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요상한 피고인의 요란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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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25. 오후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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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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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일 온라인뉴스부장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재판은 본 적이 없다. 재판을 산으로 끌고 가려는 각종 ‘기술’이 동원되고 있는데, 어째 그 목적이 피고인이 아닌 기소도 안 된 ‘보스’를 보호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법정 밖에 재판을 흔드는 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1년 7개월간의 심리 끝에 오는 6월 선고만 남겨두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1심 재판 얘기다. 이씨는 지난 4일 62차 공판에서 ‘검찰청 술판 회유’ 주장을 처음으로 꺼냈다. 수원지검 1313호 검사실 앞의 ‘창고’(1315호)라고 써진 방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등과 연어 안주에 소주를 마시며 허위 진술을 설득당했다는 내용이다.

이 주장을 받아 판을 키운 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다. 그는 지난 15일 총선 후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국기문란 사건’으로 칭하며 “검찰이 동네 건달도 하지 않을 짓을 한다”고 공세를 폈다. 이튿날에는 “이화영 진술은 100% 사실로 보인다”고 했다. ‘보인다’를 달아 여지는 뒀지만, 술판 회유를 이미 진실이라고 단정하고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6월 이씨가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방북 의전 비용을 김성태 회장이 처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진술한 데서 비롯됐다. 재판 기류가 급변했다. 민주당 인사들이 이씨의 배우자를 접촉했고, 배우자는 법정에서 남편에게 “정신 차리라”고 고함을 쳤다. 이후 재판은 변호인 교체 문제로 공전을 하더니 법관 기피신청으로 또다시 80일 가까이 멈춰 섰다. 급기야 재판 막바지에 술판 주장까지 나온 것이다.

검찰청 조사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에서는 속속들이 알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점에서 이씨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게 법조인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그는 이전에 단 한 번도 술판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지난해 12월 공개한 자필 ‘옥중 노트’에도 나오지 않는다. 통상 이럴 때는 주장의 진의 내지 목적이 무엇인지 주목하게 된다. 무엇보다 검찰이 기록 등을 제시하며 반박할 때마다 주장을 바꾸고 있다. 사건 발생 시점과 장소를 수차례 번복하더니 나중에는 ‘입을 대보니 술이어서 마시지 않았다’며 음주 사실마저 뒤집었다.

이쯤 되면 술판 주장이 과연 실체가 있는 건지 의심하는 게 상식적이다. 민주당도 이를 모르진 않을 터다. 그럼에도 당 차원에서 서둘러 공방에 참전했다. 검찰청, 구치소로 달려가 위력 시위를 하고 총선 당선자들을 대거 합류시킨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단’도 꾸렸다.

왜일까. 일차적으로는 이 대표 안위와도 관련 있는 이씨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이 대표는 800만 달러 대북송금 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수사 절차와 정당성을 흔들어 이 대표를 향하는 수사의 길목을 차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개 양상을 보면 민주당은 그 너머의 상황까지 그리는 듯하다. 대권 도전 길에 최대 장애물이 될 수 있는 검찰을 이참에 확실히 눌러놓겠다는 기색이 뚜렷하다. 이씨 주장이 4·10 총선 결과가 나온 뒤 이슈화된 점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회 권력을 장악한 만큼 이제 사법 리스크 대응 역시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할 때라는 판단이 섰을 수 있다. 술판 의혹은 구실이자 계기일 뿐. 아마 다음 수순은 검찰개혁 프레임 재가동 아닐까.

결국, 이씨의 돌연한 주장과 즉각적인 민주당의 대응은 앞으로 전개될 민주당과 검찰 간 사활을 건 일전의 서막일 수 있다. 물론 장막 뒤의 부당한 수사 행위 의혹은 철저히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다만 제1당이 진행 중인 재판에 정치색을 칠하자고 드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도 한때 보스에게 등을 돌리려다 귀환해 구명줄을 잡으려는 피고인의 주장을 지렛대로 말이다.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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