언론노조 1만5000 조합원이 죄인된 마음으로 투쟁하고 바꿔나가겠다'는 100일 추모제 때 언론노조 위원장 말씀이, 4년 뒤 제가 언론노조 집행부가 되어 얼마나 실현됐는지 보면 여전히 제2, 3, 4의 이재학 PD가 나온다. 어쨌든 미디어산업의 유일한 산별 노조로 크게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전 수석부위원장은 "결과적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어깨동무하고 주먹을 쥐어주는지에서 싸움의 방향이 바뀌지 않겠나. 여러 가지 가치와 싸움이 제대로 기억되는지 챙기고, 사업장 지부의 정서, 상황 이런 말들로 싸움을 조금 느슨하게 해오지 않았는지 따져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