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3월에 되새기는 자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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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주년 3·1절 기념사는 1919년 3월 1일 33인의 기미독립선언문을 다시금 정독하게 한다. 21세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국제사회는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민족자결을 외치며 신생 독립 국가의 탄생이 시작됐던 당시의 상황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장을 돌이켜 보면, 국제 환경은 매번 녹록지 않았고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와 발전을 가능하게 한 동력은 바로 '자유'의 가치였다.

영국의 1688년 권리장전, 미국의 1776년 독립선언문, 프랑스혁명 당시의 1789년 인권선언 그리고 1918년 1월 8일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두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밝힌 14개 조 평화원칙 선언에 이르기까지 자연권으로서의 '자유'는 기미독립선언문으로 이어졌다.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해"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남북이 분단되기 전, 한반도 이 땅에 우리나라가 세워진 지 사천이백오십이년이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우리 선조들은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과 독창적 능력을 발휘해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피우기를 희망하며 가슴에 품은 태극기를 꺼내 목 놓아 외쳤다.

그로부터 105년 뒤, 3·1운동의 절규와 피눈물은 기미독립선언문에서 제시한 미래상의 절반만을 완성했다. 글로벌 중추국가인 대한민국은 선조들이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외교, 무장투쟁, 교육, 문화, 산업 등 모든 영역에서 투쟁해온 덕분에 이제는 국제사회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자연권으로서의 '자유'를 아직까지 누리지 못한 북쪽 지역의 우리 겨레를 위한 자유와 인권, 이에 기반한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었다.

반면 북한은 기미독립선언문의 정신과 정반대 길을 걸어왔다. 온 겨레의 자유와 풍요를 기원했던 선조들의 '새 세상'에 대한 바람은 1인 독재자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새 세상'이 철저히 부정되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3대 독재체제'로 대체됐다. 김정은 체제에 이르러서는 한민족임을 거부하고, 남북 관계를 핵 선제 타격을 하는 적대관계로 설정하며 통일 부정을 1인 독재체제의 유지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거나 탈취했던 독재체제나 침략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공격에 처칠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신세계(미국)가 모든 권력과 무력을 갖고 늦지 않게 구세계(영국)를 구원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의지로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 승리를 이끌었고, 동독 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결국 독일 통일을 가져왔다.

우리는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두가 주인이고 자유와 평화, 번영을 누리는 새 세상, 자유로운 통일 대한민국을 향해 이웃 국가들과 함께, 전 세계와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장과 자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이웃 국가들과의 공동 번영과 평화는 결국 자유 통일 대한민국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령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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