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독이 된 중국의 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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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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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영 베이징특파원

작가 모옌은 중국의 자랑이다. 2012년 중국인으로선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작가협회 부주석을 지내는 등 중국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988년 장이머우 감독에게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안겨준 영화 ‘붉은 수수밭’도 모옌의 작품이 원작이다. 200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도 중국 출신이지만 천안문사태를 비판하다 중국에서 활동이 금지됐고 1998년에는 프랑스 국적까지 취득했다. 중국어로 작품활동을 하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이 둘이 전부이니 중국에서 모옌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마오싱화’라는 필명의 애국주의 인플루언서가 지난 2월 “모옌이 작품에서 일본군을 미화하고 인민해방군을 모욕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중국 애국주의 진영에도 충격이었다. 모옌의 작품은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는데 마오싱화는 시중에서 모옌의 작품이 유통되지 않도록 모두 수거해 달라는 청구도 했다. 개인적 돌출행동이라고 보기엔 이 글의 반향이 너무 컸다. 지지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고 모옌에 대해선 집단적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노벨위원회 페르 와츠버그 위원장이 2012년 모옌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하면서 “20세기 중국의 잔혹성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된 적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소환됐다. 중국 언론은 당시 보도하지 않았던 이 발언을 찾아낸 애국주의 네티즌들은 “모옌의 작품이 중국을 더럽힌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옌이 2005년 홍콩개방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며 “문학과 예술은 사회의 어둠과 불의를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다시 끄집어냈다. 중국 사회는 모옌의 작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어둡지 않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애국주의 논객인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마저 이런 세태를 개탄했다. 그는 모옌에 대한 공격을 포퓰리즘으로 간주하고 “모옌에 대한 소송은 당이 영도하는 헌법질서하의 관용과 자유를 파괴한다”고 말했다. 한번 타오른 애국주의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었다. 마오싱화는 후 전 편집인도 고소하겠다고 맞받았고 애국주의 네티즌들도 이를 지지했다. 법원이 소송을 각하한 후에도 마오싱화는 모옌에 대한 공익소송을 계속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 애국주의 네티즌들이 국내외 유명인이나 기업들이 반중 행태를 보인다며 공격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외국 기업이나 브랜드는 중국과 관계가 나빠질 때마다 공격의 대상이 됐다. 한국 기업들도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이들의 불매운동으로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점유율이 급락했다. 중국 당국이 이를 지시하거나 조장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방조한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 정부가 공격적으로 전개한 ‘전랑(늑대전사) 외교’도 애국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모옌 사태는 이렇게 방치한 애국주의가 언제든 통제불능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셜미디어에선 강경하고 극단적인 메시지가 호응을 얻고 유명세와 수익을 가져다준다. 애국주의와 소셜미디어의 만남은 극단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최근 중국 정부 지도자들이 외국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강조하는 게 ‘개방과 협력’이다. 경제 회복을 위해 외국 자본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이탈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외국 자본이 중국에 투자할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애국주의는 개방과 협력에 독이다. 흑백논리로 반중 딱지를 붙이고 불매와 퇴출 운동을 벌이는 상황에선 중국에 투자할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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